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기업들의 회계·공시에 관한 조사(감리) 및 제재 결과의 공개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한겨레> 2월4일치). 지금까지와 달리 기업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 중 상당부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기업이 부실회계 등과 관련하여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란다.

그런데 ‘불필요한 소송’이란 무슨 뜻일까 필요한 소송과 필요하지 않은 소송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좀 단순하게 말하면 소송이란 누군가의 가해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생겼을 때 일정한 절차에 따라 그 불법·부당함을 호소하여 손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가해행위의 불법·부당함을 확인하여 피해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정의에 부합하면 ‘필요한 소송’일 것이다.

기업의 분식회계와 같은 증권불법행위는 분명 가해행위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모두 주식 보유자에게 돌아가며, 궁극적으로 회사에게 손해를 끼친다. 소송이 필요한 전형적인 경우이다. 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증권불법행위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금융감독기관이 불법행위인지 여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안은 현실적으로 소송으로 나갈 수가 없고, 불법이 아니라면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기업 쪽에서 승소할테니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편, 금융감독기관의 이러한 조처가 ‘공정거래와 투자자 보호’라는 증권시장 운영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증권거래법은 증권시장의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기업의 여러 가지 사정변화 중 주식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증권거래소나 금융감독기관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분식회계 등 증권관련 불법행위는 주가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인데 이를 조사한 결과와 제재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증권거래법의 투자자 보호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기업의 불법을 감시할 금융감독기관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금감원은 이번 발표가 ‘확정 사안’이 아니고 ‘사실 규명이 어려워 수사기관에 조사를 의뢰하는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비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비공개 여부 결정에서 금융당국의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무엇보다 이런 움직임이 기업 쪽의 집요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재계는 지난해 증권불법행위를 규율할 증권집단소송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바로 그날까지 소송남발 우려와 기업의 경제활동 위축을 이유로 법안의 통과를 반대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조항의 삽입을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하였다. 실제 그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과도한 소송억제장치를 포함시켰고, 적용대상도 당분간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으로 한정 되었다.

재계의 증권집단소송법 옥죄기 시도는 법률 제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더욱 거세지고 있다. 법이 제정되자 재계는 법의 구체적인 적용을 위한 시행령과 세부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각종 방법으로 압력을 넣고 있으며, 법 제정 이전부터 나왔던 주장인 분식회계의 사면요구를 다시 들고 나오기까지 하였다. 증권거래법을 개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경감하는 비례책임제를 도입하자는 최근의 새로운 주장도 동일한 맥락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수많은 주주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기업의 불법행위를 감시하게 되었고, 이를 소송으로 다툴 수 있게 되었으니 기업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런 사태를 막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규율을 세워야 할 당국이 물러 터져서 이를 좌시하거나 방조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재계의 집요한 발목잡기에 금융당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시도 놓치지 말고 지켜볼 일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도 실려 있습니다.

송호창 (변호사,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2004/02/06 21:54 2004/02/0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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