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셈식 운동보다는 덧셈식 운동을 지향합니다


지난 1월 민주노총 제4기 위원장으로 이수호씨가 선출되었다. 전교조 위원장을 거쳐 이제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된 그. 아침부터 이어진 언론사와의 연속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예정보다 늦어진 인터뷰에 대해 미안해할 뿐이다. 겸손하다고 하면 건방진 소리일까? 그런 이수호 위원장의 모습을 보며 그가 기수가 되어 이끌어갈 민주노총과 우리 노동운동의 행로를 잠시 생각해봤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

점퍼 위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저지와 분쇄를 넘어’ 라는 구호와 달리 그는 자신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너무 뜻밖이라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나에게, 그는 쐐기를 박듯 시와 문학을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칡뿌리, 철죽대, 참꽃을 먹으며 자랐던 그의 어린시절 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랄 때는 가난한 했지만 시골의 풋풋함과 농촌사회의 정다움이 있었어요.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며 놀았던 그 어린시절엔 말예요. 그게 제가 지금껏 살아가는 동안 제 감성을 풍부하게 해준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꿈이 교사이셨나요?

“그건 아녜요. 어쩌다보니 선생이 되어 있더라고요. 아버지가 중석광산 광부이셔서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어요. 대학 갈 생각은 전혀 품지도 않았지요. 학교 온실에서 일하면서 근로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선생님께서 취직을 시켜줄 테니 야간대학이라도 가라고 하시더군요. 워낙 꽃을 좋아하니까 이왕이면 원예과 같은 데를 가고 싶었는데 야간대학에는 그런 과가 없었고, 마침 제가 시나 소설 읽기를 좋아하니까 국문학을 해보자 해서 들어갔지요. 들어가서 교직 이수하고. 그러다가 교사가 되었지요.”

그는 며칠 전에도 처음 부임했던 학교의 제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고 한다. 사람을 키우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 교직이라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듯 이수호 위원장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전교조 위원장으로서였다. 그가 왜 교육운동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YMCA교사회 활동을 하면서 86년에 교육민주화선언을 주도했지요. 그때만 해도 서슬퍼랬던 시절이었으니까 교사 그만둘 각오하고, 택시자격증 따놓고 선언에 참여했지요.”

그럼, 그때 해직되셨나요?

“입시 앞둔 고3학생들이 침묵시위를 하고 다른 동료교사들까지 동반사직서를 제출하는 바람에 문제가 좀 커졌어요. 마침 학교 교장이 저를 그 학교로 불러 올린 제 고등학교 은사셨는데, 그 분이 고민을 많이 하신 후에 “학생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제자를 쫓아내겠느냐” 시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어요. 그래서 다른 학교의 교사들도 징계를 면하게 되었고요.”

“우리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우리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였습니다. 사업내용과 방식을 모두 바꾸겠다는 말씀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요.

“그동안 정부나 경영자측에서 무슨 얘기하면 ‘그거 안 된다, 그건 아니다’라는 식으로만 대응했는데, 그렇게 해서 해당 정책을 저지시키거나 분쇄시킨 게 아니라 괜히 우리만 힘 빠지는 꼴이 돼버렸어요. 저지할 건 당연히 저지해야 되지만, 이제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가 먼저 대안제시를 하려 합니다. 극단적인 대립 상황에서의 운동의 격렬함, 전투적인 노동자성의 이해나 계급성에 따른 정체성을 우선 받아들이면서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작년 열사들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투쟁해야 되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고민하는 것은 한꺼번에 변화시키는 것은 진짜 어렵다는 거죠. 연착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선 나 자신이 먼저 깊이 이해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일반적 인식 등 다양한 상황판단을 통해 함께 설득하고 함께 변화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노사정위 참여문제가 쟁점이 됐었는데요. 위원장님은 독자적이며 자주적인 구조로 노사정 틀을 새로 짜면 대화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내용을 정부를 상대로 촉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제안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우선 전반적인 주도권을 우리가 갖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자고 할 예정입니다. 이제 민주노총 산하에 정책연구원이 만들어져서 노사정이 함께 모여 자주적으로 책임지고 결정하는 틀을 만들기 위한 안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비정규.이주.여성.실업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주노총

사회개혁투쟁이나 비정규직.이주노동자 문제 해결에 아주 의욕적이신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선거제도에 여성할당제처럼 비정규 할당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던데요.

