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보험회사와 금산분리 원칙
칼럼/기고 :
2006/02/21 00:00
최근 윤증현 금감위원장의 발언(“금산분리 원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을 계기로 금산분리 원칙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든 금융제도가 그러하듯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제도형태는 각 나라의 경제발전 단계 및 그 역사적·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 뿐만 아니라 금융업 내에서도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등의 세부업종별로 규제의 근거와 강도가 동일하지도 않다. 이른바 유럽대륙형 모델에 비해서 영미형 모델에서, 그리고 증권업·보험업에 비해서는 은행업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보다 더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금융정책상의 일반적인 목표 이외에 경제력집중 억제의 관점에서 적어도 은행업 부문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 엄격하게 부과되었다. 반면 증권업·보험업 등의 이른바 제2금융권에서는 사실상 별다른 규제 없이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가 용인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한편으로는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를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를 막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2금융권에서는 이미 한쪽의 규제는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금산분리를 실질적으로 달성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라는 두 번째 통로를 통제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산법 24조 및 공정거래법 11조의 규제는 바로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최근 논란의 중심에는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 특히 삼성생명이 있기 때문에, 보험업에서의 금산분리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을 가장 엄격하게 제도화하고 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은행업과는 달리, 보험업에 대해서는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outright prohibition)에 의거한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은행업만이 아니라 제2금융권까지 모두 포괄하는 우리나라의 금산법 및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잉규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금산분리 원칙은 좁은 의미의 상업은행업(commercial banking)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유 및 업무영역에 대해 사전적·직접적 규제가 없다고 해서 금산분리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의도된 왜곡이다.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가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수단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이 유일한 또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해충돌 및 위험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자산운용규제와 함께 회사법상의 신인의무(fiduciary duties)를 통한 규율장치 역시 금산분리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은행법과 보험법은 금산분리라는 하나의 목표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연방 은행지주회사법은 산업자본이 은행(및 그 지주회사)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은행(과 그 관계회사)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금산분리의 양 측면 모두에 대해 사전적·직접적 금지 원칙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1999년의 금융지주회사법(Gramm-Leach-Bliley Act; 이하 GLB Act)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등 금융업 내의 겸업을 허용한 것이지, 금산분리 원칙을 허문 것은 절대 아니다. GLB Act를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 내지 폐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혹세무민에 가깝다.
한편, 미국 각 주의 보험법(미국의 보험업 규제는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기초하고 있다) 또는 미국보험감독관협회(NAIC)의 표준법안(Model Law)에는 이런 사전적·직접적 금지 규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과 산업의 결합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허용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보험법 규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수단에 기초하고 있다.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중요거래에 대한 개별적 사전심사가 그것이다.
첫째, 미국의 보험회사는 매년 보험감독관에게 연간보고서(Annual Statements)를 제출해야 한다. 연간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마디로 보험회사의 포트폴리오 구성과 사업내용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보고서는 누구나 접근·열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보험회사인 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그 지주회사가 MetLife다)의 2004년도 연간보고서는 본문 132페이지에 참고자료 641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자료 중 장기채권 보유 목록만 140페이지에 이른다. 즉 단순히 집계자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유채권 한 종목 한 종목의 이름, 매입시점, 매입가격, 현시가 등을 모두 기재하고 있다. 우선주, 보통주, 단기채권의 보유 현황 역시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으며, 해당연도의 매입 및 처분 실적 또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솔직히 필자로서도, 이렇게 포트폴리오 내역을 다 까발리게 해서야(속된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보험회사가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둘째, 관계회사와의 거래 중 중요거래(Material Transaction; 대출, 채권, 주식 거래는 총자산의 3.0%를 초과하는 경우, 지급보증은 총자산의 0.5%를 초과하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보험감독관에게 30일 전에 보고해야 하며, 보험감독관이 불승인조치를 내리지 않는 조건 하에서만 거래를 할 수 있다. 보험감독관은 보험회사의 건전성 유지와 계약자 보호의 관점에서 거래의 합리성과 공평성을 판단한다. 그런데 지주회사나 비보험 관계회사와의 거래에서는 이 기준이 총자산이 아닌 계약자잉여금(정의는 다르지만, 자본금과 유사한 액수로 보면 된다)의 2.5%로 대폭 강화된다. 한마디로, 보험업무 영위 목적이 아닌 관계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은 모두 보험감독관의 사전심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사전보고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일련의 유사거래를 반복하는 경우에는 과거 12개월 동안의 거래를 합산하여 판단한다. 보험회사를 포함하여 관계회사 전체가 어떤 특정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보유할 경우에도 30일 전에 보험감독관에게 사전보고해야 한다.
