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조새개혁센터의 불법정치자금 과세촉구 운동


세금이란 내기 싫다고 안 내도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싫음 말고’가 절대 통할 수도, 통해서도 안 되는 게 세금영역이다. 누군가가 자기가 내야 할 몫의 세금을 내지 않았을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세수 부족분은 또 다른 누군가의 돈을 더 걷어 채워 넣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세금의 상호연관성이고, 남의 탈세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얽히고 설켜 결국 나의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 그게 바로 세금이다.

국가의지의 실종이 만들어낸 탈세공화국

세금만큼은 주로 원심력에 반응하는 국민들. 이들을 상대하는 국가에게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세금을 사이에 둔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과, 조절하고자 하는 의지다. 기준은 간단하다. 성실납세자에겐 그만한 혜택을 주고, 탈세범들에게는 엄정한 세금추징과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 어렵지 않은 ‘상식’이다. 국민들은 이 상식을 믿고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한다. 이 상식이 깨질 때, 세금은 성실납세자들에게서 빼앗는 국가 차원의 강탈이자, 도적질로 전락하고 만다.

그 도적질이 지금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조절능력도 의지도 없는 국가는 땀흘려 일해 번 돈에 칼같이 세금을 부과하면서도, 100% 불로소득인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는 한 푼도 과세하지 않고 있다. 탈세를 합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있는 오늘의 한국은 성실하고 우직하게 세금 내는 사람들만 바보 취급받는 사회다. 불법정치자금에 관한 한 국가의 의지는 실종 상태다.

2002년 대선 당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받은 불법정치자금 액수는 2월 18일 현재까지 검찰이 기소한 내용만 해도 약 645억2000만 원(한나라당 551억7000만 원, 민주.열린우리당 32억6000만 원, 정대철 의원 9억5000만 원, 신경식 의원 10억 원, 안희정 씨 41억4000만 원)에 이른다. 이 돈에 부과되는 세금을 산출할 경우 모두 합해서 약 269억 원 가량 된다. 여기에 아직 검찰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들까지 합치면 불법정치자금과 이로 인한 탈세액은 천정부지로 늘어난다. 결국 이 돈은 고스란히 선량한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국민들은 뼈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세금을 냄으로써 부패 정치인들에게 고액의 월급을 주고, 선거 때면 국고보조금이라는 형식을 빌어 선거자금까지 대준다. 여기에 또다시 이들이 떼먹은 세금까지 대신 메워야 하는 등 오늘날 한국서민들은 이중삼중의 굴레를 쓰고 살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참여연대의 과세촉구 운동은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됐다. 이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믿고 검은거래를 통해 얻은 불법적 이득에 대해 철저하게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합법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불법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더더욱 당연하다는 것이다. 불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 땀흘려 일해 꼬박꼬박 세금 내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없는 법을 새로 만들어서 과세하라는 것이 아니라, 과세가 가능하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라는 것이다. 불법을 막기 위해 제정한 관련법들이 시체처럼 방치돼 오히려 불법을 조장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탈세는 불법정치자금 받은 정치인들이 하고, 이로 인한 세수 부족분은 죄 없는 국민들이 채워 넣어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는 것이다.

불법정치자금 과세 열쇠는 결집된 국민적 공분

작년 4월, 소위 세풍건으로 불법자금을 수수한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상대로 과세운동을 시작한 이래, 참여연대는 2004년 2월 현재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국세청에 탈세제보서 및 과세촉구서를 제출했다. 처음 약 8개월 동안은 과세가능성 여부를 두고 참여연대와 국세청간의 지루한 법리논쟁이 이어졌다. 국세청은 정치인들이 뇌물로 받은 돈은 증여가 아닌 소득이며, 열거주의를 취하고 있는 현행 소득세법상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어려운 법해석 중심의 논쟁구도가 형성되면서 운동은 다소 소강상태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 2002년 대선 당시 사용된 불법정치자금 내용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운동은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불법정치자금의 규모와 그 전달방법에 경악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불법자금에 대해서도 과세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이 어느 정도 공론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 11일을 기점으로 참여연대가 불법정치자금 과세를 위한 집중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이를 외면하지 못한 과세당국의 현재 입장은 처음과는 약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가성 없는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는 국세청도 과세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하기 시작했고, 대가성 있는 뇌물 등에 대해서도 김진표 전 재경부 장관이 소득세로도 과세할 수 있다고 발언해, 국세청도 무턱대고 과세불가 입장만을 고수할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동안 줄곧 재경부의 유권해석이 있어야 과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던 국세청이 재경부 수장의 과세가능 발언이 있자 이를 ‘즉흥발언’이라며 폄하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유권해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고 있어, 큰 틀에서의 국세청 입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당이 받은 불법정치자금은 그 불법성 여부와 액수의 정도에 상관없이 무조건 비과세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재경부와 국세청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명백한 왜곡이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활동만 보호하는 것이 법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과세당국의 이러한 왜곡된 법해석 때문에 국세청과 재경부가 비과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상속세및증여세법 46조 3항은 결과적으로 불법자금을 비과세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으로 전락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여연대의 과세촉구 운동이 성공해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도 철저한 과세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번의 국면전환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은 추악한 불법자금에 면죄부를 주는 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공분이다.

따라서 지금은 흩어진 국민들의 분노, 부패 정치인의 탈세가 곧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분노를 얼마나 한 데 모아낼 수 있느냐에 운동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재경부와 국세청의 태도변화는 법리논쟁이 아닌 분노에 찬 국민들의 압박으로만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종된 국가의지가 아닌, 국민들의 의지로 말이다.

이문영
2004/03/01 00:00 2004/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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