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뜻하지 않게도 헌법과 법률, 하부 행정규범 등 소위 “국법질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가 지난 3월에 “외부감사 및 회계에 관한 규정(이하 외감규정)”을 개정하여 과거에 분식회계를 했던 기업이 이를 감추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또 다시 분식회계를 하는 소위 “역분식”을 실질적으로 허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 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반 대중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까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귀신의 소리도 아니고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해프닝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금감위라는 공적 기관이 국법질서를 어지럽힌 매우 커다란 사건이다.

조금 더 차분하게 따져 보자.

회계감사는 경영자가 투자자에게 사업의 결과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강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기업이 투자자로부터 외부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이런 장치가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국법질서를 설계하는 데 힘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을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회계감사를 공정하게 수행할 의무를 감사인에게 부과하고 있으며, 금감위 산하의 증권선물위원회에게 회계감사에 대한 감리 업무수행을 위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위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위법에서 위임한 업무를 보다 잘 수행하기 위해 외감규정을 제정해 운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금감위가 분식회계를 한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들이 역분식을 하는 것에 대해 감리를 하지 않겠으며 설사 감리 과정에서 이런 역분식이 발견되더라도 이에 대해 외부 감사인을 제재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의결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 보아도 외감법에 금감위가 분식회계를 한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보호할 수도 있다는 규정조차 없다. 오히려 외감법에는 분식회계를 한 기업과 이를 묵인한 감사인은 형벌과 과태료, 업무정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금감위가 감리를 통해 보호해야 할 법적 대상은 명백하게도 투자자로 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금감위가 처벌과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할 분식회계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또 이를 묵인한 감사인을 용인하기 위해 당초 보호의 대상인 투자자를 해하는 규정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금감위가 회계감리와 관련한 기준을 제정,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은 투자자를 보호하라는 취지하에서 외감법이 위임한 것이건만, 금감위는 바로 그 권한을 이용하여 법의 위임취지와는 정반대로 투자자를 광야로 내쫓은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금감위의 직권남용이나 법체계상의 모순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도대체 어떤 국가가 명시적으로 불법인 행위를 보호하고 이를 적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도 보호하고 불법행위의 보호에 의해 피해를 볼 사람은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질서를 설계하는 원칙에 관한 문제다. 금감위의 이번 결정이 초래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금감위는 이 내용을 지난 3월초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감위가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얼마나 상세하게 보고했는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보고를 통해 이미 이 문제는 금감위라는 일개 공적 조직의 위법한 행위라는 차원을 넘어서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 글은 뉴스메이커에도 실렸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2005/04/26 13:29 2005/04/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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