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사외이사들, 채권단과 지배주주의 암묵적 담합 승인?
칼럼/기고 :
2003/06/17 10:11
분석-SK(주) 이사회의 글로벌 지원결정, 무엇이 문제인가
SK(주)의 이사회가 지난 6월 15일 개최한 이사회에서 SK글로벌에 대한 지원안건을 승인했다. 사외이사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11시간이나 걸린 마라톤회의를 거쳐 내린 결정인 만큼 SK(주)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겠냐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은 최종적으로 이사회가 지는 것이므로 제3자나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SK(주)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도 모르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SK(주)이사회의 이번 결정은 우리나라 사외이사제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SK는 2001년에는 무려 38번, 2002년에는 무려 26번의 이사회를 개최했었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부의된 안건은 모두 가결되었으며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표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SK의 경영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SK는 여러 번 부실 계열사를 지원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돼 막대한 과징금을 물은 바 있다. 이번 이사회결정에 참여한 사외이사들 중 과반수는 1993년 3월에 선임돼 지금까지 사외이사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사외이사로 있는 동안에도 SK는 3년 연속적자 및 자본잠식상태에 있는 SK증권이 발행한 기업어음을 고가로 매입하고, SK건설이 건축중인 사옥을 매입하고 SK건설에게 공사비를 올려주는 등의 방법으로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었다. 이들이 사외이사로 재직중에 공정위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액수만 해도 무려 50억 원이 넘는다. 이들 사외이사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부당 지원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책임을 졌다든지, 사표를 냈다든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번 SK글로벌에 대한 지원 건은 최태원 회장 일가의 SK그룹에 대한 지배권의 향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최태원 회장은 SK글로벌의 은행채무에 무려 2조에 달하는 지급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SK글로벌을 청산하거나 법정관리로 가게 하면 최 회장은 모든 재산과 더불어 SK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일거에 상실하게 된다.
채권단이 최 회장에 대한 구명활동을 벌이고, 손길승 회장을 압박해 SK글로벌 회생안을 내 놓도록 한 것, 최태원 회장의 지배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SK그룹 지주회사격인 SK C&C의 주식을 손대지 않기로 한 것은 SK글로벌을 청산으로 가게 할 수 없는 채권단 이해와, 그룹지배권을 유지해야 하는 최 회장 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번 SK(주)의 사외이사들은 이러한 내막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권단과 지배주주간의 암묵적인 담합을 승인해 주는 방향을 선택했다. SK의 사외이사들은 무려 8500억에 달하는 출자전환과 SK글로벌에 대한 부당지원을 예고하는 이익보장확약의 전제조건으로 어떠한 SK글로벌의 자구노력이나 대주주 일가의 자구노력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상장법인이자 SK글로벌과 영업상 별 관계도 없는 SK텔레콤의 지원확약만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부담의 일부를 다른 공개된 법인과 그 주주들에게 떠안겼을 뿐이다.
결국 이번 SK이사회 결정은 사외이사들의 충실한 업무수행이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SK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에 대해 그때그때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결정이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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