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문서 접근금지 비밀공화국②] 한번 비밀은 영원한 비밀
13개 정부기관 공개 0…국정원·통일부 등 5년간 집계
영국의 <더타임스>는 2003년 3월7일치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 기사를 실었다. 외교통상부는 같은 달 10일 ‘노 대통령, 영국 더타임즈 회견’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Ⅲ급 비밀로 지정했다. ‘수/발신처’가 ‘주미대사’로 된 이 문서는 같은 해 12월31일 비밀에서 해제됐다. 보도 외에 어떤 숨길 내용이 있어 Ⅲ급 비밀로 지정됐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외교부는 비공개 회신을 보냈다. 특별하게 숨길 내용이 없어 보이는 ‘미국의 태풍피해 복구 지원금 전달’이란 제목의 문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겨레>와 참여연대는 1월31일 외교부의 북미1·2과, 동북아1과 등 세 과에서 최근 5년 사이에 비밀해제된 기록물의 목록(문서 제목)을 달라고 요구했다. 3월8일 한 상자 분량의 자료가 왔다. 그런데 대부분이 ‘문서 제목’과 ‘수/발신처’라고 쓰인 칸이 시커먼 먹칠이 돼 있었다.(사진 참조). 비밀보호 기간이 끝난 문서는 언제든지 내용을 열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를 절감했다.
외교부의 세 과가 비밀에서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기록물은 1만5339건이지만 ‘문서 제목’이 공개된 것은 6372건으로 41.5%에 그쳤다. 대검찰청은 338건 가운데 19건의 제목을 공개했고, 319건은 비공개했다. 이것도 문서 ‘제목’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2월 ‘APEC회의 대만인사 접촉 유의사항 통보’라는 문서를 Ⅲ급 비밀로 지정하고, 4일 만에 비밀을 해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용은 공개를 거부했다. 통일부에 비밀이 해제된 문서의 공개 여부를 묻자 “211건 가운데 공개 건수 1건, 비공개 건수 210건”이라고 답했다.
외교부는 목록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반문서로 재분류된 문서의 공개 여부는 정보공개법 제9조 1항에 따라 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국가안보·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보에 해롭지 않아 비밀을 해제한 뒤 다시 국가안보에 해롭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셈이다.
일반문서 재분류해도 대부분 ‘비공개’ 자물쇠
‘공개’ 하더라도 제목만 살짝…내용 접근봉쇄
비밀보호기간 끝나면 빛 못보고 ‘폐기’ 많아

정부 부처의 정보공개 담당자들조차 “일반문서로 재분류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관련 법령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심지어 비밀 기록물 가운데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것을 비밀기록으로 관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밀이 풀린 문서의 제목만 공개하고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도 없다. 미국은 비밀이 풀리면 내용까지 곧바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부처의 고위공직자는 “직접 비밀문서를 재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서무를 보는 직원이 서류를 뭉치째 들고 오면 사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재분류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한 번 매겨진 비밀등급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비밀문서가 폐기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안업무규정은 비밀보호 기간을 정한 ‘예고문’이나 국정원장의 요청 등에 따라 비밀을 폐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교부에 지난해 4월 Ⅲ급 비밀로 지정됐다가 12월 말 비밀이 풀린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에 대한 기금지원 관련 의견송부’라는 문서를 공개하라고 요청하자, “다른 부처에서 생산한 문서로서 예고문에 의거 파기되어 자료가 부존재”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기록물관리법시행령 제37조는 비밀 기록물을 폐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안업무규정과 명백한 모순이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비밀 보호기간이 끝나면 곧 폐기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며 “역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비밀기록은 되도록 영구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기록물관리법은 기록물의 ‘보존’ 기간을 ‘영구·준영구·20년·10년·5년·3년·1년’ 등 7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밀의 내용과 가치를 보고 정하는 비밀 ‘보호’ 기간은 보존기간과는 개념이 다르다. 기록물의 보존 기간이 비밀보호 기간보다 길어야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보존기간이 보호기간보다 짧거나 같게 되면 보호 기간이 끝나는 즉시 비밀문서가 폐기될 우려가 있다.
13개 정부기관 공개 0 (최광호/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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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무장’ 경찰 해제 0 (이재명/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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