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마당] <회원한마당 돌아보기> 분단의 현장을 다녀오다
2004/2004년 04월 :
2004/04/01 00:00
3월 3일 판문점 평화기행
3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초입이라 새벽에 맞는 칼바람은 여전히 겨울을 느끼게 한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 시간이라 온 몸은 더욱 움츠러들지만 큰 호흡으로 새벽 공기를 마시니 이내 겨운 잠은 달아나 버린다.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 한 걸음에 참여연대로 향한다. 사무실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와 있다. 오늘은 ‘판문점 평화기행’을 떠나는 날!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와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는 판문점과 전망대를 돌아보며 분단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행사이다. 더불어 오랜만에 어딘가로 떠난다는 막연한 즐거움과 설렘으로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던 터이다.
남한의 최북단 경의선 도라선역
처음 도착한 곳은 도라산역. 주변은 탁 트인 산과 들이 펼쳐진 곳으로 인적이라고는 우리 일행 외에 군인 몇 명뿐이다. 도라산역이라고 써 있는 낮은 현대식 건물과 그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철길은 더 없이 휑해 보인다. 역사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개표소 위에 붙어있는 안내판의 문구이다. ‘평양행 열차 타는 곳’, 그제야 이 곳이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한 경의선 도라산역임이 실감난다. ‘평양, 평양행 열차라….’ 안내판이 바로 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입으로 몇 번을 되뇌는데 묘한 느낌이 든다. 밖으로 나와 철도의 남쪽과 북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생히 느껴지는 분단현실이 생소하고 안타깝다.
군복 천을 둘러씌운 듯한 도라전망대의 외관은 그리 정감이 가지 않는다. 군사훈련을 받는 듯한 북한에 대한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와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가까이 북한 땅을 본 것은 처음이다. 정말 손에 잡힐 듯하다. 내 심정이 이러한데 명절마다 북한 땅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실향민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금방이라도 스러져 버릴 듯 좌우로 쭉 늘어선 철조망, 멀리 철로 옆 차축만 남아있는 기차가 슬퍼 보인다.
점심식사를 하고 서둘러 간 곳은 JSA 공동경비구역. 영화에서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차도 한 가운데서 받은 신분증검사는 마치 남의 나라를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검문소를 지나는 밖의 풍경이 더욱 낯설다. 판문점을 가기 위해 들른 유엔사 경비대대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5분쯤 지나 도착한 곳은 벨린저 홀이다. 군인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으니 먼저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 준다. 거기에는 몇 가지 유의 사항과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모두 자신이 책임진다는 글이 적혀있다. 그냥 형식적인 것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서명을 하는데 두려움과 긴장감이 감돈다.
초록색 방문표찰을 받고 유엔사 경비대대의 역할과 판문점 근처 주요 건물들에 대한 교육이 끝나니 드디어 판문점으로 출발이다.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남쪽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쪽의 기정동 선전마을에 서 있는 태극기와 인공기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100m의 태극기와 160m의 인공기가 1.8㎞를 사이에 두고 하늘 높이 쭉 뻗어있다. 만날 듯하지만 끝내는 수평선을 이루는 남과 북의 분단 50년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한발을 왼쪽으로 대면 남한, 오른쪽으로 옮기면 북한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제2검문소를 넘어 30초안에 판문점으로 출동할 수 있도록 워커까지 신은 채 대기한다는 막사 앞을 지나 진짜 판문점(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통해 자유의 집 밖으로 나가 곳곳에 꼼짝 않고 서있는 군인들을 지나니 팔각정이다. 바로 앞이 파란색 판문점 건물이고, 그 앞에 갈 수 없는 반쪽의 또 다른 우리나라가 보인다. 팔각정을 내려와 판문점의 파란문 안으로 들어서니 안에는 각 종 남.북 회담이 열렸던 긴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 중앙의 마이크 선이 바로 남과 북의 경계란다.
테이블 중앙을 넘어 우리가 들어 간 반대 편 쪽으로 천천히 발을 딛는다. 한 발을 왼쪽으로 대면 남한, 오른 쪽으로 한 발자국 옮기면 북한.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판문점 밖에서 이 경계를 넘으면 엄청 난 일이 일어나는구나. 창문 밖에 남과 북의 경계를 나타내 주는 낮은 콘크리트 턱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판문점을 나오면서 판문각 앞에 서 있는 북한군인 한 명을 발견하는 순간 긴장감과 두려움의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깨닫고는 그만 쓴웃음을 짓는다. 온 몸으로 남과 북의 경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방금 느끼고도 북한 군인의 모습에 경계하는 모습이라니. 어느새 내 기억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을 반공의식이 더 두려워진다.
버스로 얼마 가니 한국전쟁 이후 포로교환이 있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이다. 포로들은 다리 위에서 일단 방향을 선택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이념 때문에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겨울의 끝자락이라 황량한 다리 근처의 들판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그렇게 판문점 견학을 마치고 간 마지막 코스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이 곳은 경관이 참 아름다웠다. 건너편의 북한마을도 선명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서서 오랫동안 아름다운 강과 하늘과 북녘 땅을 보았다. 하루 동안의 짧은 기행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단의 아픔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기에는 충분한 하루였다. 더불어 아픈 분단의 역사에 지금껏 무딘 눈으로 관망해온 나를 되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큰 버스 한 대를 가득 메워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어떤 마음일까? 일일이 확인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분단의 역사와 상처가 이제는 끝나길 바라는 한 마음 아닐까?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선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는데 입안에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맴돈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 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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