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조국 교수 강의 그리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 

1. 유독 안개가 짙었던 아침

상쾌한 월요일 아침. 참여연대 인턴 교육 두 번째 날이다. 아침부터 유독 안개가 짙었다. 내가 탄 버스는 마치 물안개 위로 둥둥 떠가는 작은 배처럼 미끄러져 갔다. 경복궁역까지 향하는, 두 달간은 일상이 되어야 할 40분간의 거리. 오늘로 4일째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혹은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아저씨들 틈바구니에서 졸음을 이기며 참여연대로 향하는 그 길은, 내게는 뭐랄까, 굉장히 동화적이다. 오늘도 또 내가 모르던 세계가 열릴 거다.


2. 경복궁역을 떠나 시청으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방문하다

앞으로 펼쳐질 인턴 교육 일정은 상당히 다이내믹했다. 직접 보고,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고. 오늘 역시 가만히 앉아서 지식을 ‘주입’ 받지 않고,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를 찾아간다고 했다. 참여연대 인턴 교육은 능동적인 지식 습득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입식 교육만 (짧게는 12년 길게는 16년 이상을) 받아 온 우리들에게, 사안 하나 툭 던져주고 토론하라고 하면 난감한 게 사실이다. 첫날 교육 때도, 자유토론 시간에 우리는 수시로 교육 담당 간사들을 간절히 바라보며 ‘이젠 뭐해요?’ 라는 눈빛을 보냈었다.

오늘도 일정을 보아하니 우리에게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 대해 토론하라, 발표하라는 어려운 주문을 할 것이 눈에 선했다. 광주 출신이라며 나름 5.18 운동이며 민주화며 관심이 많다고 자부‘만’ 해 왔는데, 무식이 들통 날까 약간 걱정도 됐다.


혼자 아침 졸음과 싸우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교육팀 간사 두 명과 우리 인턴 17명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인턴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밝고 쾌활하다. 간만에 여고시절로 돌아온 것 같이, 버스 맨 뒷자리를 전부 차지하고 왁자지껄 떠들며 몇 정거장 되지 않는 거리를 그렇게 즐겁게 갔다.


3. '한국 민주화 운동사' 영상을 보다

시청 맞은편에 있는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걷는 길에, 처음 보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그 ‘처음 보는’ 건물들 사이에 있었다. 내겐 서울 한복판에 ‘민주화 운동’에 관한 일을 하는 사무실이 떡 하니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새로웠다.

건물 안에 들어서 우리는 2층 대회의실로 들어갔고, 인상 좋으신 분들의 인사를 받고 ‘한국 민주화 운동사’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부터 우리나라의 해방, 후에 일어난 전쟁을 거쳐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사를 간략하게 핵심 위주로 정리한 영상이었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해 파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시대별로, 포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일단 좋았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한국의 근현대사는 암기 위주에 사건 중심이라, 개별 사건들의 연관성과 일관된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모래알갱이 같은 의문들이 살짝 치워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영상 내용이 다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짧은 시간으로 요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아쉬운 부분들도 간혹 있었고, 아직 현대사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아쉬웠다. 기본적인 배경 지식을 깔고, 알고 있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한 교육용으로는 깔끔한 자료였지만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왔을 인턴들은 약간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3. 넥타이 부대와 오삼불고기

12시 땡 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을 대학생들에게,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는 넥타이부대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했다. 바글바글 왁자지껄하게 가게를 하나 가득 메우고 우리는 밥을 먹었고, 메뉴는 김치찌개와 오삼불고기였다. 역시 사무실이 많은 시내 중심이라 뭔가 다르군. 하고 생각하며, 밥을 다 먹고 나와 몇몇 친구들과 시립미술관 근처를 산책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로, 한라봉을 손에 쥐고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우리는 약간 색달라 보였다.


4. 내 머리로 생각해보는 민주화 운동 역사

오후 시간이 되니 인상 좋은 분이 한분 더 와 있었다. 청년평화센터 ‘푸름’의 정혁 대표라고 했다. 한 달 후면 튼튼이 아빠가 된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튼튼이 예비 아빠는 우리에게 자신이 ‘가르치러’ 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 역시, 우리 머리로 생각해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자, 어떻게 본인의 것으로 만들게 될까? 예상했던 대로 조별 과제가 떨어졌다.






근현대사에서 하나의 사건을 택해, 조별로 그것을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리 조는 뉴스꽁트를 할까 했다가, 다른 조에 선수를 빼앗기고 고민에 빠졌다.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우리는 개사를 통해 5.18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고, 하다 보니 결국 뮤지컬 형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잘 될까.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잘하고 싶었는데.

