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공정거래법 개정때부터 지적되었던 우려 현실화



1. 지난 26일(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공정거래법을 뒷받침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참여연대는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안은 공정거래법이 재벌규제 핵심법률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을 최종 확인해 준 것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작년 말 개악된 공정거래법 상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구체적 시행방침을 정하는 것이었는데, 우려했던 대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규제제도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공론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 채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지주회사의 범위를 크게 축소함으로써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2.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안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제외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동일업종'의 범위를 '표준산업분류 중분류를 기준으로 출자회사 매출액의 25%, 피출자회사 매출액의 50%를 넘는 업종'으로, 그리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종'의 범위는 '판매, 유지, 관리, 보수, 생산, 부품공급 등에 있어 50% 이상의 거래관계를 가진 경우'라고 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범위지정방식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집행과정 및 그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외부인이 개별기업의 업종별 매출액 비중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수직계열화된 계열사간의 내부거래 규모에 대한 정보 역시 외부인은 접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적규제에 대한 정보가 정부규제기관과 비규제기업에만 존재하게 되어, 결국 규제자와 피규제자 사이의 담합 및 부패를 조장하고, 외부 전문가에 의한 평가와 제도개선 노력을 불가능하게 하는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공정위와 재벌 사이의 관계가 파출소와 유흥업소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작년 11월 30일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한성대 교수)과의 대담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예외의 자의성을 없애기 위해 표준산업분류 세분류 기준을 사용할 것이며, 민간전문가를 포함하는 심사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3. 또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 한도(순자산의 25%)를 초과한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행사만 금지하는 법률내용에 근거하여, 시행령 개정안에서 공정위가 금지명령을 내리면 그로부터 10일이내에 기업들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주식내역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식내역은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필요시마다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전히 무의미한 제도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위반하여 받게되는 의결권 행사금지라는 최소한의 제재수단마저 아무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는 주식을 기업이 자기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면, 공정위에 의결권 행사 금지대상 주식으로 신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규제를 지킨 기업과 위배한 기업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규제를 규제라고 할 수 있는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김상조 소장과의 대담에서 기업의 자의적 악용을 막기 위해 의결권 금지대상 주식내역의 변경에 일정한 제한을 두겠다고 답변한 바 있는데, 이 역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4. 또 시행령 개정예고안에서는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지주회사의 기준은 현행 자산규모 3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조정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공정위는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지난 2001년 7월말 기준, 자산규모 300억원 이상의 지주회사는 20개였으며, 그중 7곳이 자산규모 300억원에서 1000억원 사이의 지주회사였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제도를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 확대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부채비율, 자회사 지분율, 금융자화사와 비금융자회사 동시 보유 금지 등의 면에서 행위제한 의무를 부과하여 지주회사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만약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자산규모 1000억원 이하의 지주회사들은 지주회사제도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아무런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 문제가 만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5. 작년 말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시행령의 보완을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앞서 본 바처럼,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무의미한 제도로 추락하였음이 확인해줄 뿐이다. 이는 작년 12월 시행령의 모법인 공정거래법 자체가 개악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 재벌기업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방해 등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재벌규제정책의 핵심은 손쉽게 폐기해버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현 정부는 더 이상 재벌개혁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으며 그 책임은 결국 청와대에 있음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개혁센터


2002/01/28 12:47 2002/01/2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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