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개혁의 시늉만 내고 말 것인가?
기업지배구조관련 법제도/공정거래법 :
2004/05/04 15:10
재벌금융사 의결권 제한 시행시기 유예는 개혁 후퇴
1.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1년이 넘도록 로드맵 구상 수준에서 지지부진하던 재벌개혁·금융개혁 작업이 여당의 국회과반수 확보가 이루어진 총선 이후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지난 연말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자동폐기되었던 계좌추적권 재도입을 포함하여 출자총액제한제도 및 재벌계열 금융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 문제 등 공정거래법 개정사안이 어제(3일) 여당과 공정거래위원회간의 당정협의 대상으로 논의되었다.
재벌·금융개혁 관련 논의가 다시 제기되고 있는 현 상황과 관련하여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 김상조, 한성대 교수) 일단 개혁을 표방한 여당과 정부가 어떤 구체적 성과를 내놓을 지 주목하며 지켜볼 것이다.
2. 그런데 어제(3일) 있었던 여당과 공정거래위원회간의 당정협의 내용은 비록 일부 긍정적인 요소도 없지 않으나, 제도개혁의 단추를 잘못 꿰는 과거의 사례를 재연하지 않을지 심히 우려되는 바가 있어 참여연대는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당정협의에서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 등의 관점에서 재벌계열 금융사가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범위를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하였으나, 여당은 그 시행시기를 법개정 시점보다 1~2년 더 미루는, 즉 유예기간을 두자고 주장하였고 공정위도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지하다시피 재벌계열 금융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는 애초 금지되어 있었으나, 지난 2001년 가을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처럼 30% 범위내에서 허용된 것이다. 정관변경, 임원임면, 합병 및 영업양수도 등 이른바 경영권 변동관련 사안이 모두 주총 특별결의(참석주식수의 2/3이상 찬성)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지분율 30%까지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한 것은 사실상 저축자의 돈을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도록 한 것이다.
지배주주와 저축자 사이에 이해충돌의 위험이 존재할 경우 금융기관은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다. 더구나 경영권 변동관련 사안은 그러한 이행충돌의 위험이 가장 현저하게 부각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한 2001년 공정거래법 개악은 즉각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년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주도한 재정경제부는 태스크포스 위원들의 강력한 의견제시에도 불구하고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행사 금지 또는 축소에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결과 올해 초에 발표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폐해방지 로드맵'은 '의결권 행사범위의 단계적 축소'라는 지극히 애매한 표현으로 처리되었다. 나아가 재경부는 최근 공정위의 관련 법제도 개선노력에도 계속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재경부의 이러한 소극적 태도가 여당의 유예기간 도입 주장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정위도 이를 수용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재계, 특히 특정재벌의 경영권 방어목적을 위해 금융시장질서의 근본을 허물어뜨리는 정부와 여당의 무원칙한 태도를 볼 때, 실제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행사 금지 나아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과제가 달성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계적 축소'에 '유예기간 설정'을 덧붙이는 것은 또다른 누더기 규제를 낳는 개혁의지 실종의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3. 참여연대가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현재 재경부와 여당의 태도를 볼 때 17대 국회가 개원하는 6월 임시국회에서 재벌금융사의 의결권 행사제한 규정(공정거래법 제11조)이 개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공정거래법 및 증권관련 법규정의 시행시기가 통상 1월 1일이 아니라 4월 1일인 점을 감안해본다면, 설사 올해 말에 법안이 제출되어 통과된다고 할지라도 최소 1년의 유예기간이 더해진다면 현실적으로 2006년 4월부터 의결권 행사범위가 일부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의 주총이 3월에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이 법개정의 효과는 2007년 3월 주총부터 발휘되는 것이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상황 등 정치지형의 변동요인이 발생할 2007년에 임박하여 2004년에 개정될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조치가 과연 온전히 유지되고 그대로 적용될 지 낙관할 수 없다.
참여연대가 이런 비관적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의 경험, 즉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누더기가 되는 과정에서 확인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즉 1999년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1999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실제 시행시기는 2001년 4월로 1년여의 유예기간을 주었다. 나아가 출자총액제한비율(순자산의 25%)을 초과하는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에는 또다시 1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2002년 4월부터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01년 하반기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재계가 요구가 빗발치면서 결국 2001년말 또다시 법개악이 이루어져 실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99년 12월의 법개정 내용이 적용되어보기도 전에 동종업종 및 밀접한 관련업종 등의 각종 예외사유가 덧붙여지는 '수모'를 겪었으며, 제한비율 초과분에 대한 시정명령도 매각이 아닌 의결권 제한으로 '강등'되어, 결국 '누더기 규제'라는 비판까지 받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법과 시행령 개정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되는데, 실제 제도적용은 2년 후쯤에나 되도록 하는 재벌금융사의 의결권행사 제한조치 또한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을지, 그리고 이러한 일이 앞으로 논의될 다른 법제도 개선사항들에서도 반복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그리고 개혁법안을 처리한다면서 제도적용 시점은 한참 뒤로 미루어 결국 재벌의 로비창구를 열어두겠다는 발상이 재경부와 여당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것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개혁정체성이 무엇인지 의심케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의 열망이 개혁의 '시늉'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아울러 재벌금융사 의결권 제한조치는 금융·보험사에 적용되는 공정거래법 제11조만이 아니라 재벌계열 투신사와 뮤추얼펀드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여부를 규정하고 있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제94조의 개정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법의 개정 및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재경부와 금감위는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의 개정에 대해 어떤 입장도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융관련법 개정에 정작 당사자인 재경부와 금감위는 침묵 내지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고 공정위 혼자 고군분투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야말로 참여정부의 재벌·금융개혁에서 무엇이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적 정책정당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유예기간'이 없다. 국민의 정부와 새천년민주당이 왜 개혁에 실패했는지 돌아보고,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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