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사건과 시민권력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뤄진 탄핵은 총선의 핵심 변수로 등장했다. 이번 탄핵안이 갖는 역사적, 정치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편집자 주

한국의 헌정질서는 80년 5.17 비상계엄 선포, 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 국면에 이어 또 한 번의 큰 위기에 직면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비등한 민주화 요구에 압박감을 느낀 구(舊) 정치세력이 반전(反轉)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들 수구 기득권 세력은 80년 당시에는 계엄선포와 광주민주화운동 폭력진압이라는 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6.29 당시는 민주화 운동의 분열과 일련의 타협을 통해서, 그리고 이번은 총선 직전의 위기의식을 의회권력의 남용을 통해서 돌파하려 했다.

구(舊) 정치세력이 던진 반전(反轉)의 승부수

80년과 87년 당시에도 여론은 민주화를 원했으나 이들은 위에서 밀어붙이면 된다는 확신을 갖고서 민의를 짓밟았다. 그 결과 이들은 수 많은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고서 다시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승리의 기억을 가진 그들이 이번에도 여론을 무시하고 의회 내 다수파의 연합을 통해 힘으로 밀어붙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한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들의 탄핵 시나리오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취임 14일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겉으로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빌미로 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한나라당, 조선일보 측의 여러 발언에서 불쑥불쑥 튀어 나왔듯이 대선 결과를 애초부터 승복하지 않았으며 할 수만 있다면 임기 이전에 그를 권력에서 쫓아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87년 이전까지 민주화를 가로막은 일차적인 걸림돌은 대통령 간선제였다. 그나마 총선이 제한적으로 민주화의 요구를 반영하여 민주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물론 언제나 변화의 중심은 제도권 밖의 민주화 운동에 있었으며 제도권 정치권력과 시민사회의 요구는 괴리 상태에 있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위기에 처한 구세력들은 이제 대선과 총선을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기득권을 연장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88년 여소야대의 정국이 조성되자 이를 뒤집어서 3당 합당을 실시하고 구 야당 인사인 김영삼을 대표주자로 내세워 기득권 연장을 시도하였다. 스스로의 정치적 대표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들은 김영삼 정권의 부분적인 개혁조치에 불안감을 느끼고서 지역주의와 보수언론, 그리고 의회의 다수파의 힘을 활용하여 계속 구질서를 연장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97년,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대통령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97년 대선에서 비록 민주화 운동세력의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점한 구세력과의 일정한 타협이 불가피했고, 이들은 끊임없이 김대중 정권을 압박하고 흔들어 댔다.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 또다시 실패하자 이들은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져서 그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의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지역주의나 일부 야당 분파와의 타협을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지 않고, 거의가 민주화를 원하는 무정형의 대중적인 지지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구세력과의 타협이나 양보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노무현의 이러한 태도가 이들의 복수심을 증폭시켰다. 만약 노무현 5년이 이런 식으로 지나간다면 50년 동안 구축해 놓은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관된 기득권은 상실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지역주의 타파를 내건 노무현의 정책 노선은 지역주의에 기대어 의회의 다수파를 장악한 한나라.민주, 두 당의 존립을 근본적으로 위협했다. 지난 대선 당시의 엄청난 부정, 범법 사실이 계속 드러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또 경남, 전북을 중심으로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조짐이 보이자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에서 권력을 상실하게 될 두려움에 빠졌고, 급기야는 이러한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의회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결국 위기의식과 좌절감, 그리고 절제되지 않는 복수심, 판단력 상실 속에서 이들은 김대중 정권 당시와는 달리 노무현 정권 등장 직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무현 흔들기에 주력한 것이다.

합법을 가장한 반란

따라서 이번의 대통령 탄핵이란 부자들과 그들의 금고를 지켜주는 정치집단의 합법을 가장한 반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단순 보수가 아니라 수구반동 세력인 이유는 지난 1년 동안 이들이 국회에서 저지른 각종의 반국민적인 활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근의 서청원 구출사건에서 보았듯이 이들이 수적 다수로 행사한 힘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복지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직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정권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민생에 도움을 주는 입법활동에 주력하기보다는 다수의 힘을 사용해서 검찰 수사 피하기, 특검법 통과, 시청료 분리징수 시도, 친일진상규명법 저지, 한국전쟁민간인 학살진상규명법 저지, 선거법 개악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활동에 시종하였다. 두 번이나 대선에서 실패한 한나라당 주류세력은 이미 지난 선거에서 한국사회 내의 새로운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반성을 통신 혁신, 그리고 혁신된 모습을 보여주고서 대중적 심판을 받으려하기보다는 오히려 국민인 주권자를 능멸하는 행동을 수 없이 반복했다. 이들은 탄핵이후의 정국에 대해 아무런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논리를 갖고 있지 않다.

낡은 정치 종식은 시민의 몫

지금의 한국은 80년대의 한국이 아니다. 인터넷과 개방적인 의사소통, 자유와 개방에 길들여진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낡은 방식의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서 단련된 3.40 대는 지역주의의 해체, 금권선거의 종식을 원하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는 거의 회생불능 상태에 있는 의회가 감행한 대통령 탄핵 사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국정수행에서 상당한 미숙성을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이렇게 합당한 이유 없이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탄핵 세력은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민이 또 다시 거리로 나섰으며 과거 80년대에 그러했듯이 국민의 힘으로 제도권 권력을 심판하려 하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시민의 힘은 민주주의를 지탱시키는 가장 큰 기둥이다. 이번 총선에서 시민들이 지역주의와 돈에 의거해서 생명을 연장해온 구세력을 완전히 퇴출시킨다면 이제 우리 정치가 또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시민들은 이제 의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동춘
2004/04/01 00:00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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