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희망을 위한 작은 흐름 하나를 제안합니다
 
한겨레를 볼 때마다 유독 눈에 띄는 얼굴. 입은 쭉 내밀고 눈은 비껴 뜬 채 뭔가를 노려보는 불만에 그득 찬 얼굴. 아니나 다를까 그가 쓰는 글은 언제나 불만이 가득했다. 짧은 지면 속으로 어떻게든 대책까지 구겨 넣는 다른 칼럼니스트들과 달리 언제나 불만만 잔뜩 늘어놓았다. 딱히 그의 칼럼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글을 읽을 만한 여건이 안돼서 기사를 추려서 읽어야 하는데 대책 없이 불만만 많아 보이는 사람의 글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라고 여겨졌던 글들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왔다. 무슨 쌍팔년스러운 제목이냐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언론의 반응이 심상찮았다. 가는 곳마다 '88만원 세대' ' 88만원 세대', 노래를 불렀다. 결국 한 권 샀다. 저자는 그 불만 많아 보이는 우석훈이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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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을 듣고 있는 수강자들



다짜고짜 욕이나 할 줄 알았더니, 책은 의외로 섹스 이야기로 시작해서 당황했다. 20대의 독립이라...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집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밖에만 나와 있으면 집에 들어오라고 전화를 거는 엄마가 짜증났다.

고용의 95%를 넘게 책임지는 중소기업(+자영업)은 88만원밖에 주지 않고 그나마 걸핏하면 체불하기 일쑤라는데, 20대는 죽자사자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치지만 거기에 안착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5%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15년 안에 짤릴 거란다. 슬슬 짜증이 난다.

학부에 입학해 1학년 때부터 인기학과에 들어가고자 학점관리를 하고 2학년 때부터는 토익 점수에 목숨을 걸고 수천만 원을 들여 어학연수를 다녀온다. 3,4학년 때는 학점관리, 어학연수 ‘사후관리’를 하고, 인기 아나운서를 따라서 성형도 하고, 면접관에게 잘 보이도록 표정관리 연습도 한다. 그러나 결국 취업은 안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는 직접 성을 내는 대신 나보고 분노하라고 말했다. (적어도 그렇게 들렸다.) 책의 마지막에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이 대안들을 깡그리 무시할 것이라며 20대 스스로 짱돌을 들라한다. 충격이었다. 그때와 비슷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세상이 역겨워 구토가 치밀어 오르던 시절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을 때의 느낌. 단순한 선입견으로 그냥 지나쳤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앞으로 이 사람의 열혈독자가 될 것 같다. 우웩. 그러나 구토는 여전히 쏠려온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내 속을 헤집어놓는 것들이 흐릿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짜증나고 괴로워도 친구들이 하나 둘 대기업에 가는 모습을 보고 조금만, 조금만...하며 토익책을 부여잡고 있는 친구들. 그렇게 부모를 착취하며 그 품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취업에 목숨 거는 친구들과 또 그들을 업신여기며 쾌감을 느끼는 내 모습.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in서울 대학을 나오지 못해 더 비참하게 성매매 업소, 다단계 판매, 카드깡 사무소 등등을 전전하고 있을 사람들. 다 싫다 이대로는.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남들과 함께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던 차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 비자금 문제가 터졌다. 궁금한 차에 이건희 일가를 고발한 참여연대 사이트에 들어가봤다. 그때 '88만원 세대를 위한 우석훈의 명랑경제학'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한번 와보고 싶었다. 저자도 보고 싶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수강자들은 주로 취업전선에 투입되거나 막 전선을 돌파한 20대 중반이 많았고, 직장에 다니는 3~40대도 있었다. 아버지뻘 되는 분도 있었다. 우석훈 박사는 예상보다 더 까칠한 것 같았고, 수업은 책보다 어려웠다.

다안성, 세대 간 이전, 이타적 인간 대 이기적 인간의 균형, 이타적 인간의 블록, 상층부가 비대한 기이한 피라미드 구조의 조직, 국가, 시장이 아닌 제3의 영역... 몇몇 키워드들이 남았다.

뭐 주옥같은 말들이 많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무식 + 잔인'인 것 같다. 나는 이미 주변사람들을 통해서 이 말이 무엇인지를 경험적으로 안다. 이명박의 인기를 설명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 가운데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 가장 그럴듯한 이유로 제시되었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잔인해서다.

