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의 근원은 개혁을 거부하는 재벌



전경련 현명관 부회장이 11일 열린 이화여대 특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자, 기득권자의 논리' 또는 '어메리칸 스탠다드'로 규정하면서 이 논리를 따르면 한국은 영원한 추종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므로, 가장 한국적인 경영원칙으로 경쟁력을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 부회장은 한국적 경쟁력이 과거 7~80년대의 오너 경영에 있음을 여과없이 강조하였다.

현 부회장의 발언은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 등 정부의 재벌개혁 조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전경련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인 재벌구조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전경련의 반개혁적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현 부회장과 전경련이 주장하는 바는 결국 과거의 재벌구조, 금융구조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현 부회장이 주장한 것처럼, 전체 기업투자의 80%를 10대 재벌이 투자하고 그 중 80%를 5대 재벌이 투자하는 재벌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과연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를 돌파하는 해답인가. 90년 중반 거의 40%에 달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국민투자율로 중복과잉투자를 유발했던 재벌구조·금융구조, 소액주주에 불과한 재벌총수가 수십개의 계열사에 대해 감시받지 않는 전횡적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그 위험과 손실은 투자자와 노동자에 전가했던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 등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도 유효하지도 않음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외환위기 이후에도 재벌은 스스로 변화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국민적 요구를 반기업적 정서로 돌리며 재벌개혁정책의 완화 내지 폐지 요구에 급급했다.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한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낡은 구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치중할 뿐이다.

현 부회장은 "재무건전성 중시경영, 경영투명성 강화를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재벌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진정 실천했다고 할 수 있는가. 삼성그룹 이재용씨의 변칙세습 문제,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불법 대선자금 제공 문제 등은 우리 나라 재벌개혁의 길이 아직도 멀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 재벌에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유재산권과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경영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현 부회장이 강변하는 한국적 차별화는 결국 재벌 스탠더드, 재벌 총수의 스탠더드일 뿐이다.

현 부회장은 어제 강연에서 "지금 수술(개혁)하면 죽기 때문에, 하더라도 체력을 회복하고 해야한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재계는 경기회복기에 개혁의지를 실천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모처럼 찾아온 회복세를 망치면 안된다는 논리로, 경기가 나쁠 때는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로 개혁에 대한 요구를 언제나 묵살해왔을 뿐이다. 재계는 이른바 '반기업 정서'의 원인이 개혁을 거부하는 스스로의 수구적 태도에 있음을 자각하고, 재벌 총수 감싸기에서 벗어나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2004/05/12 14:12 2004/05/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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