주 보험법의 대표격인 뉴욕주 보험법은 더욱 엄격한 장치를 갖고 있다. 총자산의 0.5~5.0%에 해당하는 중요거래에 대해서는 사전보고 방식을 적용하나, 5.0%를 초과하는 중요거래에 대해서는 아예 보험감독관의 사전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다. 또한 보험회사가 피라미드 출자 방식으로 자회사를 지배하는 것(pyramiding subsidiaries)을 막는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 방식을 취하는 미국 연방 은행법이 보다 직접적이고 사전적인 규제 효과를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함께 중요거래에 대해 건건이 보험감독관의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보험법이 규제의 효과 측면에서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건전성 유지와 고객 보호라는 관점에서는 은행법에 비해 보험법이 보다 포괄적이고 탄력적인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러한 규제가 실제 보험(지주)회사의 경영에는 어떤 효과를 미치고 있는가. 미국 보험지주회사 중에는 MetLife나 Prudential처럼 아예 금융업에만 특화되어 있는 것도 있고, Berkshire Hathaway나 Jefferson Pilot처럼 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산업자본)를 동시에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비금융 관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는 없다. 즉 은행지주회사와는 달리 보험지주회사는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는 있지만, 보험회사의 출자를 통하여 비금융회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험회사건 비금융회사건 간에, (해외합작법인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지주회사 산하의 관계회사 대부분은 100% 완전자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MetLife 산하에는 모두 164개의 관계회사가 있는데, 그 중 148개의 회사가 완전모자회사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장회사는 MetLife 하나뿐이다.
사실 이상의 구조는 보험지주회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로 흔히 거론되는 미국 GE그룹의 경우에도 상장회사는 지주회사 하나뿐이며, 나머지 관계회사들은 모두 100% 출자의 완전모자회사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GE캐피탈 등 금융회사가 비금융 관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예는 없다.
반면, 삼성그룹의 삼성생명은 어떠한가. 삼성생명은 2004회계년도말 현재 총 90.9조원의 자산(일반계정 83.4조원, 특별계정 7.6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일반계정의 주식투자는 7.5조원으로, 일반계정의 운용자산 74.5조원 대비 10.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의 2.5%보다는 주식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삼성그룹의 61개 국내 계열사 중 삼성생명이 출자한 회사는 16개사이며, 그 중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비금융 계열사가 9개사이다. 이들 16개 계열사 중 (지분율 5.0% 이상으로, 사업보고서상 장부가액을 확인할 수 있는) 10개 계열사 주식가액의 합계가 6.9조원으로, 일반계정의 주식투자총액 7.5조원의 91.6%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삼성전자 지분 7.2%의 장부가액이 5.3조원으로, 일반계정 주식투자총액 7.5조원의 70.8%에 이른다. 즉 삼성생명의 주식투자는 압도적으로 계열사 주식에 집중되어 있으며, 또한 그 대부분이 삼성전자 등 상장된 비금융 계열사 주식이다.
