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국회 본회의장과 3월 20일 광화문
탄핵을 지켜본 국민들은 주권을 능멸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파괴한 의회에 거센 항의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탄핵반대’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분노는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민주수호’의 거대한 물결이 되고 있다. 편집자 주

방송 오락프로그램 중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출연진을 두 팀으로 나눠 동일한 소재에 대해 최고가와 최저가의 양 극단을 체험하도록 하며 웃음을 유도하던 코너였다. 이미 종영된 이 프로그램이 2004년 3월 재현됐다.

2004년 3월 편, 체험주제는 ‘민주주의’로 우선 출연진이 화려하다. 한 팀은 ‘한나라-민주-자민련 국회의원들(이하 한민자)’, 다른 팀은 대다수의 국민들이다. ‘비교체험 극과 극: 최악의 민주주의’ 편은 3월 12일 오전 11시 경 국회 본회의장에서 만들어졌다. 한 판의 난투극을 통해 193명 의원의 찬성으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과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 난동을 지켜본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보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만든 것은 탄핵사유와 탄핵안 처리 과정이었다. 여기에 불과 임기 40여 일 남은, 차떼기 등으로 부패정치와 구태수구정치권으로 인식된 한민자가 탄핵주체라는 점도 국민적 공분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또한 탄핵안 가결이 ‘국민의 뜻’을 반영한 ‘의회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독재세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한민자의 주장도 국민들의 불붙은 분노에 기름 역할을 했다.

13일 촛불시위에 이어 20일에는 범국민행동 제안으로 ‘100만인 대회’가 진행됐다. 전국 41개 도시에서 40만 명 이상이 촛불시위에 참석하고, 45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참여해 도합 85만 명의 국민들이 ‘탄핵반대’ 의사를 전달했고, 한민자의 의회 쿠데타에 의해 쓰러진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85만여 명 ‘탄핵반대’의사 표출

3월 12일, 여의도에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며 ‘탄핵반대’ 집회를 열었다. 퇴근시간이 지나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3.12 의회쿠데타’가 벌어지고 채 24시간이 되지 않아 전국 550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비상시국회의를 열어 ‘탄핵무효.부패정치 청산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을 꾸리고 ‘탄핵무효.민주수호’ 검은 리본달기 등 범국민행동 지침을 제안했다. 범국민행동 제안으로 13일 서울 광화문만도 10만 명이 모여 ‘탄핵무효’와 ‘민주수호’ 촛불을 밝혔다. ‘3.12 의회쿠데타’로 불리는 ‘한민자의 최악의 민주주의 행태’에 대해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 비교체험 극과 극’의 다른 출연팀이 꾸려졌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100년 만의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에 갇혀 온종일 뉴스만 듣던 40대의 이상호 씨는 “퇴로를 막고 대통령을 협박하는 한나라.민주당”에게 분노를 느껴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이하 국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3월 6일에 만들어진 이 커뮤니티는 탄핵안이 발의되던 10일 경에 가입자가 8만 명이 넘었고 24일에는 10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주로 2.30대의 학생과 직장인들로 구성된 ‘국민’ 커뮤니티는 인터넷을 통해 탄핵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 교환하며 탄핵반대운동에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상호 씨는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에는 강경하게 항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한다. “국회로 쳐 들어가자, 화염병을 만들자는 등. 그러나 결국에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판단으로 갔다. 한민자의 의회 쿠데타에 우리는 신사적인 방법으로 꾸짖자는 의견이 수렴되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참여하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꾸짖자고 한 것이다.”

2억 8000만 원 모금, 자원활동 신청 쇄도

범국민행동은 이미 ‘탄핵반대’를 넘어 ‘민주수호’로 향해가는 국민정서를 촛불시위에 반영했다. 어떤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70% 이상이 반대로 나온 탄핵문제에 대해, 더 이상 찬반논쟁이나 연설위주 집회는 필요치 않았다. 범국민행동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온 각계각층 시민들을 위해 ‘민주주의 축제한마당’을 기획했다. 긴급하게 마련되는 촛불시위에 대규모 인력과 재정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일. 이 같은 사정이 알려지자 범국민행동 상황실에는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었다. 13일에는 1000여 명, 20일에는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자원 활동을 자처하며 무대를 세우고 30만 개가 넘는 촛불을 만들고 질서유지는 물론 시위를 마친 뒤 청소까지 도맡아 했다.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후원금은 2억8000만 원(3월 24일 기준)을 훌쩍 넘는다.

20일 촛불시위에 대해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가족들, 친구들이 손에 손을 잡고 참여해 탄핵반대 의사를 평화롭게 전달하고 민주주의 축제를 향유했다. 우리의 공동체 문화를 다시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말로만 외쳤던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의 참뜻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다”며 감탄했다.

범국민행동은 27일 다시 한 번 대규모 촛불시위를 기획 중이다. 범국민행동 실무진들은 벌써부터 참여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탄핵무효.부패정치 청산 범국민행동’ 사이트에는 촛불시위 참여의사를 밝히는 글과 국민운동방법 제안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맨발각시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27일을 전 국민이 소풍가는 날로 잡자. 여의도 공원이나 한강둔치 등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집회로 열자. 격한 발언과 구호 대신 평화롭고 신나는 집회를 준비해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즐기자”고 제안한다.

‘비교체험 극과 극, 민주주의 편’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월 12일 한민자가 주인공인 ‘최악의 민주주의 체험’은 끝나고, 이제부터는 ‘최고의 민주주의 체험’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번 주인공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최현주
2004/04/01 00:00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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