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장은 재계 이익단체의 수장이 아니다
기업지배구조관련 법제도/증권집단소송법 :
2004/12/10 11:51
정부와 국회는 재계의 요구에 휘둘려 증권집단소송제도 훼손시키지 말라
1. 지난 8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 분식회계 사면’과 관련하여,
"소급적용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를 덜어줘야 한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쳤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누구보다 법과 제도의 원칙을 엄격하게 확립해야 할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이 기업의 무리한 요구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태도는 매우 부적절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특히 윤 금감위원장은 기업들의 분식회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미국의 경우를 볼 때 증권집단소송법이 시행되면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재계가 주장하는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그러나 금감위는 전경련처럼 재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 모든 시장 참여자들을 위해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지켜야할 금융감독기구이다. 더욱이 금감위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분식회계를 조사하여 밝혀냄으로써 시장질서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증권집단소송법 시행을 앞두고 분식회계를 철저히 적발할 의지를 밝혀야 할 금감위원장이, 오히려 조사 대상인 재계의 요구대로 법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위치를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주가 조작, 회계 부정 등 증시 불공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더라도 소수 투자자들이 소송을 통해 회복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증권집단소송제는 이런한 소수 투자자의 피해를 보다 쉽게 배상받도록 하고 기업의 불법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내년 시행 예정인 증권집단소송법은 입법 과정에서 소제기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할만큼 과도한 남소방지 장치가 추가되었다.
따라서 금감위원장은 법 자체가 실효성을 잃지 않도록 시장과 기업의 감시를 더욱 철저히 함으로써 선의의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기나긴 입법과정과 유예기간동안 스스로 분식회계를 바로잡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정부와 국회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버티는 재계의 억지를 수용하겠다는 정부 주무부처 수장의 입장이 과연 올바른가.
3.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재계의 집요한 압력에 흔들려 더 이상 증권집단소송법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만약 또다시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증권집단소송제도는 도입 자체의 명분만 남을 뿐 시행과 동시에 사문화될 것이다. 재계의 궁극적인 의도는 분식회계를 집단소송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윤 금감위원장의 말대로 증권집단소송법은 기업 투명성 확보를 위한 개혁입법의 상징이다. 그러나 시행을 불과 한 달도 안 남기고 재계의 억지 요구에 정부와 국회가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와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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