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처리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
기업별 이슈/SK그룹 :
2003/03/13 15:15
불법행위 관련 임원들은 경영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
- SK글로벌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가되어서는 안될 것
- 정부가 개별기업과 금융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개입해서는 안될 것
1. 지난 11일 검찰은 SK그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특히 SK글로벌이 은행명의의 채무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 등으로 1조 5천억원 이상의 분식회계를 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 결과 최태원 회장, 손길승 회장 등이 배임혐의로 기소됨으로써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참여연대는 경제위기 이후 지난 5년 동안 진행된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가 재연된 현실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검찰과 금감위·공정위 등 수사기관 및 감독기관의 엄정한 법 집행 노력 없이는 건전한 시장경제질서의 확립이 불가능함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2. 따라서 참여연대는 정부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이 시장에 미칠 파장을 감안하여 이른바 '재계에 대한 배려' 또는 '개혁의 속도조절'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부의 이러한 언사가 실제로 검찰 및 금감위·공정위의 권한행사에 대한 자의적 개입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오히려 장기화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고건 총리가 공정위의 이미 예정된 부당내부거래조사 연기를 요청한 것은 감독기관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이며 개혁의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처사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 연기는 한국의 재벌에 심각한 부당내부거래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확인해주는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3. 또한 참여연대는 SK글로벌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부담이 SK그룹의 여타 계열사 및 채권금융기관에 전가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즉 SK글로벌의 회생을 위해 여타 계열사의 직·간접적 지원을 묵과하거나 채권금융기관에 지원을 강요하는 식의 방안이 시행된다면, 이는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조장·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다.
지난날 기아·대우·현대그룹의 위기과정에서 한국경제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교훈, 즉 위기관리라는 명목으로 미봉책으로 대응하다고 부실을 더욱 키웠던 교훈을 잊지 말기를, 특히 정책담당자들에게 요구한다. 시장은 이미 비가역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변화된 시장에 과거의 구태의연한 수단을 적용한다면, 이는 SK글로벌이라는 개별기업의 문제를 SK그룹 전체로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로 확대하는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참여연대는 SK글로벌 사건의 처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밝히는 바이며, 이러한 원칙이 훼손될 때에는 법률이 허용하는 바에 따라 그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가. SK글로벌의 부실이 SK텔레콤을 비롯한 여타 계열사에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SK그룹의 계열사들이 자산매입이나 증자참여 등의 방식으로 SK글로벌을 지원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 SK글로벌 측이 "향후 정보통신분야를 강화하고 부동산매각 등 자구노력에 주력할 것"이라고 발표한 점에 주목한다. 이는 여타 계열사, 특히 SK텔레콤의 지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현재에도 SK글로벌의 전용회선을 임대하는 등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바, 향후 SK글로벌의 회생을 돕기 위해 SK글로벌과의 거래관계를 확대하거나 불필요한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SK텔레콤이 지난 2001년도에도 사외이사 및 참여연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SK글로벌의 부동산을 매입해 주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지원을 행하여 주주들을 실망시킨 사례가 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SK글로벌에 대한 지원으로 인해 계열사들이 손실을 입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최태원 회장 및 손길승 회장 등 불법행위에 관여한 이사들과 임원들은 향후 SK텔레콤을 비롯한 여타 계열사의 경영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최태원 회장 및 손길승 회장은 대규모의 분식회계를 주도하였으며, 비록 사법부의 최종판단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 이들이 심각한 범죄에 관여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이들은 개인의 이익 또는 그룹의 이익을 위해 개별 계열사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농후한 바, 향후 이들을 경영진에서 배제하여 각 계열사가 독립적으로 경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번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을 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된 SK텔레콤을 비롯한 계열사들은 이들을 이사회의 구성원에서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말해 이번 사건에 연루된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한다.
다. SKC&C와 와이더덴닷컴 등 최태원 회장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회사들이 SK텔레콤 등과 맺은 거래관계가 정리되어야 한다.
최태원 회장이 약 45%의 지분을 갖고 있는 SKC&C는 이번 수사결과 최태원 회장의 그룹지배권 확보를 위한 돈줄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지난 2000년에 이루어진 SK텔레콤과 SKC&C간의 IT자산양도계약 및 IT Outsourcing계약이 사외이사들을 기망하여 내부거래 조건을 위반한 상태에서 진행된 것임을 다시 지적한다.
당시 내세웠던 HP와의 합작이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성사되지 않은 이상 SK텔레콤은 SKC&C와의 당시 계약을 모두 취소하고 IT관련 자산을 장부가에 환수함과 동시에 IT Outsourcing계약관계도 청산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와이더덴닷컴 등 최태원이사가 개인자격으로 투자한 회사들과의 불투명한 거래관계도 완전히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라. 채권은행들 스스로 허술한 대출 사후관리의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하여 그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금융감독당국 역시 조사와 제재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이번 검찰 수사결과에서 가장 개탄스러운 내용 중의 하나는, SK글로벌이 은행명의의 채무잔액증명서를 위조하여 총 1조 1,181억원에 달하는 은행채무(외화외상매입금, 일명 Usance)를 '0'으로 처리한 것을 채권은행들이 적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이른바 구조조정을 시행한 은행들의 대출 사후관리 실태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도대체 무엇을 구조조정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채권은행들은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여 그 책임자를 문책하여야 할 것이며, 금융감독당국은 이들 채권은행들의 대출 사후관리 과정의 고의 또는 중과실 책임 여부에 대해 조사·제재하여야 할 것이다.
마.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된 공정거래법 및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검찰 조사결과 중 SK글로벌의 해외현지법인을 이용한 이면거래 문제는 해외현지법인을 공정거래법상의 지급보증금지,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의 예외조항을 대폭 축소하는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회계법인의 부실 회계감사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회계법인의 감사업무와 컨설팅업무의 분리, 그리고 CEO와 CFO의 재무제표에 대한 인증의무 등 회계감독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의 불법행위의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 피해당사자가 스스로 손쉽게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즉 불법행위 책임자에게 엄중한 경제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집단소송제도를 조속히 입법화하여야 할 것이다.
바. 정부는 위기관리의 미명하에 개별기업과 개별금융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개입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검찰과 금감위·공정위의 독립성을 침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대우그룹 부도 당시의 투신사 환매방지대책, 현대그룹 위기 당시의 회사채신속인수제도 등 이른바 금융시장 안정과 위기관리의 명분하에 시행된 대증요법의 후유증을 상기하여야 한다.
원칙을 훼손한 위기관리대책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또한 정부는 빅딜정책과 각종 게이트 사건의 결말을 상기하여야 한다. 감독기관과 수사기관을 통한 자의적 문제해결은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양산할 뿐이다.
법과 제도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만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위기관리대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에도 실패하고, 결국 위기관리에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위기관리와 구조개혁을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근시안적 이분법, 이것이 김대중 정부의 실패의 근본원인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에 김대중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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