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 한용외, 조관래. 삼성SDS 신주인수권사채(BW) 헐값 발행사건과 관련하여 삼성특검이 불기소(기소유예) 처분을 한 삼성SDS의 전 이사들이다. 약 649억원의 배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삼성특검이 불기소(기소유예) 처분을 한 주요 이유는,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한 구조조정본부가 추진한 것이어서 사실상 그 사채 발행을 막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전문경영인 항변, 즉 ‘총수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운영되는 현실에서 총수 결단이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절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항변’으로서, 자신은 마름에 불과하다는 ‘마름’ 항변이다. 많은 화이트범죄 사건에서 재벌총수는 휠체어 항변을, 전문경영인은 '마름' 항변을 내세운다.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계급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사회의 구조를 고려할 때, 개인적으로 이해가 된다. 이건희 회장이 작정하고 하겠다는데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만일 반대한다면 재무 담당이 아닌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일에 낀다고 핀잔을 받겠지. 아니 바로 이사직에서 쫓겨날 지도 몰라. 나보고 ·책임지고 하라는 것도 아니고 눈 감아 달라는 정도인데, 이 정도면… 만일 고민을 했다면 이런 고민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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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 박사. 지난 5월 23일 정부로부터 대운하 정책에 대한 반대논리를 뒤집을 대안 마련을 강요받았다는 ‘대운하 양심선언`을 발표한,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다. 김이태 박사도 양심선언을 하기 전에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정하고 하겠다는데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만일 반대한다면 무능력하고 일개 연구원의 말에 불과하다면서 폄하하겠지. 아니 바로 책임 연구원직에서 쫓겨날 지도 몰라. 나보고 대운하를 책임지라는 것도 아니고 논리를 개발하라는 정도인데, 이 정도면….

한 쪽은 도장을 찍었고, 다른 한 쪽은 도장을 찍을 위치도 아닌데 뛰쳐나왔다. 도장을 찍은 사람은 이사 임기를 마치고 삼성그룹과 삼성그룹 이외의 다른 회사에서 좋은 직위로 잘 지내다가 삼성특검으로부터 ‘마름’이라는 이유로 불기소(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위법행위 논란을 훌훌 털고 빠져나왔다. 도장을 찍지 않고 뛰쳐나온 사람은 이명박 정권 아래서 연구원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불안한 처지에 놓인 채 며칠째 연락두절 상황이다.

삼성그룹의 이사 정도면 급여도 상당할 것이고, 삼성그룹에서 나오더라도 오라는 곳이 많을 것이다. 반면 국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은, 삼성그룹의 이사보다 급여도 턱없이 적고 신분도 불안정할 것이다. 그런데 삼성그룹의 이사들보다 훨씬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보다 훨씬 거대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데, 삼성의 마름들이 약 649억원의 배임 혐의임에도 ‘마름’이라는 이유 하나로 법원에 기소도 되지 않은 채 불기소(기소유예) 처분이나 받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5월 26일에는 농림식품부의 한 공무원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한마디로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양심선언을 하였다. 지금 ‘마름’도 되지 않는 국민들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위로부터의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언론 ‘마름’들과, 살인 예비음모라고 할 수 있는 광우병 수입 지시를 반대하지 못하는 공무원 ‘마름’들과, 거리에 뛰쳐나왔다고 학교도 못 가게 고등학생이나 잡으라는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경찰검찰 ‘마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머슴도 아닌 ‘마름’ 정도면 좋은 대접을 받고 있고,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한다. 삼성 마름도 책임을 져야 하고, 다른 마름들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실행위원)

2008/06/04 11:29 2008/06/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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