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원회는 압력에 굴하지 말고 과거분식 유예안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여 혼란 종식시켜야



1.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 심의를 위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21일 열릴 예정이다. 과거분식과 신규분식을 구분하여 증권집단소송법 적용을 달리하는 방안은 회계원칙에도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 과거분식인지 신규분식인지 여부를 구분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며, 법 적용 과정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점은 그동안 충분히 지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 지도부는 재계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여 과거분식 유예 방침을 밀어붙임으로써 참여정부의 유일한 경제개혁 입법마저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2. 이러한 와중에 이해찬 총리는 최근 국회의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증권집단소송제도와 관련한 정책기조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부담을 질 각오를 갖고 있다“며, ”회계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난 1년 동안 유예기간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나, 지난해는 경기가 나빠 분식을 털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고받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의 발언은 과거분식 유예의 명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총리의 말대로 과거분식과 신규분식의 구분이 어려우며, 이미 유예기간을 주었던 것이기 때문에 또다시 유예할 이유가 없다. ‘과거분식에 한해서만’ 이라는 구차한 명분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이 총리는 또 작년에 기업들이 경기가 나빠 분식을 털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올해부터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은 5대 재벌 계열사나 공기업 및 금융기관들로 대부분 분식을 해소했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그러므로 이 총리가 “한두 건이라도 소송이 발생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기조 변경에 따른 부담을 지고서라도 과거분식 유예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몇몇 기업들 때문에 법 시행을 유보하는 것임을 고백하고 ‘개혁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또한 국무총리가 공식석상에서 한국 기업 전반의 회계분식에 대한 우려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신을 오히려 가중시키고 결국 경기회복마저 지연시키는 자가당착의 모순을 저질렀다.

3.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은 소제기 요건이 너무나 엄격하여 실제로 집단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과거에 분식을 했다는 것만으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주가하락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원고가 입증해야 하는데, 미국과는 달리 증거개시제도(discovery)를 도입하지 않은 한국의 증권집단소송제도에서는 원고가 이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기업들의 과거분식이 드러난다고 해도 이것이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비해 과거분식 유예 방침이 불러올 혼란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당장 기업들에 대한 감리 면제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데 감리를 면제해주는 것은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또, 감사인은 분식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거짓으로 감사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고, 유예기간 동안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대외신인도가 추락할 것이다. 집단소송이 제기될 경우에도 과거분식과 신규분식을 가려내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이 들고, 기업들이 신규분식을 과거분식으로 둔갑시킬 수 있으며, 주가하락의 원인이 과거분식인지 신규분식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힘들다.

4. 과거분식 유예 방침으로 인해 발생할 모든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없앨 유일한 방법은 애초 원칙대로 법을 시행하는 것뿐이다.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재계의 요구나 당론으로부터 초연하게 입법자로서 과거분식 유예 법안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법개정으로 인해 발생할 혼란을 종식시키고 애초 원칙대로 증권집단소송법을 시행하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2005/02/17 14:40 2005/02/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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