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재벌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당선자가 구태여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동안 내세우던 ‘친기업’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기업은 계약의 결합체로 정의되기도 한다. 노동과 자본의 계약, 주주와 채권자의 계약, 지배주주와 외부주주의 계약, 생산자와 소비자의 계약 등이 기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발언에서 ‘친기업’은 계약의 일방을 편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는 재벌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강력한 노사분규로 기업이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조결성을 방해하지 말라거나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인수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압적 자세에 대한 비판”을 지적하면서 “개선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그러나 생산자의 담합에 의한 소비자의 피해나 독과점의 폐해를 막기 위한 공정위의 노력을 강화하라는 주문은 없었다.

이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발언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지배주주 편들기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대부분 집단을 이루며, 대기업집단은 대부분 개인이 지배하며, 그 지배력은 대물림된다. 이러한 재벌체제는 계열사 출자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려 한다. 사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로 바뀌었는데,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상징의 의미가 크다. 재벌 총수가 지배력을 강화하고 대물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인수위원회가 국세청에게는 기업 세무조사 축소를 지시하고, 검찰에게는 기업에 대한 포괄수사 자제를 요구한 것에서도 이러한 의지는 잘 드러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는 상징인 동시에 과정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는 지주회사제도의 완화를 수반할 것이며, 계열사의 상호출자를 금지하는 제도와 금융보험사의 의결권행사를 제한하는 제도의 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모든 재벌규제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재벌규제는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경제위기 이후에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도 주요 목적이 되었다. 이러한 규제가 무력화된다면 재벌체제는 더 견고해지고 기업지배구조는 악화될 것이다.

재벌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수위원회에 전달된 대한상공회의소의 ‘실천과제’에는 대기업집단지정제도 폐지가 들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동일인이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을 지정하며, 이렇게 지정되는 기업집단은 금산법을 포함한 여러 법률에서 차용된다. 따라서 대기업집단지정제도가 폐지된다면 모든 재벌규제가 법률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도 재벌 총수는 기획조정실처럼 법률은 물론 정관에도 없는 조직을 통해 기업을 지배함으로써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앞으로 기업집단이라는 정의마저 법률에서 사라진다면 재벌 총수의 권한은 더욱 커지고 책임은 더욱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주주의 피해를 의미한다.

차기 정부의 ‘친기업’이 친재벌이어서는 안 된다. 반노동자, 반소비자, 반주주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원회의 언동은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매우 염려스럽다.

김진방(시민경제위원회 위원장/인하대 경제학)

* 이 글은 2008. 1. 12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2008/01/14 16:47 2008/01/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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