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재경부의 회계제도 개혁안에 대한 논평
금융관련 법제도/금융정책 :
2003/04/17 12:30
여전히 미흡한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
- 이해상충의 원칙적 금지 원칙에 입각한 미국 Sarvanes-Oxley Act의 입법취지 되새겨 보아야
1. 지난 15일(화) 재경부는 회계제도 개혁안을 확정, 발표하였다. 이번 개선안에는 작년 11월 발표되었던 초안보다 훨씬 진전된 내용, 예컨대 대주주 및 임원에 대한 금전대여 등의 원칙적 금지, 공인회계사의 분기보고서 검토 대상기업 확대, 증선위의 감사인 지정 대상기업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 그러나, 이번 최종안 역시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며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신뢰할 수 있는 회계정보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당해기업(회계법인 측에서는 이를 상수원’이라고 표현한다)의 책임이나, 그 회계정보의 적정성을 검토.인증하는 회계법인(굳이 비유하자면 '상수원 관리인’)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그런데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극심한 회계정보 서비스산업의 경우 단순한 시장경쟁 압력, 동업자간 평판(peer reputation)에 의한 상호감시, 자율규제기관에 의한 감시를 통해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는 엔론 등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 이후 SEC 산하에 회계감독위원회(Public Company Accounting Oversight Board)를 창설하여, 공적규제기관이 회계정보의 최저품질 기준을 정하고 그 준수 여부를 감독하도록 한 Sarvanes-Oxley Act of 2002이 도입되었으며, 이에 따라 기업과 회계법인에 대해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물론 미국의 Sarvanes-Oxley Act의 내용을 우리 나라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나, 미국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가 악화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해상충의 가능성을 사전적으로 제어하는 문제에 대해 훨씬 심각한 고민과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재경부의 회계제도 개혁안은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 강화보다는 그 이익을 보호하는 데 치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에 대한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 회계제도 개혁안에서는 6년마다 회계법인을 교체(rotation)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원래 초안에는 없던 내용을 새로 추가한 것으로, 분명 개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모든 법률이 그러하듯이, 여기에도 광범위한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감사위원회 또는 감사인선임위원회의 전원동의를 얻는 경우, 그리고 다른 회계법인과 공동감사를 받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감사위원회 또는 감사인선임위원회의 전원동의가 있는 경우 회계법인 교체의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재경부와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위원회 및 감사인선임위원회의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가 그동안 모니터링해 온 기업들의 경우,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반대의견을 표명한 경우는 극히 미미했다.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전원동의'라는 예외 인정 사유는 너무나 광범위한, 따라서 너무나 자의적인 조건이며, 결국 회계법인 교체 제도의 사문화를 가져올 것이다.
복수의 회계법인에 의한 공동감사 제도는 캐나다에서 금융기관의 회계감사에 대해 의무화한 것인데, 우리 나라도 금융기관 등 회계정보의 신뢰성이 특별히 요구되는 기업의 경우 권장 내지 법적 의무화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기존의 회계법인이 분사한 경우(회계법인 교체, 컨설팅 업무 제한 등의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회계법인들이 분사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별도의 회계법인으로 인정하는 데는 엄격한 제한 조건을 부과하여야 할 것이다. 회계법인 교체의 예외 인정 조항은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 제한을 지극히 느슨하게 한 것, 즉 회계감사 업무와 이해상충이 확인된 컨설팅 업무만 금지하고 나머지는 허용한 것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회계법인의 이해상충 가능성은 회계법인의 컨설팅 수입이 피감기업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서 연유하는 것이지, 그 컨설팅 업무가 회계감사와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냐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액수의 컨설팅 업무를 수임하는 기업에 대해 회계법인이 엄격한 회계감사를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따라서 컨설팅 업무에 대한 규제는 미국의 Sarvanes-Oxley Act와 마찬가지로 '원칙적 금지'로 강화되어야 한다. Sarvanes-Oxley Act는 금지되는 컨설팅 업무 영역을 광범위하게 열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포함되지 않는 컨설팅 업무의 경우에도 그 연간 컨설팅 수수료 총액이 당해 피감기업으로부터의 보수총액의 5% 미만이어야 하고, 그나마도 감사위원회의 사전승인을 얻은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상수원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수원 관리인의 이해상충 가능성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계법인 측은 컨설팅 업무를 엄격히 제한했을 때 회계법인의 경영수지가 위협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으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동 규제는 모든 컨설팅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회계감사를 수행하는 피감기업으로부터의 컨설팅 수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또한 회계법인의 경영수지 문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의 저가 감사 수수료 수임 경쟁구조를 개선하는 데서 해결해야지, 이를 컨설팅 수수료로 보완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회계법인이 수입원 측면에서 피감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회계정보의 최저품질기준이다.
셋째, 재경부의 이번 회계제도 개혁안은 회계법인에 대한 조직감리 문제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즉 조직감리는 한국공인회계사회라는 자율규제기관에 위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Sarvanes-Oxley Act의 입법취지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동 법은 자율규제기관 또는 동업자에 의한 감시(peer review)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대신 공적규제기관(SEC 산하의 회계감독위원회)에 의한 규제를 도입한 것이다.
즉 연간 100개 이상의 기업을 회계감사하는 회계법인은 매년, 100개 미만의 기업을 회계감사하는 회계법인은 최소한 3년에 1번 이상, 회계감독위원회가 회계법인 내부규정의 적절성 여부 및 그 작동 여부에 대해 조직감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회계정보의 적절성 여부를 감시하는 가장 중요한 감시자이다. 감시자의 문제에서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감시자에 대한 감시의 문제(Who monitors the monitor?)가 발생한다.
회계법인에 대한 감시를 동업자로 이루어진 자율규제기관(한국공인회계사회)에 위임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임을 엔론 등의 대규모 회계부정 사건이 증명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 Sarvanes-Oxley Act이다.
그런데 미국에 비해 자율규제의 전통이 극히 미미한 우리 나라에서 자율규제 방식을 택한 것은 재경부 등 정책관료의 책임회피이거나 회계법인의 로비에 굴복한 것이거나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한다. 굳이 비유를 한다면, 이것은 재계 단체에 재벌에 대한 감시를 맡기자는 주장과 같다.
현실적으로 감독당국이 모든 회계법인에 대한 조직감리를 수행하기가 어렵다면, 우선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회계법인은 공적규제기관이 담당하고 중소 회계법인은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의한 자율규제로 하되, 점차 공적규제의 범위를 확대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3. 참여연대는 한국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며, 관련 법률의 개정안 제출 이전에 재경부 차원에서 다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만약 재경부가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참여연대는 관련 법률의 개정시 국회에서 이를 개선하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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