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요구에 또다시 후퇴한 출자총액제한제도
기업지배구조관련 법제도/공정거래법 :
2005/02/14 16:54
정부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된 상황에선 개혁도 성장도 없다
1. 공정거래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이 오늘(14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출자총액제한 적용 기준을 현행 자산 5조원에서 6조원으로 올리고, 부채비율 100% 졸업기준 조항을 1년간 유예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최종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연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경우 출자총액제한 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의 수는 12개였으나,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그 수는 8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비단 이번 법령 개정 과정만이 아니라 1999년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 이후 적용제외와 예외인정 확대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훼손하여 온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여당이 더 이상 투자를 볼모로 하는 재계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재벌개혁의 원칙을 훼손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 기업은 불확실성, 특히 정부정책의 불확실성 하에서는 먼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투자활동을 전개할 유인이 없다. 정부와 여당은 출자총액제한 규제가 기업 활동의 외생변수가 아니라 기업의 로비에 의해 끊임없이 후퇴하는 내생변수임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이번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으로 재벌들이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본 투자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은 경제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규제를 일시 벗어난 재벌은 좀더 확실한 안전판 마련을 위해, 이번에 규제를 벗어나지 못한 재벌들은 아쉬운 마음에 더욱더 세게 로비를 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 스스로가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무너뜨린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투자가 아닌 대정부 로비에 집중될 것이며, 개혁도 성장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3. 물론 공정위와 여당은 당정합의가 출자총액제한제의 원칙을 변경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그간 경제 규모의 확대를 감안하여 자산 기준을 소폭 상향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당정합의대로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출자총액규제를 받는 기업집단의 수는 또다시 3~4개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자산 기준을 불과(?) 1조원 올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출자총액제한 규제의 후퇴에 대한 명백한 시그널을 준 것이라는 점에서 공정위와 여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번에 1조원의 양보를 얻어낸 재벌들이 여기서 만족할 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식으로 규제를 완화한다면, 앞으로 출자총액제한제와 같은 개별 규제는 물론 재벌개혁의 원칙마저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4. 무엇보다 작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불과 두달 후 법안도 아닌 시행령에서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절차적으로도 제도 자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시행령을 통해 개정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 특히 부채비율 100%에 따른 졸업기준 폐지를 1년 유예한 것은 롯데, 삼성 등 이 조항의 폐지로 인해 당장 문제가 되는 기업집단을 배려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결국 공정위와 여당은 경제위기를 볼모로 소수 재벌의 이익을 챙기려는 재계의 치열한 로비에 굴복하여 스스로 만들고 통과시킨 법안을 훼손하고 있다. 더욱이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당정협의안에 동의하여 스스로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고 말았다.
5.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미 지나친 적용제외와 예외인정으로 고사 상태에 빠져 있으며,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 공정거래법상 여타 규제 역시 실효성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가 유일하게 개혁입법으로 손꼽는 증권집단소송법 역시 시행되기 전부터 재계의 로비에 떠밀려 사실상 사문화될 위기에 놓여 있다.
참여연대는 누구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해 앞장서야할 정부와 정치권이 오히려 그나마 존재하는 개혁입법을 후퇴시키고 있는 것을 규탄하며, 더 이상 법을 훼손시키는 것을 중지하고 엄정히 시행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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