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동窓> 페놀과 핫라인
태안 주민을 제치고, 대구 시민을 누르고 재계와 핫라인을 개설하는 것이
정녕 이명박 대통령의 가치관이란 말인가.
낙동강에는 페놀이 흘렀다. 어쩌면 포르말린도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 무뇌아(無腦兒)의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태안에는 기름이 덮쳤다. ‘착한’ 국민들이 다 동원되어 닦고 또 닦았지만 카펫속에 숨어있는 먼지처럼 조금만 들쳐 내면 기름 천지라고 한다. 주민들은 오염된 환경 속에서, 각박한 생활고 속에서 심각한 스트레스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은 “핫라인” 정책을 발표했다.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절실한 메시지를 ‘중간 유통단계’를 건너뛰어 직접 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취지이리라. 사람들은 당연히 태안 주민을 위한 핫라인, 대구 시민을 위한 핫라인을 떠올렸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는지 이명박 정부의 “당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외”였다. 재계와의 핫라인을 개설하여 24시간 휴대전화로 통화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대통령은 재계가 무슨 메시지를 그리도 절실하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고 판단했을까. 재계는 이미 전경련 부회장을 각료로 입각시켰다. 대통령 당선자가 전경련 회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재계는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잘 나가는 연구소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그들이 불러주는 대로 붓끝을 놀릴 용의가 넘쳐나는 사이비 논객도 즐비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절실하단 말인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대선을 통해 이런 정책기조가 국민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친기업적인 정책기조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재량범위 내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친기업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국가와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기본적 의무마저 망각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취임시 헌법 제69조의 규정에 따라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중략)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서 약속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은 대통령이 맘에 들면 노력하고 다른 것이 바쁘면 하지 않아도 되는 재량 사항이 아니라 모든 대통령이 성실하게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자 의무인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준수해야 할 헌법은 제10조의 규정을 통해“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도 역시 대통령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다시‘핫라인’으로 돌아가 보자. 대통령이 정신을 쏟아야 할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선거로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친기업 정책일까, 아니면 대통령이 준수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상의 의무인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일까? 당연히 후자의 의무 이행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태안 주민과의 핫라인, 대구 시민과의 핫라인도 개설되기 이전에 재계와의 핫라인이 먼저 개설되는 것일까? 혹시 이명박 대통령은 기름에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태안 주민의 권리나, 페놀에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실 대구 시민의 권리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고 모든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물론 형식적으로 이를 결정하는 것은 규범적 의무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상식이다. 우선순위란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태안 주민을 제치고, 대구 시민을 누르고 재계와 핫라인을 개설하는 것이 정녕 이명박 대통령의 가치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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