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간행동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녀 간의 가슴 뛰는 사랑은 18~30개월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남녀가 만난 지 2년을 전후해 사랑의 호르몬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오히려 사라진다는 것인데, 과연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2년도 너무 긴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어쨌든 뜬금없이 남녀 간의 애정으로 서문을 연 까닭은 따로 있다. 만약 미국의 저러한 연구소의 결과가 맞다고 가정한다면, 남녀 간의 죽고 못사는 마음이 2년을 전후해 시들해지듯이 처음 내가 가졌던 참여연대의 인턴으로서의 열정과 의지도 직접행동을 즈음하여 점차 시들해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턴들 모두 4주차로 접어들면서 얼굴색이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정말 ‘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반복되는 단순 업무와 스터디 준비, 슬슬 다가오는 입법청원과 간간히 이어지는 술자리로 이제 더 이상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중복을 향해 치닫는 여름 날씨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냥 적당히 피하고 살던 내 인생에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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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행동을 위해 만든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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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피켓을 만들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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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행동에 나서기 전날 행동수칙을 함께 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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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을 만드는 모습


직접행동에 대한 주제와 거시적인 수준에서의 방법에 있어서는 문귀현 인턴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7월 31일에 있을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을 고취시키고 올바른 교육감을 선택하자는 취지로 이루어진 이번 직접행동은 시의적절한 주제였음은 분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칫 선거법 위반으로 걸릴 수도 있는 문제들이 몇 가지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박준홍 인턴이 제시한 폴리페서가 더 마음에 들긴 했지만,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폴리페서를 하게 되면 촛불집회에서 써먹었던 엽서보내기 캠페인만 해도 충분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나친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겠다. 그에 반해, 교육감 선거 홍보를 하게 되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길바닥에서 몇 시간이고 구호를 외치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면서 덜컥 겁부터 났다. 그래서 이왕 할꺼면 대형 마트로 장소를 잡자는 의견을 소심하게 내놓았지만, 아주 간단히 무시당했다. 장소는 명동과 종로부근으로 정해졌고, 방법은 나의 상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해졌다. 각자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고, 나는 몇 몇 여자 인턴들과 팜플렛을 만드는 작업을 담당했다. 선동적인 구호나 흔해빠진 식상한 글귀 따위에는 가뜩이나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씨도 먹히지 않을 거란 생각 하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참신한 몇 가지 팜플렛들을 탄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억눌린 아이들의 심경을 잘 묘사한 퍼포먼스의 기획, 각 후보들의 공약을 알기 쉽게 정리한 전단지까지 완성을 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다음날 아침, 기상예보대로 태양이 미친 듯이 내리쬐는 뜨거운 날씨였다. 누가 내 어깨를 아주 미세하게 스치고 지나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날 것 같은 불쾌한 날씨였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빨리 대충 끝내놓고 집에 돌아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우선 처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종로 한복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그늘이라고 찾아가 장소를 잡긴 했지만, 덥긴 매한가지였다. 한 손으론 연신 부채질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론 전단지를 나눠주고 목이 터져라 구호도 외쳤다. “내일 교육감 선거가 있습니다. 꼭 투표하세요~” 관심있게 찾아와 질문을 건네주시는 시민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대다수는 무관심하게 지나칠 뿐이었다. 하긴 내가 저들이라도 충분히 그랬으리라. 이해는 되면서도 일면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전단지 한 장 받아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마치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게 못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걸 직접 쏟아내는 인턴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차마 같이 그러기엔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사기를 짓밟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날씨가 더우니 우리가 이해하자...” 는 말로 그들의 상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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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뒷마당 앞에서 첫 번째 캠페인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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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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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줬다. 이날 하루 동안 1900장을 돌렸다.


점심을 해결하고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젊음의 거리 명동. 젊은이들이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나 있을려나 의심쩍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촛불을 들고 거리를 가득 채웠던 그들이기에 한번 믿어볼만도 했다. 하지만 의심은 곧 현실이 되었다. 오전보다 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참여연대에 적대적인 시선과 독설을 퍼부어대는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여린 심성을 가진 우리 인턴들은 고스란히 상처를 받았다. 길에 서서 오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무리 전단지를 나눠주고, 구호를 외쳐대도 귀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그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전략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오연주 인턴과 함께 은행을 공략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실 시원한 곳을 찾아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은행이었던 탓도 있었다. 우선, 은행 문을 가로막고 서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준다. 고마워서라도 한번 쳐다봐주는 사람들. 그때가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생긋 웃으면서 다가가 전단지를 재빠르게 나눠주고 빛의 속도로, 그러나 귀에 쏙쏙 박히게 우리의 의도를 설명해 드린다. 결과적으로 열에 아홉은 반드시 전단지를 받아 들었다. 그것도 아주 기꺼이...나는 전단지를 맡았기 때문에 퍼포먼스나 다른 인턴들이 맡은 구역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의 후일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충 상황 파악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하루 동안 전국에서 5명이 더위로 목숨을 잃었다. 참 2MB스런 여름 날씨와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녹초가 되어버린 인턴들은 명동에서 4시쯤에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그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쉬어갈 겸 들른 까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저마다 앞에 두고 편한 자세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가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직접행동은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웠다. 직장에서도 가장 힘든 부서가 영업부서라고 하지 않는가. 말 그대로 그날 나는 엄청나게 까칠한 고객들만 대상으로 한바탕 영업을 벌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모두 경험이려니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알 수 없는 뿌듯함도 밀려들었다. 그 뿌듯함은 아마도 세상 밖으로 뛰어나와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나름의 위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후보는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 선거의 결과는 아직 풀리지 않은 피로를 안고 출근한 나를 잠시 동안 멍 때리게 만들었다. 물론 단 몇 시간 동안 이루어진 직접행동으로 무언가가 크게 바뀔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직접행동만 따로 떼어놓고 보자면, 인턴기간 중에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활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기점으로 나의 인턴생활은 다시 활기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직접행동 중에 인턴들 간의 사소한 감정대립도 있긴 했지만, 오히려 그걸 계기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사이끼리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연대감이 새롭게 형성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는, 직접행동을 통해 잠시 동안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나의 인턴생활에 남녀 사이로 따지자면 위기의 2년째를 잘 넘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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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인턴 박희라

참여연대는 매년 2회에 걸쳐 청년 인턴을 모집합니다.

2008년 제2기 인턴은 7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6주간 매일 참여연대에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도 하고 업무지원도 했습니다.

지난 6월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최종선발된 16명의 인턴들과 함께 하는 재미난 이야기는 후기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인턴과 함께하는 참여연대의 즐거운 이야기에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 7월 30일 후기를 남겨준 박희라 씨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08/08/23 10:00 2008/08/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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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송희 2008/08/25 14:2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더운날 진짜 무지 수고하셨네요,작은 경험이 모여서 큰 정신을 만들어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