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개발사업 기획, 평가 개혁 절실


정부가 작년에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쏟아 부은 국민의 세금은 약 5조6000억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자금 규모에 비해 사업기획, 집행, 평가 및 성과관리의 효율성과 투명성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그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개발 예산 중 1조1000억 원을 쓰고 있는 산자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산자부 산하의 산업기술평가원 직원들의 내부 고발로 알려진 이번 사례들은 그 동안 연구개발비 집행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들이 제기한 비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집행과정에서의 비리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산자부가 특정 업체 지원을 강요하고 자격미달 업체나 대학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금 지원 과정에서 일부 평가위원의 문제제기가 있자 담당 공무원이 나서서 지원을 강요한 상식이하의 사건도 있었다. ‘부당학위’거래 의혹도 제기됐다. 일부 연구원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지도교수 및 논문 심사자들에게 특혜 지원을 하고 학위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떤 직원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이 3년만에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두 명의 연구원은 해고되었고 과기노조는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해 현재 감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연구개발의 기획 평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시민과학센터도 지난 4일 ‘국가 과학기술연구개발의 기획 평가의 문제점’이라는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에서 참가자들은 평가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일부 학자는 예산 집행과 평가 과정이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서 일반적인 감시로는 알아내기 어렵고 특히 정부 기업 대학의 특정 인사들이 패밀리를 형성해 서로 비리를 재생산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안에 있어서는 참석자 모두가 평가기관의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금처럼 평가기관들이 부처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부자 고발자 보호의 중요성도 지적됐다. 평가와 관련된 사항은 전문적인 데다 내부자들이 문제점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보호 제도를 정비해 연구원들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 기관의 이사회에 시민단체가 추천한 중립적 인사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를 통해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익적 연구가 장려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증가하면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연구개발 기획평가시스템의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병수
2004/03/01 00:00 2004/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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