요컨대, 미국에서는 보험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보험업에서는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에 의한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옳다. 이건 우리나라의 보험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와 같이, 보험회사의 출자를 통해 비금융 관계회사를, 더구나 상장된 비금융 관계회사를 지배하는 것까지 미국에서는 허용된다고 주장한다면 이건 혹세무민이다. 미국 보험법에는 금산법 24조와 같은 규제는 분명히 없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중요거래에 대한 개별적 사전심사를 통해 사실상 금산법 24조와 같은 규제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험업법상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한도’ 규제는 은행법에 비해 매우 느슨하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질적’ 규제가 사실상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보험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보험법은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엄격한 자산운용규제를 통해, 비록 사전적·직접적 금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을 통한 산업자본 지배를 금지하는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또는 가장 효율적인 규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금산법 24조와 같은 직접적 규제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공시의무나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규제, 나아가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제기해야 옳다. 후자를 빠뜨린 채 전자만 주장하다면, 그건 학문적 사기행위다. 미국의 은행법과 보험법 중 어떤 접근방법을 선택하든 간에,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와 같은 구조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별첨하는 필자의 논문 “미국 보험지주회사제도에서의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 원칙 - 보험지주회사법상의 자산운용규제를 중심으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모든 금융제도가 그러하듯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제도형태는 각 나라의 경제발전 단계 및 그 역사적·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 뿐만 아니라 금융업 내에서도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등의 세부업종별로 규제의 근거와 강도가 동일하지도 않다. 이른바 유럽대륙형 모델에 비해서 영미형 모델에서, 그리고 증권업·보험업에 비해서는 은행업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보다 더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금융정책상의 일반적인 목표 이외에 경제력집중 억제의 관점에서 적어도 은행업 부문에서는 금산분리 원칙이 엄격하게 부과되었다. 반면 증권업·보험업 등의 이른바 제2금융권에서는 사실상 별다른 규제 없이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가 용인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한편으로는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를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를 막는 방식으로 운용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제2금융권에서는 이미 한쪽의 규제는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금산분리를 실질적으로 달성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라는 두 번째 통로를 통제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산법 24조 및 공정거래법 11조의 규제는 바로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최근 논란의 중심에는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 특히 삼성생명이 있기 때문에, 보험업에서의 금산분리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을 가장 엄격하게 제도화하고 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은행업과는 달리, 보험업에 대해서는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outright prohibition)에 의거한 소유규제나 업무영역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은행업만이 아니라 제2금융권까지 모두 포괄하는 우리나라의 금산법 및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미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잉규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금산분리 원칙은 좁은 의미의 상업은행업(commercial banking)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유 및 업무영역에 대해 사전적·직접적 규제가 없다고 해서 금산분리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의도된 왜곡이다.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가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책수단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이 유일한 또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해충돌 및 위험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자산운용규제와 함께 회사법상의 신인의무(fiduciary duties)를 통한 규율장치 역시 금산분리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은행법과 보험법은 금산분리라는 하나의 목표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연방 은행지주회사법은 산업자본이 은행(및 그 지주회사)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은행(과 그 관계회사)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금산분리의 양 측면 모두에 대해 사전적·직접적 금지 원칙에 입각해 있는 것이다. 1999년의 금융지주회사법(Gramm-Leach-Bliley Act; 이하 GLB Act)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등 금융업 내의 겸업을 허용한 것이지, 금산분리 원칙을 허문 것은 절대 아니다. GLB Act를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 내지 폐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혹세무민에 가깝다.
한편, 미국 각 주의 보험법(미국의 보험업 규제는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 기초하고 있다) 또는 미국보험감독관협회(NAIC)의 표준법안(Model Law)에는 이런 사전적·직접적 금지 규정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과 산업의 결합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허용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의 보험법 규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수단에 기초하고 있다.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중요거래에 대한 개별적 사전심사가 그것이다.
첫째, 미국의 보험회사는 매년 보험감독관에게 연간보고서(Annual Statements)를 제출해야 한다. 연간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마디로 보험회사의 포트폴리오 구성과 사업내용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보고서는 누구나 접근·열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보험회사인 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그 지주회사가 MetLife다)의 2004년도 연간보고서는 본문 132페이지에 참고자료 641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자료 중 장기채권 보유 목록만 140페이지에 이른다. 즉 단순히 집계자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유채권 한 종목 한 종목의 이름, 매입시점, 매입가격, 현시가 등을 모두 기재하고 있다. 우선주, 보통주, 단기채권의 보유 현황 역시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으며, 해당연도의 매입 및 처분 실적 또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솔직히 필자로서도, 이렇게 포트폴리오 내역을 다 까발리게 해서야(속된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이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보험회사가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둘째, 관계회사와의 거래 중 중요거래(Material Transaction; 대출, 채권, 주식 거래는 총자산의 3.0%를 초과하는 경우, 지급보증은 총자산의 0.5%를 초과하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보험감독관에게 30일 전에 보고해야 하며, 보험감독관이 불승인조치를 내리지 않는 조건 하에서만 거래를 할 수 있다. 보험감독관은 보험회사의 건전성 유지와 계약자 보호의 관점에서 거래의 합리성과 공평성을 판단한다. 그런데 지주회사나 비보험 관계회사와의 거래에서는 이 기준이 총자산이 아닌 계약자잉여금(정의는 다르지만, 자본금과 유사한 액수로 보면 된다)의 2.5%로 대폭 강화된다. 한마디로, 보험업무 영위 목적이 아닌 관계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은 모두 보험감독관의 사전심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사전보고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일련의 유사거래를 반복하는 경우에는 과거 12개월 동안의 거래를 합산하여 판단한다. 보험회사를 포함하여 관계회사 전체가 어떤 특정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보유할 경우에도 30일 전에 보험감독관에게 사전보고해야 한다.