몇몇 지식인들은 여러 여론조사들을 인용해가며 '한국 사람들은 진보:중도:보수가 3:3:3으로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유권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이는 전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실정 탓이다' 라고 하는 것이 꽤 진보적으로 들린다고 생각하나 보다. 유권자들을 '전적으로 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라고 가정하고 나머지 부분에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정말 진보적인가.

정치인들의 수준은 딱 그 나라 유권자들의 수준 만큼이다. 유권자들이 바뀌지 않는데 정치인들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냥 간단히 말하자. 사람들은 노무현이 좌파라고 생각할 만큼 무식하고, 이명박이 땅값 올려서 내 집 값만 오르면 된다고 생각할 만큼 잔인하다.

무식하고 잔인한 사람을 만들어낸는 근본적인 원인은, 초등 6년, 중,고등 6년, 대학 6~7년(여학생은 어학연수 1년 + 취업준비 1년, 남학생은 군대 2년 + 어학연수 혹은 취업준비 1년이 더해진다)의 획일화된 교육과정과 제반 사회환경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의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다면, 현재의 어떤 환경과 제도도 스스로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뜸 욕부터 해대기는 쉽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how'다. 나는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무능하기 이를 데 없다. 2년 넘게 나를 괴롭힌 병마 앞에서 점점 움츠러들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다. 이 강의의 후속 모임을 통해 나를 쇄신할 수 있을까? 쌓아뒀던, 남들을 한심하다고 비웃어대면서 ‘비겁’하게 해소했던 분노를 올바른 곳에다 표출할 만큼 건강한 내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뭔가 희망찬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나의 비겁함과는 별개로 희망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다. 20대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B학점을 A학점으로 바꾸기 위해 대학을 한 학기, 두 학기 더 다니는 사이, 10대 청소년들은 억압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 모여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에 항의하는 등 사회에 날 선 비판을 한다. 몇몇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과 『88만원 세대』 등을 읽으며 내일을 준비한다. 한 고등학생은 수능 거부를 하며 1인 시위를 하였다, 기름이 유출된 태안반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왔다가 되돌아갈 만큼 많이 모여들고 있으며, 삼성, FTA 찬성 광고를 싣지 않는 시사IN, 프레시안 같은 독립언론에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돈을 냈다. 내가 비겁한 동안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희망을 낳고 있다.

20대들과 그들의 부모는 과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3000만원의 추가 학비와 2년간의 취업준비 기간까지는 군소리 않고 견뎌냈지만, 5000만원에 3년까지 견뎌 낼 수 있을까? 임계점에 도달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임계점에 도달한 순간 20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욱 더 열광적인 극우파 되기? 혹은 혁명?

지금부터라도 곳곳에서 작은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임계점에 달한 20대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합류할 수 있도록, 다른 작은 흐름들과 모여 믿음직한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강의 후속 모임의 방향이 돼야 하지 않을까. 아직 다들 전반적으로 확신과 열정이 부족한 것 같지만, 뭐 항상 일이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그곳에 점진적으로 다가가는 식으로는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하다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우발적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함께 해봤으면 좋겠다.

아, 그 전에 먼저 나 스스로 작은 것, 자신의 일상부터 바꿔봤으면 좋겠다. 골프만 치고 술이나 먹는 빨간펜 아버지에게 억지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를 읽히고, 아버지 회사 임원들에게 신년선물로 '샌드위치'를 보내고, 취업전선에서 떠밀려 낙담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는 척 접근해서 투사로 만들고, 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겠다. 아! 메일 계정도 삼성의 '개'인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바꿔야겠다.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뤄뒀었는데, 지금 당장 바꾼다!

모임의 첫 출발로 시간 나는 사람들끼리 태안반도에서 기름떼들을 몰아내는 것은 어떨까? 후속모임 까페에 와서 함께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참여연대 주경야독2 후속모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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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건 수강자

주경야독은 저자와 함께 좋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참여연대 시민강좌입니다.

11~12월에는 『88만원 세대』『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저자, 우석훈 박사와 함께 '88만원 세대를 위한 우석훈의 명랑경제학'을 진행했습니다.

이 강좌는 인터넷참여연대에서 수강자들이 쓴 후기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허건(주경야독2 수강자)

 

2007/12/31 15:42 2007/12/3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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