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판 방청기>항소심 제2~3차: 삼성이 만들어낸 허상
삼성 항소심 공판 제 2~3차 방청기
- 삼성이 만들어낸 불안한 허상 깰 수 있는 방법은?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씨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한 말이 있다. “예술은 사기다” 라고.
가끔 전시회에 가서 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서 당황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나도 10분이면 저것 보단 더 잘 그릴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볼 때 말이다. 기본적인 뎃생실력도 엉망인데다가 색도 우중충 해서 아무리 봐도 멋있다고 느껴지지 않은 현대 미술 작품을 보면 좀 당혹스러워진다. 해설을 열심히 읽으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징도 딱히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저 작품은 멋진 전시회에 조명을 받으며 걸려있고 수많은 ‘전문가’ 들이 저것은 멋진 작품이라고 말하니 관람객들은 저마다 당혹감을 감추고 애써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풍경이 종종 벌어진다.
삼성항소심 공판을 방청하다 보면 당혹스러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단 기본적인 논리관계가 엉망인데다가 경험적으로 봐도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속됐다고 주장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판에 나온 수많은 증인들은 모두 삼성 측의 말을 되풀이 하니 딱히 할말이 없어진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8월 29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96년에 삼성에버랜드는 회사창립 이후 당시까지 발행한 주식 수에 두 배에 이르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를 발행하였다. 발행 이유는 당시 회사의 단기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서라고 한다. 판사도 의구심이 들었는지 “당시 수 천 억 원의 부채를 해결하고자 단지 100억 원이 들어오는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인지”를 물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 재무팀 증인은 “100억원이라도 들어오면 그 돈을 통해 은행 융자를 더 차입할 수 있다” 라고 증언하였다. 판사는 결국 “음... 말은 돼네요 말은 돼...”라며 넘어가게 됐다.
삼성에버랜드는 주주배정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 인수를 부탁하는 청약서를 각 주주들에게 모두 인편으로 발송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후에 청약날짜가 변경될 때 마다 변경된 청약서를 우편이 아니라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특검이 “인편으로 전달했다는 이유가 사실은 전달하지 않았는데, 전달했다는 우편기록이 없으니까 인편으로 전달했다는 것 아니냐” 라고 물으면 전환사채의 내용을 설명하고자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계열사 임원인 삼성에버랜드 개인 주주들에게도 직접 전달하면서 전환사채 설명을 했나?”, “비서에게 놓고 갔을텐데, 직접 방문할 필요가 있었나” 라는 판사의 질문에는 비서 등에게 놓고 가기는 했지만 직접 방문하는 것은 예우상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당시 삼성에버랜드 기존 주주는 법인주주와 개인주주 모두 포함해서 26명이었다. 26명 모든 기존 주주들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한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기존주주가 자발적인 의사결정으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발행은 주주발행 방식이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만일 주주발행 방식이라면 현저한 저가로 발행한 전환사채를 이재용 씨가 모두 인수했다 하더라도 배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전환사채를 발행했다는 사실을 기존주주에게 알리지 않고 이재용 씨가 저가로 인수했다면 배임행위를 피해가기가 어렵다.
96년 10월 30일 삼성에버랜드 재무팀 직원 3명은 26명의 기존 주주들에게 전환사채발행 통지서를 당일 모두 인편으로 전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까지 한솔건설, 한솔화학이 주주명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서 애초에는 그 두 회사를 뺀 24명의 주주에게 전달할 청약서만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삼성에버랜드 측 증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서 한솔제지에 전화해보니 한솔건설과 한솔화학도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서 그날 두 회사의 청약서를 만들고 마찬가지로 그날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96년 10월 30일 오전에 이사회를 하여 전환사채를 발행할 것을 최종 결의하고, 24개의 청약서에다 두개의 청약서를 추가해서 만들고, 단 3명이 26개의 기존주주에게 모두 인편으로 전달을 마쳤다는 것이다. 삼성직원들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들었어도 물리적인 한계에 직면하지 않았나 싶다. 판사는 “인편으로 전달하려고 해도 퇴근시간 전에가야 만날 수 있으니, 점심먹고 오후부터 퇴근시간까지 그것이 가능했나”를 물었으나 증인들은 모든 주주들 사무실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답답한 판사가 “왜 그날 모두 다 전달했다고 말하냐”, 또는 “증인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물으면 모른다고 하지 왜 계속 변명하려고 하나“ 라고 추궁해도 은근 슬쩍 넘어갈 뿐이다.
현대 미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뮬라크라’라는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알아야한다. 시뮬라크라는 실제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보다 더 중요하고 오히려 실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것이 진실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삼성이 만들어낸 삼성공화국이라는 시뮬라크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공판을 지켜보는 내내 놀라게 된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개요를 보면 상식적으로, 경험적으로 무엇이 진실인지는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증인선서를 하고 공판에서 증언하는 모든 증인들이 입을 모아 비정상적인 상황이 진실이라고 발언을 한다. 그리고 그 시뮬라크라가 1심 재판에선 실제로 진실이 되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그래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이 불안하게 엉겨붙어 있는 시뮬라크라를 해체할 수 있는 그런 증인이 이 지리한 공판이 끝날 때까지 과연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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