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씨가 5년 8개월 동안의 해외도피를 끝내고 귀국했다. 갑작스러운 귀국에 어떤 정치적 배경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를 계기로 김우중씨의 공과와 그가 추진하던 세계경영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김우중씨에 대한 선처와 사면 후 복귀를 노리는 불순한 속셈이 깔려있다. 바로 이런 면에서 필자는 김우중씨에 대한 재평가 논의 자체가 전혀 달갑지 않다. 또한 시기적으로 지금은 재평가 운운할 시점도 아니다. 한마디로 재평가 주장은 선후가 바뀐 주장이다.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평가인 사법적 판단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우중씨는 41조1361억원의 분식회계와 9조9201억원의 불법 대출을 저지르고 200억달러 (약 25조억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중범죄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가 98년 대우그룹의 퇴출을 막기 위해 벌인 광범위한 정관계 로비의 실체, 그리고 여기저기 빼돌린 재산과 대우 그룹의 위장 계열사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우중에 대한 재평가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요 코미디이다.

한편으로 김우중씨에 대한 시장에서의 평가는 재평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종료되었다. 수익성과 무관하게 차입을 통해 몸집을 부풀린 기업 전략은 IMF 외환위기의 변화된 경제 환경하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전략이었다. 다른 재벌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부채를 줄이고, 무수익 사업을 정리하였지만 대우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에 사로잡혀 몸집 불리기에 집착하였다.

김우중씨와 그 측근들은 대우가 정치권력 혹은 당시 구조조정을 주도하던 관료들에 의해 ‘타살’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우 그룹은 비만해진 몸과 질병들을 치료하지 못해 ‘병사(病死)’하였다고 보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

김우중씨는 대우그룹 소속 계열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단적으로 진행하였던 ‘황제 경영’의 전형적 인물이다. 혹자는 김우중씨의 일에 대한 열정, 성실성을 들어 그에 대한 향수와 동정심을 자극하려 한다.

하지만 독단적인 ‘황제 경영’의 폐해는 대우 그룹의 해외 비밀구좌에서 용도가 확인되지 않은 7억 5,342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8,620억원)의 사용처를 오직 김우중씨만이 안다는 사실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가 분식회계와 불법대출을 그룹 임원들에게 지시하고 회사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동안 이를 감시하고 견제했어야할 이사회나 감사 같은 회사 내부 기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김우중 전 회장은 개발연대식 경제성장 전략의 표본이다. 그는 과거의 사람이며, 따라서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을 위해 우리 모두가 극복해야 할 사람이다. 이제 김 전 회장이 한국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바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진실되게 고백함으로써, 그 자신과 같은 불행한 기업인, 대우그룹과 같은 불행한 기업이 다시는 이 땅에 나타나지 않는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또한 기업은 망해도 부도덕한 기업주가 몇 년후 슬그머니 복귀하여 과거의 권세를 누리는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김우중씨의 재평가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인간적 동정, 사면은 그 이후 논의할 사안이다.

이 글은 국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국 팀장)
2005/06/17 10:35 2005/06/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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