“지금 대의원제도가 굉장히 합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문제가 있어 고민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힘 있고 조합원 수가 많은, 또 상대적으로 월급 수준이 괜찮아서 조합비를 조직적으로 잘 낼 수 있는 조직에 집중적으로 대의원이 배정되고 있습니다. 투쟁사업장이나 손배.가압류 당한 사업장은 조합비 못 내죠. 또 비정규.이주노동자 등 실제로 대의원으로 참여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들이 전혀 참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속, 공공, 전교조가 중심 의사결정 세력이 되어 있는 상황인데요.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작년에 무척 논란이 많았던 것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간의 차이, 차별이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나 언론은 차별보다는 차이에 더 많이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의 차별해소를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안보다는, 정규직의 임금 수준이 높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더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이런 인식 하에서 노동계 내부에서도 정규직(고임금자)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있더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거 치르면서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까 모범 사례가 많더라고요. 비정규직 여사원들이 많은 현대증권은 정규직 조합원들이 몇 년 동안 임금을 동결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양보를 전제로 비정규직과 함께 해나간다는 의미가 크죠. 같은 사업장, 같은 노동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엄청난 상황에서, 노동자들간의 연대의식이 없다면 자기들끼리도 얼마나 갈등이 심하겠어요. 비열하다 싶을 정도의 경우도 실제로 많습니다.”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이십니까?

“정규직이 함께 나서는 비정규직 운동이 필요해요. 비정규직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정규직이 함께 참여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지도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많이 길러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잖아요. 그러한 활동가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일차적으로 주력할 생각입니다.”

뺄셈식 운동은 그만, 이젠 덧셈식 운동을 할 때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을 어떻게 상정하고 계십니까?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낙천낙선운동을 하고 있는데, 진보정당운동 하시는 분들은 낙천낙선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하던데요.

“이번 총선에서는 민노당 후보들을 당선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또 낙천낙선운동을 통해서 정치개혁을 이뤄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시민단체가 낙천낙선운동을 하더라도 투표행위를 할 때는 진보적인 쪽을 밀어줄 수 있다고 봐요.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하면서 전체 선거판을, 정치판을 개혁하기 위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수호 선생님께서 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시민단체와의 연대가 많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동안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전체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다양화.세분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분절화되고 대립하는 측면이 더욱 부각됐던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위원장님께서 구상하고 계신 사회운동과의 연대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선거철이면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분리되는 양상이 뚜렷하죠. 앞으로는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놓고 적절한 대화, 적절한 대응을 계속해서 진보정치와 사회개혁을 위한 의견을 모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달라”라는 ‘뺄셈식 운동’보다는, “이건 해야 해, 함께 할 수 있어”라는 ‘덧셈식 운동’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회연대와 관련해 특별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사회개혁 관련 의제를 발굴하고, 참여연대 뿐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할 계획입니다. 시민운동의 축과 노동운동의 축이 서로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나가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우리 식의 운동을 강조한 나머지 시민운동과 함께 하는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이젠 연대의 폭을 좀 더 넓히는 운동을 하기 위해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으니, 참여연대 회원들께서도 애정을 가지고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수호 위원장은 노동운동만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지면상 담지 못했지만, 그는 장애우와 청소년 인권 등에도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나를 간곡하게 필요로 하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든 계속 운동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큰 이념, 낮은 실천’에 꼭 걸맞은 사람이었다.

박영선
2004/03/01 00:00 2004/03/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1115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