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04년 한국사회, 참여만이 희망이다!> 교육은 학교와 교사로만 되지 않는다
2004/2004년 01월 :
2004/01/01 00:00
학생들이 주체되는 교육자치가 되야
나라의 희망인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자신의 개성과 자질을 한껏 펼치게 하기 위해 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희망이란 무엇이며,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제도와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편집자 주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의 정부명칭을 ‘참여정부’라 부른다. 여러 뜻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러한 명칭을 붙이게 된 것은 대통령이 시민들의 자발적 지지운동의 힘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로 사회를 바꾸어가겠다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정치가가 또는 정부의 기관들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통치하는 일방주의적인 통치개념이 아니라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이 되어 자신이 사는 고장과 사회를 바꾸어가고 이끌어간다고 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형태가 될 것이다. 상식과 이성을 가진 시민들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개선을 요구하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우리는 불행히도 이런 지극히 정상적인 경험보다는 참여가 좌절되고 굴절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는 교육전문가주의 경향이 심해서 교육에 관한 외부의 입김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따라 교육행정도 지방자치행정과 분리하여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지방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 운영됨에 따라 효율성 저하의 문제가 지적되고는 있으나 교육전문성 강화의 논리에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전문성이 존중되면서도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경향성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교육 종사자가 아닌 시민들의 교육 참여는 상당히 제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벽이 허물어지게 된 것은 1996년 학교운영위원회 도입으로, 학부모, 지역주민, 평교사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교육은 교육청과 같은 행정기관과 학교의 장이 교육과 관련한 전반적인 것을 결정하고 통치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교육자치의 시작 '학교운영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되면서부터 학교장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야만 했던 평교사와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에 참여하여 학교운영에 관련된 사항들을 심의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지역주민이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육자치 활성화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학교예산을 제대로 쓰는 일에서부터 학생들이 어떤 교육활동을 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학교교육 전반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교사의 영역에서 채 챙기기 어려운 질 높은 급식 제공을 위한 식재료 검수활동은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이 되고 있다. 또 대기업의 담합에 의한 값비싼 교복을 공개입찰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된 것도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된 후 학부모들이 적극적인 학교교육에 참여한 결과로 얻어진 성과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알고 개선하는 데까지는 학교운영위원회가 관여하기는 쉽지 않지만 학교행사나 다른 활동들은 대부분 교육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으로 유도하는 데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거의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우리의 교육풍토와 문화가 바꿔지지 않아 평교사와 학부모들의 합리적인 요구가 모두 수용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된 지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한 지금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가장 전형적인 통로로 인식되고 있다.
이외에도 학교 안에서 각종 학부모조직들이 자원봉사의 성격을 띠고 학교교육에 참여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학교의 필요에 따라 수동적으로 활동한 형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 참여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대개는 부족한 학교의 재정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활동들이 활성화되면서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 학생들과 함께하는 자원봉사활동들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학부모들이 좋은 책을 모으고, 일일이 도서 분류를 하여 책 대여에서부터 즐겁게 책을 접하게 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유명무실했던 학교도서관을 학생들이 친숙하게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도 가능하게 했다.
또 중.고등학생들에게 자원봉사활동을 점수화한 교육정책이 시간 때우기 식 자원봉사활동으로 변질되게 하였다면,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을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활동으로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다양한 자원봉사활동 영역을 개발하여 학생들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중.고등학생의 자원봉사 점수화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게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원봉사활동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충분하지 못함으로써 일부 열성적인 학부모들이 있는 학교에서나 가능한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모범적인 학부모활동이 일반화될 수 있는 모델들을 보급하는 행정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실질적인 학교자치의 기구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산하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가 법적 기구로 되어 각 단위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은 학교운영위원회만이 상위에 덩그러니 있는 상황과 같아 내실 있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가 있어 유기적인 관계 속에 의사소통과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른 형태로 학교교육에 기여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도입될 당시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신자유주의 정책의 산물이라 하여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정착하고 학교자치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가 법제화되어야 하고, 사립학교도 지금의 자문기구에서 심의.의결기구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사립학교 운영자들을 빼고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또 아직 학부모위원으로 나서는 지원자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자발성과 적극성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의 공간이 열렸음에도 여전히 방관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참여 공간의 확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교육위원 및 교육감 선출권을 학교 운영위원에게 부여하였지만 자발적 지원에 의하지 않고 학교장의 지명으로 운영위원이 구성된다면 취약한 대표성으로 교육자치의 확대의 효과는 거두기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참여의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자발적인 참여의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교육자치는 학생자치에서부터
교육자치가 실질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의 전문성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육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테두리를 치고 그 밖의 목소리는 비전문가들의 하찮은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이 오늘날 교육의 폐쇄성을 가지고 온 원인이 된다. 알다시피 교육은 학교에서만이, 교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모든 곳이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교와 교사 외에도 무수히 많다. 사회의 전 영역이 교육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중매체, 인터넷 공간, 가정과 학교, 동네 놀이터 등 모든 곳이 아이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학생 자신에서부터 시민 한 사람, 또는 집단이나 단체가 지역교육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여러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자치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자치의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부터 자치의 경험을 풍부하게 갖는 것은 그것 자체가 참여사회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 요소가 될 것이다.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교육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의문과 문제의식을 가질 때 진정한 교육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는 과정 그 자체가 소중한 교육의 경험이 된다.
참여란 그 자신이 주인의식을 가질 때 가능한 행위이다. 학생이 교육의 대상이고 객체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 교육의 주체이자 학교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될 때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학생회를 자치기구로 인정해주고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교육자치는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일방적으로 주어지고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면 교육 자치만이 아니라 참여에 의한 사회의 변화는 영영 이뤄지지 않을 꿈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하찮은 문제의식에도 귀를 기울여 주는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이 참여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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