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풍경] "10원 동전 하나가 우리 국민을 죽이는 총알 될지 모릅니다"
2004/2004년 04월 :
2004/04/01 00:00
한국생활 10년, 버마 이주노동자 뚜라 이야기
1988년까지 버마(BURMA)라는 국가명을 사용했으나, 그해 8월 버마 민주화항쟁에서 군부에 의해 국민들이 죽음을 당한 일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버마 군사정부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미얀마(Myanmar)라고 국가명을 바꿨다. 그러나 국민들의 동의 없이 한 개명에 대해 인정할 수 없는 많은 버마 국민들은 버마(BURMA)로 개명할 것에 대한 투쟁도 함께 하고 있다. 이하 글에서는 버마(BURMA)로 국가명을 표기했음을 알려둔다. 편집자 주
강은지『민족21』기자 eunji@dreamwiz.com
처음 전화통화를 했을 때는 그의 유창한 우리말에 놀랐다. 그를 만났을 때는 그의 여유와 밝은 미소에 놀랐다. 1994년 한국에 들어와서 올 8월이면 이곳 생활 만 10년째가 된다는 뚜라(33) 씨. 10년이면 유창한 우리말은 이해가 될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10년이면 강제추방 대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이름이며 얼굴을 다 공개하고 다녀도 되는 것일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숨어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되면 어쩔 수 없지요 뭐.”
강제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가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국민 착취에 힘쓰는 주한 미얀마 대사관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버마 이주노동자들은 20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생활고 때문에, 군부독재 버마 내에서의 탄압을 피해 한국 땅을 찾은 사람들. 그들이 오늘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주한 버마 대사관과의 갈등이다. 외국에서 살다보면 역시 여권 관련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버마 대사관 측에서 이들 국민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금’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착취한다는 것.
“예를 들어 여권을 분실해서 재발급하러 가면 얼마가 드는지 아세요? 여권 분실 벌금이 120만 원, 여권 발급 비용이 50만 원, 서류비가 19만5000원, 여기에다 몇 년 치 밀린 세금까지 내야하니 기본적으로 수백만 원이 넘어가 버리는 거예요.”
버마 대사관은 이들이 한국에서 번 수입, ‘임금’에 대한 세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버마 대사관에서 세금을 책정하는 기준은 단 하나다. 이 사람이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 살았는가 하는 것. 일을 하지 못했다든가 돈을 떼였다든가 하는 개인의 상황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달에 5만 원이던 세금이 계속된 항의와 반대 투쟁으로 월 1만2000원으로 줄어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렇다고 세금 관련 규정이 명확하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공식적으로는 대사관 측에서 세금을 걷겠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다만 여권 연장이나 분실, 재발급 혹은 출국하기 위해 출국증명서를 받으러 가면 ‘너 세금이 이만큼 밀려있으니까 내라’고 통보하는 식이지요.”
규정조차 없는 세금을 걷는 버마 대사관. 게다가 이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여권 분실 등의 책임이 이들 버마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지 않다는 거다.
“우리가 여권을 일부러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사실 브로커나 공장 주인이 빼앗아가거나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더 나은 돈을 주는 곳으로 이탈하게 되면 여권을 출입국사무소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더 황당한 것은, 이렇게 출입국사무소로 보내진 여권은 버마 대사관으로 전달되는데, 대사관에서 이 여권들을 불법밀매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예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버마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우리 정부의 고용허가제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버마는 여권 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3년마다 연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4년 이상 거주한 이주노동자는 자진출국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에서는 자진출국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나갈 수가 없어요. 4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권 기간이 지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가려면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연장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수백만 원이 든단 말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거지요.”
그는 대사관과의 이런 문제가 하루 이틀 있어온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계속될 수밖에 없노라고. 버마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 반대 농성을 하다가 ‘버마 액션 코리아(BURMA ACTION
세금 거부는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투쟁
그의 활동은, 또한 버마 자국 내에 있는 국민들에 대한 애정과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사실 뚜라 씨 역시 지난 1988년 미얀마에서 민주화 대항쟁이 일어났을 때 고등학생 신분으로서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었다. 하지만 학생연합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항쟁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 16년 동안 버마는 군부독재 하에서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버마 대사관에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버마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이에요. 국민이 내는 세금은, 국가의 사회적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아니거든요. 세금을 낸다는 것은 바로 군부독재 정권이 가지고 있는 군대를 더욱 강화하는 것뿐이에요. 우리가 내는 세금이 우리를 죽이는 총 하나 더 사는 일, 우리 국민을 죽이는 일에 쓰이는 것이지요.”
그는 그래서 외국 기업들의 버마 현지 투자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외국 기업이 버마에 투자한다는 것은 군사독재 정부와 파트너십을 가진다는 것이며, 버마 국내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만 주는 노동탄압이며 버마 정부는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독재 탄압 정부를 지탱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이슈화되면서 미국과 유럽기업들은 버마를 빠져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아시아 기업들은 노동력 싸고 기업 규제 적은 버마로 점점 더 많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지요.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예요. 10원짜리 하나가 우리 국민을 죽이는 총알 하나로 변할 수 있다는 것,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이 이런 문제점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한국기업들이 들어가더라도 그 수익이 버마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하는 거지요.”
민주화운동은 무엇보다도 버마 국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그리고 한국에 있는 버마 이주노동자도 버마 국민들이라는 생각, 그래서 이 사람들 문제부터 열심히 싸워나가면서 버마 민주화 문제도 고민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뚜라 씨. 그는 버마가 민주화되는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힘이 난다며 웃는다. 단속에 걸리면 강제추방 되겠지만, 버마로 돌려보내지게 되면, 지금까지 이곳에서 벌였던 민주화투쟁, 반정부투쟁 때문에 감옥에 보내지거나 심지어 목숨이 위험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겁먹지 않는다. 모든 버마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내일을 꿈꾸며, 그는 오늘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하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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