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주종환은 1999년 6월 30일(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를 탈퇴하고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2. 재벌개혁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평균 400%를 넘는 부채비율을 낮추는 재무구조 개선, 둘째,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사업영역을 소수의 핵심분야로 집중하는 사업구조 개선, 셋째, 전횡을 일삼으면서도 부실책임은 지지 않는 총수체제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선 등이 그것이다.

3. 취약한 재무구조와 방만한 사업확장 등의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총수 일인 지배체제의 결과임을 감안하면, 지배구조 개선은 재벌개혁 과제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지난 3월 18일 재경부 주도 하에 형식적으로는 민간위원회로 출범한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비록 세간의 관심대상에서 비켜나 있기는 하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4. 그러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위원 구성에서부터 그 본래 취지를 크게 벗어나더니 결국 예상했던 대로 지배구조의 개선을 기약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5, 먼저, 위원회 구성 문제를 보자. OECD의 '기업지배구조 핵심 원칙'(Core 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에서 분명히 지적한 바와 같이,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은 기업경쟁력 강화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에 특수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의 장기적인 투자와 참여(the long-term investment and participation of firm-specific asset holders)를 이끌어내는 것이 요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의 지배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위원회라면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형태로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14명의 위원 중 오직 한 사람(본 참여연대가 추천한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장 주종환 교수)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은 모두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자 대표, 중소기업 대표, 소비자 대표가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벌산하 경제연구소 소장, 회계법인 사장, 법률회사 사장, 금융기관 사장 등으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지배구조 개선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의 재구성을 요구하였으나, 끝내 수용되지 않았다.

6. 여기서 분명히 지적할 것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벌개혁과 노사협력을 끊임없이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책실행 단계에서는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 단적인 예로, 노동자 대표의 위원 선임을 요구하였을 때 재경부의 답변은 노동법학자 1명을 위원으로 선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직접 추천은 물론 노동계와의 협의도 없이 선임된 인사가 진정한 노동자 대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노동계에 직접 확인한 결과 그 노동법학자는 노동계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학자라고 하였다. 재벌개혁의 현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7. 한편, 재벌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인사들이 대다수인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의 논의 결과는 당연히 지배구조의 개선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OECD의 '지배구조 핵심 원칙'은 ① 주주권의 원활한 행사(의결권 위임 활성화 등), ② 모든 주주에 대한 동등대우(소수주주권 확대 등), ③ 이사회의 기능 강화(사외이사 수 확대, 감사위원회 설치 등), ④ 경영공시 강화 및 투명성 제고(공시기준 강화 등), ⑤ 이해관계자의 권리 확대(종업원 참여 확대 등) 등을 회원국에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는, 이사회의 기능 강화 등 일부 형식적인 개선 내용을 제외한다면, 투명성 제고라는 애초에 제시했던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 오히려 기업가정신의 고취에 논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업가정신을 고사시킨 장본인이 바로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그릇된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위원회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8. 여기서 분명히 확인할 것이 있다. OECD의 '지배구조 핵심 원칙'은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구축의 최소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OECD 회원국이 반드시 따라야 할 강제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OECD 회원국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는 부과된 것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조차 왜곡될 정도로 우리 나라는 재벌이 지배하는 구조하에 있는 것이다. 재벌이 지배하는 한 우리 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9. 한편, 최근 5대 재벌의 제2금융권 지배 심화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이에 대한 개선대책을 정부차원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벌 자체의 지배구조 개선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제2금융권의 지배구조이라고 해서 제대로 개선될 지는 지극히 의문시된다.

10.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유구조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계열사 출자를 기초로 한 총수 일인의 독점적 소유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정책당국은 소유구조 개선에 명확한 원칙을 조속히 확립해야 한다.

또한 지배구조의 개선은 정책당국(재경부, 공정위, 금감위 등)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해관계자의 직접적인 참여만이 가장 확실한 해결 방안이다. 따라서 노동자, 소액주주, 투자자, 소비자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재벌에 의해 그 권익이 침해되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예를 들어 집단소송제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11. 참여연대는 재벌개혁 과제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이 현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에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대표가 모두 포함되는 형태로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재구성되어 재벌개혁의 핵심과제를 전면적으로 재논의하여야 함을 요구한다. 아울러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현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에서는 탈퇴함을 선언한다.
경제민주화위원회
1999/06/30 00:00 1999/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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