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스페인 점령자들은 필리핀 남성들이 혹시 반란을 일으킬까봐 필리핀 남성에게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하던 일 즉, 빨래, 청소, 요리 등 각종 집안일을 시키고, 대신 여성에게는 교육을 받게 하는 정책을 썼다. 그 결과 당시 교육받은 필리핀 여성들은 각 사회분야의 지도층에 활발히 진출한 반면,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집안에서 살림을 하거나 가사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젠더(gender,사회적 성)는 섹스(sex,생물적 성)와는 무관한 듯 하다.

그렇다면 젠더적인 정치에서의 남성 유권자와 여성 유권자는 어떻게 다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를 게 없다. 다만 달라야 한다는 억압적인 의식 규정이 있을 뿐이다. 여성의 정치 대표성이 5.9%로 간신히 세계 100위권에 머물러 있는 16대 한국 국회는, 3%대의 15대 국회보다는 물론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억지로 숫자 늘리기에 급급했다 하더라도 여성의원의 의회진출은 당연시되어야 마땅하다. 왜냐면,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을 넘어 동등한 젠더로서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명료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철저히 젠더적인 입장에서 투표하려 한다. 나의 사회성은 여성성에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가결된 헌정 초유의 현실 앞에서, 이미 투표방향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한 것 같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준 낮은 정치 행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의원을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의 어려움에 기꺼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젠더의 정치실현을 위한 지름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그만한 대우밖에 받을 자격이 없다.’
이상미
2004/04/01 00:00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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