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와 계열금융기관 의결권 제한제도는 강화되어야



1. 한 외국계펀드가 SK(주)의 최대주주로 부상한 사건을 계기로 재계와 일부 언론은 지배구조 개선의 시급한 개혁과제를 저지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외국계 펀드의 실체와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를 그린메일 또는 적대적 인수로 단정하고, 나아가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규제완화 내지 개혁후퇴로 연결하는 것은 사실왜곡과 논리비약에 다름이 아니다.

특히 이번 SK(주) 사건을 빌미로 재계가 출자총액제한(공정거래법 10조) 및 계열금융기관 의결권 제한(공정거래법 11조)의 강화 노력에 제동을 거는 것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권의 안정을 기하고자 한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주주와 채권단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재계는 개혁의 후퇴를 통해, 즉 소액주주와 저축자의 희생을 기초로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조치를 통해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개별기업, 기업집단,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2. 재계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사실상 소액주주에 불과한 재벌총수가 계열사 출자를 통해 수많은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하고, 외부주주와 채권자 이익의 희생을 기초로 사적인 지배이익을 추구하는 재벌 지배구조상의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 규제장치이다.

그런데 이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2001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재벌규제로서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졌다. 규제대상이 자산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으로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항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에 문제가 된 SK그룹의 경우 2002.4 현재 순자산액 17.0조원 중 출자총액은 6.5조원으로 출자비율이 38.10%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당시 출자총액 규제대상인 12개 민간재벌의 평균 출자비율 30.63%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즉 SK(주) 등 SK 그룹의 계열사들은 총수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순자산의 약 40%를 계열사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시너지 효과 또는 전략적 제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담이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SK그룹 문제의 근본원인이 되었다.

또한 2002.4 현재 SK그룹의 출자총액 6.5조원 중 1.8조원(적용제외 1.3조원, 예외인정 0.5조원)이 각종 명목으로 규제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실제 규제 출자비율은 27.43%로 크게 하락하였다. 즉 SK그룹의 과도한 계열사출자에 비추어본다면 개정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규제효과는 미미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작년에 SK그룹은 규제 출자비율이 규제기준인 25%를 초과한 상태에서도 KT지분 및 두루넷 인수, 발전·가스·카드 사업 진출 모색 등 활발한 사업확장을 꾀하였는데, 이는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이미 재벌의 확장을 저지할 수 없는 누더기 규제로 전락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이 외국계펀드의 SK(주)에 대한 지분이 10%를 초과함으로써 SK(주)가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SK글로벌 등 여타 계열사의 SK(주)에 대한 출자가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의 예외인정 대상이 되어 그 의결권이 부활하는 현재의 상황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왜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 최근 재계는 작년 5월에 일본이 출자총액규제를 철폐한 것은 예를 들면서 우리 나라도 '세계 유일의 역차별적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일본의 출자총액규제는 순자산의 100%로 되어 있어 이미 규제로서의 실익이 없어졌기 때문에(지주회사가 아닌 한, 순자산의 100%를 타회사 주식으로 보유할 회사는 없다) 철폐된 것일 뿐, 재벌총수의 경영권 보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2%미만의 지분으로 수십개의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하는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가진 재벌은 일본에는 없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 확인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하며, 특히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종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사유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3. 또한 재계는 재벌총수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계열금융기관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전면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 그리고 2002년 초의 증권투자신탁업법 및 증권투자회사법의 개정을 통해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는 사실상 전면 허용된 것이나 다름없다.

즉 상장 계열사의 경우 정관변경, 임원임면, 영업양수도 및 합병 등 경영권 변동 관련 사안에 대해 내부지분율 30%까지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 행사가 허용된 것이다. 더구나 2001년 가을에는 재벌소속 보험사와 투신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마저 1999년 이전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무엇을 더 완화해 달라는 것인가.

특히 이른바 경영권 변동 관련 사안은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계열금융기관이 저축자의 자금을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계열금융기관을 이용하여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하는 유인이 강해짐으로써 삼성그룹 등 이미 거대 계열금융기관을 보유한 재벌 이외에도 여타 재벌들 역시 금융업에 신규진출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산업과 금융의 분리라는 지배구조 개선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계열금융기관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는 원상회복, 즉 원천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공정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2003.4.7)에 명기된 바와 같이, 그동안 확인된 부당내부거래의 86.7%가 금융기관을 통한 것이었으며, 계열금융기관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 사례가 전체 부당내부거래의 51.3%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계열분리 청구제 도입, 금융기관 대주주의 자격 유지조건 부과,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한도 및 유가증권투자한도 축소 등을 통해 산업과 금융을 분리하는 노력을 더욱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4. 재계가 이번 SK(주) 관련 사안을 계기로 소수의 지분을 가진 재벌총수가 계열사 출자를 통해 수많은 계열사를 황제처럼 지배해 온 그동안의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 점에 대해 참여연대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으며, 오히려 재벌이 대주주로 있는 일부 언론을 통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계열금융기관 의결권 제한마저 완전히 폐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는 개혁에 저항하는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지배구조 개선의 의지와 계획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것이며, 정부는 일관된 법제도 개선 노력 및 엄정한 집행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끝.

경제개혁센터


2003/04/14 13:51 2003/04/1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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