주 보험법의 대표격인 뉴욕주 보험법은 더욱 엄격한 장치를 갖고 있다. 총자산의 0.5~5.0%에 해당하는 중요거래에 대해서는 사전보고 방식을 적용하나, 5.0%를 초과하는 중요거래에 대해서는 아예 보험감독관의 사전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다. 또한 보험회사가 피라미드 출자 방식으로 자회사를 지배하는 것(pyramiding subsidiaries)을 막는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소유규제와 업무영역규제 방식을 취하는 미국 연방 은행법이 보다 직접적이고 사전적인 규제 효과를 가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함께 중요거래에 대해 건건이 보험감독관의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보험법이 규제의 효과 측면에서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건전성 유지와 고객 보호라는 관점에서는 은행법에 비해 보험법이 보다 포괄적이고 탄력적인 접근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러한 규제가 실제 보험(지주)회사의 경영에는 어떤 효과를 미치고 있는가. 미국 보험지주회사 중에는 MetLife나 Prudential처럼 아예 금융업에만 특화되어 있는 것도 있고, Berkshire Hathaway나 Jefferson Pilot처럼 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산업자본)를 동시에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비금융 관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는 없다. 즉 은행지주회사와는 달리 보험지주회사는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는 있지만, 보험회사의 출자를 통하여 비금융회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또한 보험회사건 비금융회사건 간에, (해외합작법인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지주회사 산하의 관계회사 대부분은 100% 완전자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MetLife 산하에는 모두 164개의 관계회사가 있는데, 그 중 148개의 회사가 완전모자회사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장회사는 MetLife 하나뿐이다.
사실 이상의 구조는 보험지주회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로 흔히 거론되는 미국 GE그룹의 경우에도 상장회사는 지주회사 하나뿐이며, 나머지 관계회사들은 모두 100% 출자의 완전모자회사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GE캐피탈 등 금융회사가 비금융 관계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예는 없다.
반면, 삼성그룹의 삼성생명은 어떠한가. 삼성생명은 2004회계년도말 현재 총 90.9조원의 자산(일반계정 83.4조원, 특별계정 7.6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일반계정의 주식투자는 7.5조원으로, 일반계정의 운용자산 74.5조원 대비 10.1%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의 2.5%보다는 주식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삼성그룹의 61개 국내 계열사 중 삼성생명이 출자한 회사는 16개사이며, 그 중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비금융 계열사가 9개사이다. 이들 16개 계열사 중 (지분율 5.0% 이상으로, 사업보고서상 장부가액을 확인할 수 있는) 10개 계열사 주식가액의 합계가 6.9조원으로, 일반계정의 주식투자총액 7.5조원의 91.6%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삼성전자 지분 7.2%의 장부가액이 5.3조원으로, 일반계정 주식투자총액 7.5조원의 70.8%에 이른다. 즉 삼성생명의 주식투자는 압도적으로 계열사 주식에 집중되어 있으며, 또한 그 대부분이 삼성전자 등 상장된 비금융 계열사 주식이다.
요컨대, 미국에서는 보험지주회사가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보험업에서는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에 의한 금산분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옳다. 이건 우리나라의 보험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와 같이, 보험회사의 출자를 통해 비금융 관계회사를, 더구나 상장된 비금융 관계회사를 지배하는 것까지 미국에서는 허용된다고 주장한다면 이건 혹세무민이다. 미국 보험법에는 금산법 24조와 같은 규제는 분명히 없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광범위한 공시의무와 중요거래에 대한 개별적 사전심사를 통해 사실상 금산법 24조와 같은 규제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험업법상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한도’ 규제는 은행법에 비해 매우 느슨하다.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질적’ 규제가 사실상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보험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보험법은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엄격한 자산운용규제를 통해, 비록 사전적·직접적 금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을 통한 산업자본 지배를 금지하는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사전적·직접적 금지 방식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또는 가장 효율적인 규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금산법 24조와 같은 직접적 규제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공시의무나 관계회사 거래에 대한 규제, 나아가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제기해야 옳다. 후자를 빠뜨린 채 전자만 주장하다면, 그건 학문적 사기행위다. 미국의 은행법과 보험법 중 어떤 접근방법을 선택하든 간에,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와 같은 구조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별첨하는 필자의 논문 “미국 보험지주회사제도에서의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 원칙 - 보험지주회사법상의 자산운용규제를 중심으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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