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급급해 굴욕적 협상 진행, '선별적' 외자유치 노력 필요
기업별 이슈/현대그룹 :
2002/01/21 13:49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월버 로스와의 협상을 우려한다
1. 현대투신 매각협상이 결국 결렬되었다. 정부가 최종적으로 AIG 컨소시엄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을 결렬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시종일관 구조조정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채 외자유치에만 급급하여 AIG 컨소시엄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녔으며, 하마터면 국익을 크게 해치는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할 뻔하였다.
2. 정부는 애초에 현대증권의 5%배당을 받는 참가적 우선주를 시가보다 10%싼 8,940원에 넘겨주기로 하여 헐값매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도, AIG 컨소시엄이 바로 다음날 인수가격을 7,000원으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자 현대증권 이사회를 압박하여 AIG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AIG 컨소시엄이 다시 입장을 바꿔 배당률 인상, 5년 만기 전환 우선주를 1년 후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할 것, 5년 뒤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전해 줄 것 등을 요구하여 재협상이 진행되었다. AIG 컨소시엄은 다시 우선주가 아닌 보통주로 인수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가, 막판에는 제일은행과 같은 Put Back Option(향후 현대투신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경우 정부가 이를 책임지는 조건)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와 같이 터무니 없는 요구를 내걸었던 AIG 컨소시엄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경영할 목적보다는 벌쳐펀드적인 성격이 강했음에도 정부는 어떻게든 현대투신을 매각하는 '성과'에만 급급해서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했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구조조정의 목적을 다시 되새기고 진정으로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외자유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3. 그러나 정부가 새로이 현대투신 매각 협상을 진행하면서 AIG 컨소시엄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윌버 로스를 여전히 협상대상자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새로 전개될 협상도 AIG 컨소시엄과의 협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윌버 로스는 이번 현대투신 매각협상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국내 기업 구조조정에 간여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인물로서 그 신뢰성을 신중하게 재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윌버 로스는 한라그룹 부도 당시 만도기계와 한라시멘트의 구조조정을 맡아,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6-70%의 부채를 탕감 받고 나머지 부채는 해외 브릿지론을 들여와 탕감하여 우량해진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는 소위 로스차일드식 구조조정을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이 우량해진 두 기업의 지분을 30% 차지하는 등 폐해가 드러나 문제가 된 바 있다.
윌버 로스는 또한 이 과정에서 국내 금융기관의 부채를 해외유치자금으로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자신이 운용을 맡고 있던 서울구조조정기금을 동원하여 부채를 갚아 비난을 사기도 했다. 서울구조조정기금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출자하여 조성한 기금인데, 금융기관들은 한편으로 한라 계열사들의 부채를 일부 탕감해주고 나머지 일부는 자신들이 내놓은 돈으로 상환을 받는 셈이 되었으며, 이것이 문제되자 서울구조조정기금은 윌버 로스와 맺었던 자산운용 계약을 해지하였다.
위와 같이 구조조정의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게 편법을 동원하여 도덕적 해이를 낳았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내 금융기관과 국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한 윌버 로스를 우선적 협상파트너로 삼을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4. 제일은행 해외매각에 대해서도 정부가 너무 서두른 나머지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넘겨주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조건적인 해외매각이 반드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현대투신 해외매각을 무조건 성사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과연 어떤 방식으로 현대투신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을 줄이고 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인가를 심사숙고하여야 할 것이며, 새로 전개될 매각협상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원칙을 살리고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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