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주노동자인권> "지독한 인종주의! 섬뜩한 민족주의!"
2004/2004년 01월 :
2004/01/01 00:00
'4년' 고집하는 정부의 속보이는 이주노동자 정책
다라카, 비꾸, 안드레이, 부르혼, 카미, 김원섭, 자카리아 그리고….
이 일곱 사람의 이름을 아는가. 만약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무심히 넘기지 않은 것을 인정받아 ‘양심적 한국인’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11월 17일부터 추진하고 있는 강제추방 정책의 피해자들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십수 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미등록 노동자를 우리 정부가 묵인하며 주요 인력으로 활용해 왔다는 데 있다. 아시아 지역의 몇몇 인력도입국가에 비하여 비교적 입국규제가 약하고, 일단 입국하기만 하면 일자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우리나라는 ‘미등록 노동자’를 끌어들이는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 흡인력에 이끌려 점점 더 많은 노동자가 들어오자, 우리 정부는 아예 이들을 주요 인력확보 수단으로 삼아왔다. 2003년 초 약 40만 명 정도 되는 이주노동자 중에서 80%가 미등록으로 일했을 정도이니 정부도 다른 변명을 끌어대지는 못할 것이다.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미등록노동자 양산창구
게다가 90년대 초반에 미등록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도록 연수생을 도입하겠다고 만들어낸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는 오히려 미등록노동자를 양산해내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각 송출국가마다 배당된 인원보다 수 백 배나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 경쟁이 치열해 지고 이익단체들은 너도나도 그것을 이용해서 돈벌이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연수생들은 월급 50만 원을 벌기 위해 송출비용 1000만 원을 들여 한국에 온다. 입국에 성공하기만 하면 미등록노동시장으로 편입해 들어간다. 그래야 송출비용 본전을 뽑을 수 있다. 이런 모순 때문에 수많은 연수생이 미등록 노동시장에 편입해 들어갔다. 제도 자체가 ‘노동인력을 연수생이라는 가짜 이름표를 달아 도입하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운영 또한 국가가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이하 중기협)이나 건설협회와 같은 이익단체에 맡기는 바람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연수제도라는 것이 워낙에 ‘차별’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제도라 국내외의 비판이 쏟아지는 데다 송출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아지게 되자,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부까지도 연수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연수제도를 고수하려는 중기협 등 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오랜 진통을 겪은 끝에 지난 7월 말, 새로운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고용허가제)’이 바로 그것이다. 외국 인력의 도입 및 관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은 연수제도와는 달리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자 자격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송출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됨으로써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단순 기능인력을 3년 단위로 순환(로테이션) 고용하겠다는 발상이므로, 최대한 ‘3년 동안만 고용하여 최대한 인력을 활용’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동자를 사용자에게 귀속시켜 관리하기 쉽도록 하고, 그러기 위해 사업장 이동을 지나치게 제한할 뿐 아니라 3년 노동을 마치면 더 이상 연장 할 수 없고, 귀국 후 1년이 지나야만 다시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이 법률에는 기존 미등록노동자들 중 4년 이상 장기체류 노동자들을 ‘축출’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내용도 들어있다.
고용허가제 인력은 최대한 활용하되 4년은 넘길 수 없어
바로 법률의 부칙에 담겨있는 ‘기존 미등록노동자의 합법화 범위와 방법’이 그것인데 그 내용인즉, 2003년 3월 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기간이 3년 미만인 자는 총 체류기간이 5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 이내에서 최장 2년 간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취업활동을 허용하며, 2003년 3월 31일을 기준으로 국내 체류기간이 3년 이상 4년 미만인 자는 법무부 장관이 정하는 기한 내에 자진출국 하였다가 재입국하여 출국 전 체류기간과 합하여 5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 이내에서 출국 전 취업하고 있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취업활동을 허용하며, 위 두 가지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일정기간 내에 자진 출국하도록 하되 자진출국하지 않은 미등록노동자들은 ‘강력 단속하여 강제추방’ 시킨다는 것이다.
정부는 ‘법률’에 따라 지난 11월 17일부터 미등록노동자 단속 및 강제추방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강력한 단속을 한다며 위협하는 한편으로는 제조업의 인력난이 심하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단속에서 제외한다는 염치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력이 필요하긴 한데 ‘합법화’하기는 싫으니 공장에 꼭꼭 숨어서 일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 십수 만에 달하는 미등록노동자들 중에서 일부는 한국을 떠나고, 일부는 숨어들고, 일부는 합법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고, 다수는 꼼짝없이 공장에 갇힌 채 일하고 있다.
‘4년’을 고집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4년’인가? 도대체 왜 ‘노동력이 필요한데도 합법화할 수 없다’는 것인가? 기존 미등록노동자들을 전면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전혀 문제될 것도 없고 무리도 없을 텐데, 정부가 왜 사람 목숨까지 앗아가며 4년 기준을 강행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정부의 기본 이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부가 4년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주노동자의 정주를 막기 위해서다. 우습지만 정부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4년 이상 장기 체류노동자를 합법화 해 줬을 경우 한국에 적응력이 높은 이주노동자들이 끝내 한국 땅에서 눌러앉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주노동자,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이 한국사회에서 장기간 체류하고, 정주하고 그것에 더해 한국인과 혼인까지 하며 섞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독한 인종주의요 민족주의이다. 늘 외세에 눌리고 밀려 민족자주권을 지켜내느라 내세웠던 인종주의 민족주의가 알량하게 살림살이 좀 폈다고 그새 엄청난 폭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기본 이념’을 알고 살핀다면 그간 정부가 추진해온 이해할 수조차 없던 각각의 정책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단박에 파악하게 된다. 미등록 노동자를 합법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활용, 정식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연수제도, 정주를 방지하자는 고용허가제, 장기체류자 축출, 몰염치한 제조업 노동자 단속유보에 재외동포 정책까지도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정주 방지. 이들이 우리 땅에 뿌리내리는 것을 허하지 말라.’ 이 거대한 음모를 모르고 송출비용이 어떻고, 사업장 이동이 어떻고, 노동3권이 어떻고를 논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하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 나라의 인종차별 민족차별이 낳은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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