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질문을 먼저 해보자. ‘비키니(bikini)’가 무얼까? 보통 투피스 형태의 여자용 수영복을 떠올린다. 그러나 ‘비키니’는 미국이 원자.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하여 방사능의 수치가 너무 높아 거주불능 지역으로 선포된 태평양의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Bikini Atoll)’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렇다면 수영복에 왜 비키니란 이름이 지어진 것일까? 처음 비키니 수영복이 등장했을 때 당시 반응이 원자폭탄만큼 폭발적이어서 붙였다는 가설이 있다.

미국 핵개발에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

마셜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부터 미국의 신탁통치령 하에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1946년부터 58년까지 12년 동안 미국의 핵폭발 실험장이 되어 67회의 원자.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되던 중 1954년 3월1일 ‘브라보(Bravo)’라 명명된 사상 최대규모의 수소폭탄실험이 있었다. 무려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 되는 규모였다. 이 때 인근 섬들에 살던 주민들은 비록 곧 구출되기는 했지만 방사능오염에 의한 심한 피해를 입었다. 또한 폭발의 진원지에서 약 160km 떨어진 곳에서 참치조업을 위해 항해하던 일본의 ‘제 5 후쿠류 호(the Fifth Lucky Dragon호, 참치잡이 어선)’의 선원 23명이 ‘죽음의 재, 방사능’을 맞았고, 그 중 일본인 선원 구보야마씨가 피폭된 지 1달 후에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1954년 3월1일 수폭실험에 의한 피폭자를 기리며 반핵.반전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사가 ‘비키니 데이(Bikini Day)’다.

미국정부는 마셜 제도 내 원폭실험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보상이 아니다. 핵실험 당시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경보도, 주의도 받은 적이 없었으며, 폭발 후 51시간이 지나 대응하기 시작했던 미국정부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아직까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된 상태인 비키니섬에서, 아니 전 세계적으로 핵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비키니 섬에서의 핵실험 직후 고조된 일본 내 핵실험 반대여론에 직면했을 때,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불화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미국과 정치적으로 타협했고, 이 타협은 실험 후 불과 9개월만에 재빨리 진행되었다. 핵실험 이후 30년 만에 공개된 일본과 미국의 외교문서들에 의하면, 일본정부는 우라늄과 핵기술의 도입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정부에게 핵실험이 국제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은 서방국가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군사적 영향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농축 우라늄과 핵기술을 활용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을 자국의 산업적 이익을 위해 두 번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비키니 데이는 ‘평화’ 결의의 장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비키니 데이’는 ‘환경파괴적, 비인도적, 불의에 의한 핵무기 사용’에 대한 비판과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큰 기조이다. 매년 여러나라의 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전세계의 평화를 결의하는 국제심포지엄과 워크숍을 개최한다.

‘2004 비키니 데이’의 주요 의제인 반핵과 반전, 평화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마침 북핵 관련 제2차 6자회담이 진행 중이던 터라 그 관심은 더했을 것이다. 미국 버몬트의 봉사단체(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겐자이 사무처장은 북핵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을 비판하며 6자회담에서의 평화적인 해결을 주장했다. 한국에서 참가한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는 동북아시아는 핵무기가 확산될 위험이 높은 곳이라며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강조했다.

비키니데이 행사의 주최자인 히로시 다카 사무처장(Japan Council against Atomic & Hydrogen Bombs)도 여전히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언론의 과장보도로 인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어 가고 있지만 일본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키니 데이의 피해자로서 제5 후쿠류 호(the Fifth Lucky Dragon호)에 타고 있던 오히시씨는 일본이 한때 강력한 군사력으로 대일본제국을 만들려고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전쟁은 죽음과 파괴만 가져올 뿐 어떤 긍정적인 것도 전쟁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며 목이 터지게 ‘평화선언’을 하는 그를 보며 군국주의 일본과는 다른 일본 내 건강한 시민의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부인민주클럽(婦人民主Club)의 89세의 오자와씨는 각국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해 인류의 행복과 생명을 지켜내자는 서명운동을 1978년부터 스스로 시작했다고 한다. 오자와씨는 미국, 유럽 등의 각 대사관 앞 집회, 서명 촉구 서한발송 등을 20여년간 해온 반핵운동의 산 증인이다. 그는 “이 운동을 시작했을 땐 가장 젊었었는데 지금은 가장 나이가 많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핵실험 당일인 3월 1일 야이즈역 광장은 피폭 사망자 구보야마 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우리의 민중집회와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800여 명이 집결한 집회장에 경찰이 2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교통경찰. 평화를 원하는 시민과 경찰. 야이즈시의 솔직한 모습은 말그대로 ‘평화’였다.

추모행진하는 사람들의 손에 장미꽃이 한송이씩 들려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자리에 장미꽃을? 의문은 금방 풀렸다. 생전에 구보야마 씨가 장미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영정을 두고 양 쪽으로 종이학 다발이 눈에 띈다. 한쪽에는 날개가 펴진 종이학, 반대쪽에는 날개를 펴지 않은 종이학이. 날개를 펴지 않은, 아니 펴지 못한 종이학은 구보야마 씨의 모습인 듯 했다.

평화란 무엇인가

비키니 데이 행사는 끝났지만 아직 비키니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제2, 제3의 비키니 사건’이 발생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완의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평화의 혹, 인류가 갖게 된 가장 무서운 병기 ‘핵’. 핵이 엄청난 환경재앙과 인류파괴라는 피해를 가져왔건만, 핵무기 보유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상생과 평화,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핵과 전쟁의 위협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라크를 보라. 반테러의 이름으로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시작했지만 이라크는 물론 전세계는 더욱 더 테러위협을 겪고 있다. 전세계 각 국에서 매년 군사비로 지출되는 비용의 총합은 1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상상에서나 가능한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 군사비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 의해 지출되었고 비키니 섬과 이라크의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이 비용이 생명과 화해를 위해 지불되었다면 세계는 훨씬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시금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최인숙
2004/04/01 00:00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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