뮤지컬(?)에 필요한 소도구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사용할 노래 가사 바꾸느라 시간이 다 지나버렸다. 1조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 관해 뉴스와 꽁트를 혼합해 발표를 했다. 짧은 시간인데 아이디어와 재치가 넘치는 발표였다. 재미있는 발표였지만,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애가 탔다. 역시 다음부턴 마지막으로 발표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3조의 ‘6월 항쟁’ 꽁트가 이어졌다.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를 차용해, 6월 항쟁이 정말 평범한 필부필부들의 ‘시민의 힘’임을 메시지로 전했다. ‘대화가 필요한’ 상욱이네 집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별을 살짝 뒤바꿨는데 그야말로 히트였다. 마지막으로 우리조의 발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당한 후, 잠시 동안 찾아온 ‘서울의 봄’부터 5.18까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기억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잘 안됐다. 연기는 못하고 노래만 부르다 끝났으니,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음치 합창단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다들 귀엽게 봐줬으리라고 믿는다.


5. 타인과 등을 맞댄다는 것

‘우리 머리’로 생각해 보는 민주화 운동사. 별로 좋지 않은 머리인지라 신통치 않은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나름 재미 있었다. 교육이 다 끝나고 시간이 잠시 남았을 때, 정혁 대표는 우리에게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숲. 거기에 있는 나무는 한 그루로 방 5개짜리 집을 40채나 지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뿌리도 얕은 나무들이 그렇게 커다랗게 자랄 수 있는 힘은, 나무들끼리 뿌리가 얽혀 있어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기 때문이라 했다.

교육을 시작하기 전, 아이스 브레이킹의 일환으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 등을 맞대고 일어나 보라고 했다. 타인과 등을 맞댄다는 것.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오며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그렇게 등을 대고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짝의 따뜻한 체온을 온등으로 느끼며, 체중을 서로에게 의지하고 상대방이 나를 지탱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했던 게임. 잠깐 웃으며 해봤던 게임이었지만, ‘의지’와 ‘믿음’에 대해 ‘체온’으로 배우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6. 멋쟁이 조국 교수님을 만나다 -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 운동

4시쯤 우리 모두는 참여연대 느티나무홀로 돌아왔다. 서울대 법학과 조국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오늘 아침부터 몇몇 친구들이 ‘조국 선생님이 정말 잘생기셨다. 인기가 최고다’라는 정보를 흘렸고, 나 역시 잘생기고 지적인 교수님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지지 않고 상상 이상의 ‘멋진’ 분이 들어왔다.


한 시간을 살짝 넘기는 시간 동안, 교수님은 우리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노트에 빡빡하게 적어 놓을 만큼, 기억하고 싶은 내용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사회학적 상상력’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상식의 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사회는 발전하고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에 조국 교수가 빡빡머리였을 때는 1cm 길이의 스포츠머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걸 넘어서 두발 자유를 꿈꿀 수는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경계'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깨뜨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을 거세당하면, 사회에는 발전도 없다고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부분 정착된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이룩해 나가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진심어린 제언이 이어졌고, 특히 법에 문외한인 나는 법학과 교수에게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의미 있었다.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의문은 내게 항상 존재해 왔고, 정치와 법의 영역이 모호하게 얽혀버린 현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에서 법이란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이 일었었다. 아직 ‘내 머리로 생각한’ 의미는 다 찾지 못했지만, 오늘같이 한 시간짜리 강연이라도 꼼꼼하게 들으면서 하나씩 채워 갈 생각이다. 잘생긴 조국 교수는 우리들의 집요하고 막대한 양의 질문에도 꼬박꼬박 친절하게 답변을 해줬다.

7. 마무리는 밥으로

질문까지 주고받고 나니 6시를 훌쩍 넘어 6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들은 조국 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몇몇 친구들은 일이 있어 돌아가야 했고, 나 역시 약속이 있었지만 ‘언제 또 이런 자리가 있을까’ 하는 욕심이 들어 약속을 한 시간 뒤로 미루고 밥을 먹으러 총총 따라갔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이십 몇 년 동안 내가 주로 읽어왔던 글은 소설과 시였다. 문학은 사회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또 너무나 변형된 거울이기도 해서,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사회학적이라기보다 상당히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참여연대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닐지.

8. 오늘은 밤에도 유독 안개가 짙었다

밥도 다 먹고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인턴들은 다 똑똑한 것 같다. 옆구리 쿡, 찌르면, 평소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지 줄줄줄 튀어나온다. 오늘 역시 옆자리에 인턴 친구를 하나 앉혀 두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며 버스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죽였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데, 아침처럼 안개가 또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다시 또 동화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로등은 하얀 생크림 위에 꽂힌 노란 촛불 같았고, 내가 탄 버스는 그 위에 얹어진 장난감 차처럼 흘러 갔다. 오늘은 뭐랄까, 내가 몰랐던 세계에 한걸음 다가섰던 것 같다. 내 눈도 그만큼 넓어졌을까. 두 달 후에 난 얼마나 자라 있을까. 내일은 희망제작소에 찾아간다. 내일도 내가 모르던 세계가 열릴 것이다.

▲ 인턴 김인희
▲ 인턴 김인희
참여연대는 1월 2일부터 2월 29일까지 2008년 상반기 인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8명의 인턴이 두 달간 참여연대와 함께 북적대며 활동하는 모습들을 후기를 통해 인터넷참여연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2008/02/05 14:00 2008/02/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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