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에게 대한생명을 맡기는 것은 또 다른 비극



1. 최근 각종 언론 보도를 보면, 한화컨소시엄의 대한생명 인수는 마치 기정사실화된 듯 하다. 실제 이 건을 심사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는 아직 심의를 계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별한 결론을 공표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선 이 달 안으로 대한생명 매각 본계약이 체결될 것이고 이미 양해각서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매각 합의단계에 이르렀다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2. 참여연대는 이렇게 정부가 공식절차를 무시한 채 언론 플레이를 통해 대한생명의 처리를 서두르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생명에만 3조 5,500억원, 전체적으로는 15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금융기관이 정부와 산업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율적인 경영판단 및 심사 기능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관치금융을 청산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체득한 국민적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대한생명의 처리라는 목표가 산업자본의 대한생명 인수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산업자본이 과거 다수의 금융기관을 부실 경영하여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한 책임을 지고 있는 한화그룹, 또 현재에도 금융계열사 대부분이 부실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화그룹에게 투입된 공적자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대한생명을 팔아 넘긴다면, 과연 이 정부는 과거의 실패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는 공적자금의 조기 회수 또는 부실금융기관 처리 실적만을 쌓기 위해 정부가 또 다른 부실의 원인을 조장하고 있다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3. 한화그룹은 과거 한화종금, 한화투신, 충청은행 등 부실화되었던 금융기관의 대주주였다. 따라서 대한생명이라는 새로운 금융기관을 맡기기에 앞서 과연 그 부실책임을 완전히 해소했는지가 우선 확인되어야 한다.

한화측에선 정부가 발행하는 5년 만기 증권금융채권 1,300억원을 실세금리보다 낮게 인수함으로써 책임을 모두 이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화종금에만 8,251억원(2001. 8. 공적자금백서) 또는 1조 3,942억원(언론보도)의 국민 혈세가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겨우 1,300억원에 대한 금리차 만큼의 부담으로 과연 부실책임을 모두 해소했다고 볼 수 있는 지 사회적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 부실금융기관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액수와 내역, 이들 부실금융기관과 한화그룹과의 거래관계, 부실에 이르게 원인, 한화의 손실분담 내역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그 책임을 추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주주의 부실책임을 추궁하는 데 아무런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금감위는 한화증권의 선물업 진출 허가를 내주기 위해 규정까지 바꾸어가면서 외환위기 이전의 충청은행 부실에 대해서는 한화그룹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화그룹이 충청은행에서만 4,300억원을 가져다 쓰고, 한화종금으로부터는 1,250억원을 가져다 쓰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도 한화그룹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특정기업에게 허가를 내주기 위해 규정까지 바꾸었던 정부가 다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인수를 위해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장차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단지 금감위의 인허가 지침 또는 규정에 불과한 '보험업법감독규정'이나 '부실금융기관대주주의경제적책임부담기준'을 근거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상위법규인 '보험업법시행령'에서 규정한 주요 출자자 요건(특히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에 의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금융기관의 최대주주 및 주요주주 또는 그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야 한다는 규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스스로 정한 내규에 맞추었다고 해서 장차 법적, 정치적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4. 또한 한화그룹에 새로운 금융기관을 맡겼을 때 이를 건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도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최근 한화그룹 중 3개 계열사는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 결과 분식회계로 제재를 받기도 했다. 한화그룹의 분식회계는 단순히 회계처리상의 견해차이라기보다는 대규모의 손실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실제 관련회사들은 분식회계사실을 수정한 후 대부분 대규모 적자를 시현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원장은 징계 사유를 입찰조건에 연계시키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규모 적자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풀린 산업자본에게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된 금융기관을 맡기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더구나, 한화그룹의 4개 금융관련 계열사 중 한화파이낸스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260억에 자본금 △500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있으며, 외부감사인도 계속기업에 관한 중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 파산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실이 극도에 달해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에 있는 한화파이낸스의 대주주인 한화증권과 한화종합화학으로 하여금 또다시 대한생명을 인수하도록 하는 일에 금융감독당국이 앞장서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거 한화종금은 2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 재경원간부 10여명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검찰조사 결과 확인되기도 하였다. 정부 및 금융감독당국이 공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면 과거 한화그룹의 불법로비경력을 새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5. 참여연대는 정부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이 사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만일 정부가 이번 사안을 졸속으로 결정할 경우 이는 또 다른 비극을 배태하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의 금융개혁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중대한 과오가 될 것임을 분명히 지적한다.
경제개혁센터


2002/04/22 11:38 2002/04/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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