[대한민국사 5가지 쟁점] 3강 이병천 교수의 '박정희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참여연대가 시민강좌를 마련했습니다. 부설기관 참여사회연구소의 주최로 5월 29일부터 6월 26일까지 총5회에 걸쳐 '대한민국사 5가지 쟁점'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시민들과 함께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적으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좌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3강에 대한 후기로 <시민사회신문>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4강은 6월 19일 '대한민국의 미래, 리틀 아메리카인가, 빅 스웨덴인가 라는 주제로 성공회대 신정완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한편 참여사회연구소는 이번 기획강좌 강연내용 뿐 아니라 진보적 연구자 22명의의 원고를 묶어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역사와 좌표>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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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의 성취를 애써 외면하고 이 시대를 이끈 박정희의 공을 평가하는 데 인색해서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냉전 반공국가주의, 돌진적 성장 제일주의의 파괴적 위험과 야만을 망각하는 무반성적 승리주의, 우상화 담론은 박정희 시대 바로 보기의 큰 장애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 가지의 뜻 중 하나만을 골라 박정희를 정의 내리려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다. 동전의 양면을 서로 떼어내 설명하려고 하니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참여사회연구소의 대한민국사 기획강좌 세 번째 강의는 동전의 양면은 물론 동전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박정희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것이다.

박정희 시대 평가, 객관적 사실 짚어야

이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현대 세계경제의 물길을 바꿔놓은 압축 경제성장의 성공과 개발을 앞세워 독재를 정당화한 반공이데올로기의 고착화“라며 ”두 특징 모두를 분명한 사실로 인정해야 박정희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민주화 시대에 왜 박정희 시대를 묻는가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87년 민주항쟁으로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열망대로 민주화 시대가 되었지만 기대만큼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했다. 여기에 이 교수는 한국의 경우엔 북한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와 남한 자본주의 경제의 성공이 확연하게 대비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 간의 화해협력은 남한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끌어올려놓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자본주의를 돌아보게 했다는 원인을 추가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게 할 정도의 성취에 대해선 “20년 이상 지속된 8% 경제성장률”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대적인 타이밍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면서 “성장이 증가하니까 고용과 실질임금도 같이 증가하며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도 성장이 과연 어떻게 가능했는가란 점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가와 재벌을 중심축으로 펼친 금융통제와 노동통제로 이루어진 한국형 발전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 국가가 하는 제일 중요한 역할은 국민들을 하나의 목표로 매진하게끔 이념적으로 동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재벌에게 지시하는 산업정책으로 국가가 나서서 국민경제자립화라는 목표를 기업들에게 던져주면서 투자를 유도한 점이다.

“금융의 경우엔 금융계에 지원을 해주면서 국가가 금융의 유통을 주관했고 노동의 경우에도 고용과 임금상승을 인센티브로 통제하고 배제하면서 이념적으로는 열심히 일하게끔 국민을 동원한 박정희 시대의 전략”이 그 시대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당시 이룬 경제 성장만큼 분배도 잘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은 분배를 동반한 균형적인 성장이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7개국이 당시의 성장과 분배 실적이 좋다는 연구결과를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대만과 싱가포르는 역시 독재국가였지만 유럽의 사민주의적 정책이 남아있었다. 한국의 경우엔 박정희가 일본 모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분배가 이루어진 측면 뒤에도 여전히 불평등과 심각한 격차가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과 개발독재의 딜레마

이 교수는 “박정희 시대는 독재 정권과 특권 재벌의 폐쇄적 정치경제 과두제가 지배하고 ‘민족’과 ‘성장’을 전략적 정당성으로 삼아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독점이 지속적인 공생을 도모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국가가 재벌이 성장할 수 있도록 풀어주면서 규율하는데 정작 국가 스스로를 규율하는 주체는 없었고, 재벌의 경우에도 후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국가의 규율에서 벗어나면서 자기파괴적 성격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바로 이 성격이 개발독재의 딜레마로 유신체제가 파괴된 이유라고 지적했다.

"개(個)와 공(公)이 상생하는 민주주의를"

이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한미FTA 체결이 되면서 경제성장의 예로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방을 드는데, 그 당시의 개방은 지금과 상당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시대의 개방은 무분별한 완전 개방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선별적으로 국가에 의해 관리된 개방이라는 차이가 있다”며 “당시엔 수출 늘리려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야 하는데 나중에 원리금 상환비율 높아질 것을 우려해 환율을 전략적으로 변동해가며 환율정책을 국가가 조정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인에게는 자율적 개인성도 미약하고 더불어 함께 가꾸어야 할 가치로서 공공성에 대한 신뢰도 매우 미약하다”며 “개(個)와 공(公)이 상생하는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 선진 민주복지사회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었다.

전상희 (시민사회신문 기자)
2007/06/19 11:07 2007/06/1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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