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박홍근

3박 4일 기계 자르는 종이 앞에서 일했다는 한 이주노동자. 커피를 마셔가면서 한 숨도 자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야간 수당은커녕 최저임금만 받고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노동착취다. 당시 그 이주노동자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동착취에 대한 분노?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괴로움? 고국에 대한 그리움?

“밤에 아무도 없고 혼자서 기계 돌리는 게 슬펐다.” 그가 말한 대답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밤에도 공장 한구석에서 홀로 기계를 돌린 그가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가 아니라, 그저 쓰고 버리는 소모품정도로 생각하는 고용주에게선 인간 냄새가 날 리 없었다. 3박 4일을 꼬박 일한 다음날, 하루 쉬겠다고 한 그에게 고용주는 말한다. “뭐했다고 쉰다 그래! 그럴 거면 나가!”
 
26일 참여연대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이 토로한 이야기는 더 나은 임금, 더 좋은 복지 이전에 인간으로써 봐달라는 것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예의가 없다는 트집으로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상전이 하인에게 대든다고 매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러 온 한 이주노동자는 영어를 썼더니 사장이 무척 화를 냈다고 말했다. 사장이 ‘너 같은 게 영어를…건방지게’라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다른 상황은 어떨까. 예를 들어 백인이 그 사장에게 영어로 물어봤다면, 그 사장은 소싯적 영어솜씨에 몸짓 발짓까지 해 가며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나라의 국력과, 개개인의 평가는 전혀 다른 것인데도 선진국=‘존경받아야 할 사람’, 개발도상국=‘경멸해도 되는 놈’으로 치환해 버리는 시선이다. 그 나라의 GDP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단순한 숫자놀음만으로 한 인간을 평가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우리보다 못 사니까 막대해도 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난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사장님 나빠요~”를 흉내 내며 웃었다는 다른 이주노동자의 경험은 이주노동자를 깔보는 시선이 단순히 해당 공장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길을 가고 있는데 다가온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은 아마, 그 흉내를 내면서 즐거웠겠지만 그 이주노동자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당장 멱살을 잡고 드잡이 질을 하고 싶지만 그런 경우 일이 커지면, 항상 가해자는 잘못 없는 자신들이라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에 참는다. 차별을 받는 것이 일차적 괴로움이라면, 그 차별에 저항하거나 차별을 호소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또 다른 괴로움이다. 오직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고립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주노동자를 돕는 NGO들이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것은 벽이었다. 대다수 NGO들이 정부 지원을 받는 경우라 정부가 정한 선을 넘어서 도와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그저 형식적인 사업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경우 많다.

“NGO가 좋은 일 하는 거 안다. 그러나 (정부와의 이주노동자대책) 테이블에서 항상 이주 노동자는 배제 된다”는 말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를 만들면서, 이주 노동자는 낄 수 없는 모순에는 분명 NGO의 묵인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10년 넘게 한국에 살았다는 한 이주노동자는 자신들이 배제된 법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 이름이 ‘고용 허가제’라고 말했다. 법 이름에 정부와 고용주만 있고 자신들은 없다는 것이다. 즉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나 인권이 아니라, 단지를 정부가 고용주에게 그들을 ‘어떻게 쓰느냐’에만 초점을 맞춘 법이란 말이다.

특히 이 고용 허가제를 보면, 현재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여러 허점들이 있지만, 5년 이상 체류를 금지하는 조항이 그렇다. 이상한 일이다. 5년 일한 이주노동자라면 그만큼 숙련된 노동자라는 이야기인 만큼 많은 고용주들이 쓰려고 할 터인데 말이다.

속사정은 이렇다. 국내법상 5년 이상 국내에 체류한 외국인은 귀화 조건을 갖추게 되는 점을 감안해 국내 체류 기간은 5년 미만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우리사람이 절대 될 수 없다는, 혹은 되서는 안 된다는 순혈주의의 다른 말인 것이다. 5년이 넘으면 모조리 불법체류자로 낙인찍고 단속으로 잡아 추방해 버린다.

“돈벌고 어머니에게 돈 보내 드리려고 하지, 여기 와서 (노동)운동 하고 싶은 사람 없어요. 집회하고 싶은 사람 없어요.” 라고 토로했던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절실함이 배어있다. 그들은 운동하고, 집회한다. 그리고 탄압 당한다. 누구도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자 하는 이들이 없기에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억압에 저항한다. 강제추방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것이다.

잠을 안자고 밤마다 홀로 기계를 돌리며 외로움을 느꼈다는 이주노동자가, 진정 인간의 냄새를 맡는 것은 정녕 언제쯤이어야 하는가. ‘이제 우리도 다문화사회’라는 공익광고를 내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가 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 모순. 지금도 그 사이로 ‘인간’으로서의 이주노동자들이 소모품이 되어 사라져간다.  

2008/09/30 13:58 2008/09/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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