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시민운동 현장체험④] 나의 삶을 바꾼 쪽방에서 하루나기
시민교육 :
2007/08/06 13:21
복지학교 4강 '일일 쪽방체험’ 을 하고
21년간의 나의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인생이었다. 대한민국 상위1%를 위해, 달리고 또 달리고. 그러다보니 주변을 돌아볼 기회는 없었다. 나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똑똑한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나를 조금은 원망스럽게 생각했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리던 내게, 브레이크를 준건 참여연대의 희망업 복지학교 프로그램. 방학을 맞아서, 학기 중엔 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이 없을까 하면서 둘러보던 중 평소 관심 있었던 참여연대의 복지학교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영어학원이나 경제학 공부와 같은 다른 일정들을 모두 취소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대를 가졌던 것은 쪽방체험이었다. 재수를 하던 시절, 고시원에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루를 지내보고, 도저히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바로 나왔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봤던 '쪽방‘이라는 곳은 내가 잠깐 경험했던 고시원과 비슷했다.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프로그램에 쪽방체험이 있어서 흥미를 갖고 참가 했다.
고층 빌딩에 가려진 섬, 쪽방에 가다
7월 12일, 쪽방 체험을 하는 날은 유달리 햇살이 강한 날이었다. 아침에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과 쨍쨍 내려쬐는 햇빛을 보면서 ‘오늘 쪽방체험 정말 고생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쪽방으로 이동하기 전 참여연대 강당에서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활동가인 최은숙 선생님께 쪽방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쪽방’은 예전부터 널리 회자되어온 개념 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쪽방을“도심인근이나 역 근처에 위치하며 1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이라고 정의 내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쪽방의 개념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합의되지 않아서 정책을 만들 때 쪽방에 대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쪽방에 대한 공통된 개념정립이 시급한 이유다. 이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쪽방촌의 역사와 실태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우리는 쪽방 체험을 위해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 용산구 동자동 쪽방 내부.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이 낯설기만 하다.
고향에 내려갈 때 보통 KTX를 이용하기 때문에 서울역에 자주 오게 되는데, 처음에 서울역 주변에 쪽방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내가 갈 때는 분명히 서울역 주변에 고층건물들밖에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쪽방촌이 있는 거지? 서울역에 도착해 길을 건너 고층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니 건물 사이에 숨겨져 있는 쪽방촌을 발견했다. 6.25시절을 그린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시멘트 건물. 창문은 다 뜯겨나가고 페인트칠은 다 벗겨졌으며 들어가자마자 꿉꿉한 느낌이 나는 건물. 설마 이 건물일까 했는데, 우리일행은 그 건물로 들어갔다. 하루숙박료가 6000원인 쪽방 이었다. 우리 조가 머물 방은 4층에 있었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 역겨운 화장실 냄새에 나도 모르게 코를 막고 말았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좁은 복도를 따라서 방이 양쪽으로 10개정도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붙어있던 몇 마리의 바퀴벌레를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바퀴벌레를 치우고 방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방은 너무 좁아서 우리 조원 3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방엔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선풍기가 없어서 무더운 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웠다. 키가 170센티 정도 되는 내가 누워서 팔을 벌리면 발과 팔에 딱 닿을 만큼 아주 작은 방이었다. 가구는 낡아서 한번 부딪히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서랍장이 전부였다.
한끼 1900원의 식사, 0.7평의 공간에서 사는 것이 인간적인가
우리는 짐을 풀고, 장을 보러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돈은 3인분 두 끼 식비인 7500원이었다. 쪽방촌에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재래식 시장이 보였다. 시장 안에 있는 마트에 들어가서 우리가 식단으로 짠 대로 재료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카레와 참치, 김치, 감자, 햄, 계란 . 우리의 계획은 점심엔 볶음밥을 해먹고, 저녁엔 카레를 해먹는 것이었다. 원래는 볶음밥엔 당근도 들어가는데, 당근이 너무 비싸서 줄이고 줄이다 보니 살 수 있는 것이 저 정도였다. 사실 마트에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닐 때는 저렇게 물가가 비싼 줄 몰랐는데, 내가 직접 한정된 돈을 가지고 장을 보려니 정말 살 수 있는 게 몇 가지가 없었다. 한사람이 두끼 먹을 분량의 쌀은 1000원 정도였고, 카레하나만 해도 1200원, 감자는 하나에 500원 등등.. 원래 계획에서 많이 축소해서 식단을 수정해서 장을 본 후 다시 쪽방으로 들어왔다.

▲ 동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있는 김가연씨(왼편). 1900원에 맞추다 보니 살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쌀을 얹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좁은 방에는 우리조원 세 명이 앉기에도 부족했다. 연수오빠가 볶음밥을 만들어 줘서 먹었는데, 사실 환기도 안 되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방에서, 그리고 주변에 바퀴벌레가 있는데 도저히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결국 얼마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다.

▲ 쪽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복지학교 참가자들. 3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공간에서 찜통더위 속에 한끼 식사를 해결했다.
편견과 무관심에 갇힌 쪽방 사람들
남선언니와 설거지를 한 후 짐을 챙겨서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쪽방 주민들과의 면담이 있었다. 우리가 그분들께 궁금했던 것을 묻고 그분들이 답해주는 방식으로 면담이 진행되었다. 면담 내내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사실 노숙자들은 일할 의욕이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나만의 좁은 생각이었다. 일하고 싶어도 몸이 아프고, 그리고 돈이 없으니 아픈 것을 제때 고치지 못해서 낫지 못해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 남산 공원에서 쪽방 주민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복지학교 참가자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쪽방주민들은 사람들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아무리 눈으로 봐도 직접 겪어보는 것 이상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어서 책으로 쪽방이나 노숙자에 대해서 접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친구들에게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그냥 토플준비나 하지 그래’ 라고 핀잔을 줬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달 간의 체험이 끝난 후 난 앞으로 내가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내가 평생을 바쳐 걸어갈 길을 찾은 것 같아서 너무나도 뿌듯하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희망업 최저생계비 캠페인 카페 바로가기
![]() ▲ 김가연씨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많은 감사 위치! 우수한 나는 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