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믿는가?
2004/2004년 05월 :
2004/05/01 00:00
봄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햇볕이 부담스럽고 잠깐만 걸어도 어느새 끈적거린다.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하여 마음까지 스산하게 했던 나무들의 가지마다 싹이 터 오르더니 이제 제법 푸른 기운을 뿜어낸다. 겨울이 다하면 봄이 오고 여름이 따르는 이 자연의 이치에는 누구도 미심쩍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의 순행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우리는 이 사회의 미래와 사람들에 대해 깊이 신뢰하고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걱정이 많아진다. 젊었던 시절에는 날씨가 화창하면 그저 좋았고 어딘가 멀고 유명한 곳에 가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비가 안 오면 농민들이 생각나고 이 가뭄이 계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떠오른다. 단비 한 번 내리면 해소되는 이런 걱정들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걱정들도 있다. 아직 할 일 많은 40대이건만 2030 젊은이들과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들이 특히 앞선다. 우리와 썩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고뇌해왔던 화두였다. 젊은이들조차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조사연구결과를 언젠가 들었을 때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젊은이일수록 정치에 무관심하여 날씨가 좋으면 투표율은 낮아진다는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많은 대학에서 비운동권 학생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요사이 학생들은 자기들의 복지나 문화시설 등에만 매몰되어 우리 사회의 미래와 소외된 사람들의 현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지는 않는가 걱정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를 강의하기란 쉽지 않다. 뜨거워지는 가슴과 붉어지는 눈시울을 억누르면서 광주민주항쟁이나 6월항쟁을 이야기할 때에 마주친 그들의 눈은 공허하기만 했다.
허기야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광주나 명동성당이 탑골공원과 다를 리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초에 내가 살았던 집 근처의 공장에서 일요일도 없이 뼈마디가 삭고 눈이 퀭하도록 일만 하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을 통해 맑스 자본론에 나오는 공장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그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기만 했다. 자신들과는 관계없다는 그 표정에서 절망하고 걱정하는 경험이 비단 나만의 것이랴.
확실히 내 세대의 경험과 사고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3월 하늘과 유관순 누나’를 부르면서 우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었다. ‘5.16혁명의 대의’와 ‘10월유신의 청사진’을 받아들였고, 육영수 씨와 박정희 씨가 죽었을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러나 박종철 군의 죽음에 가슴이 마비될 정도로 저렸고 전두환 씨의 뻔뻔스러움엔 치를 떨었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했는데도 5월투쟁과 노동총파업을 마음으로 함께 했었다. 외환위기에는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남북정상회담에 열광하였으며, 마침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도 분노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왜곡되고 모순된 반응이었다. 일관된 것이 있었다면, 각 시기마다에 지고의 정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다시 젊은 세대들로 돌아가 보자. 나는 수업시간마다 온갖 사회이슈들을 가지고 학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다. 최근에는 당연히 탄핵문제가 그 메뉴에 올랐는데, 10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 94명은 ‘탄핵반대’에, 3명은 ‘탄핵찬성’에 손을 들었다. 언론보도로 미루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우리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탄핵사태에 대한 언론보도의 공정성’에 대한 응답은 다소 의외였다. 85명의 학생들이 ‘불공정하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불과 두어 명이 ‘공정하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시시비비를 떠나서 사회적 다원성과 기회의 균등을 의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역사와 사회에 무관심해 보이던 이들의 머리 속에 오히려 ‘정의감’과 ‘사려깊은 개방성’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뒤부터는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에 무표정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걱정하지는 않는다. 노파심이 사라지자 그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스포츠 상업주의에 말려들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수만 명씩 모여서 ‘전체주의적’ 응원을 벌이던 그 광장에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모습이 별로 모순적이지 않았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모이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휴대폰으로 가수 보아의 뮤직 비디오를 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밤새워 포르노사이트를 뒤지는 데 용이한 초고속통신망과 인터넷을 통해 사회정의의 메시지도 같이 흐른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나는 우리 세대들이 사회정의만을 추구하였다면, 새로운 세대들은 그에 덧붙여 공정성과 다원성을 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버릇없어져 가는 이 젊은애들’이야말로 우리에 비해 한 차원 높아진 신세대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미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언론조차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세대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또다시 겨울이 오더라도 새로운 세대들은 이를 능히 헤쳐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세대들이 맞는 봄은 지난봄과 같지 않다. 한층 자란 줄기를 타고 더 높은 곳에서 싹이 트고 색이 깊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조급하게 수학문제를 풀다가 산수에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수학문제처럼 우리사회의 문제풀이에도 정답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걱정이 많아진다. 젊었던 시절에는 날씨가 화창하면 그저 좋았고 어딘가 멀고 유명한 곳에 가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비가 안 오면 농민들이 생각나고 이 가뭄이 계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떠오른다. 단비 한 번 내리면 해소되는 이런 걱정들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걱정들도 있다. 아직 할 일 많은 40대이건만 2030 젊은이들과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들이 특히 앞선다. 우리와 썩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고뇌해왔던 화두였다. 젊은이들조차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심지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조사연구결과를 언젠가 들었을 때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젊은이일수록 정치에 무관심하여 날씨가 좋으면 투표율은 낮아진다는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많은 대학에서 비운동권 학생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요사이 학생들은 자기들의 복지나 문화시설 등에만 매몰되어 우리 사회의 미래와 소외된 사람들의 현재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지는 않는가 걱정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를 강의하기란 쉽지 않다. 뜨거워지는 가슴과 붉어지는 눈시울을 억누르면서 광주민주항쟁이나 6월항쟁을 이야기할 때에 마주친 그들의 눈은 공허하기만 했다.
허기야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광주나 명동성당이 탑골공원과 다를 리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초에 내가 살았던 집 근처의 공장에서 일요일도 없이 뼈마디가 삭고 눈이 퀭하도록 일만 하던 아버지와 그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을 통해 맑스 자본론에 나오는 공장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도 그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기만 했다. 자신들과는 관계없다는 그 표정에서 절망하고 걱정하는 경험이 비단 나만의 것이랴.
확실히 내 세대의 경험과 사고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3월 하늘과 유관순 누나’를 부르면서 우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었다. ‘5.16혁명의 대의’와 ‘10월유신의 청사진’을 받아들였고, 육영수 씨와 박정희 씨가 죽었을 때에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러나 박종철 군의 죽음에 가슴이 마비될 정도로 저렸고 전두환 씨의 뻔뻔스러움엔 치를 떨었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했는데도 5월투쟁과 노동총파업을 마음으로 함께 했었다. 외환위기에는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고, 남북정상회담에 열광하였으며, 마침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도 분노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왜곡되고 모순된 반응이었다. 일관된 것이 있었다면, 각 시기마다에 지고의 정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다시 젊은 세대들로 돌아가 보자. 나는 수업시간마다 온갖 사회이슈들을 가지고 학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다. 최근에는 당연히 탄핵문제가 그 메뉴에 올랐는데, 10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 94명은 ‘탄핵반대’에, 3명은 ‘탄핵찬성’에 손을 들었다. 언론보도로 미루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우리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탄핵사태에 대한 언론보도의 공정성’에 대한 응답은 다소 의외였다. 85명의 학생들이 ‘불공정하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불과 두어 명이 ‘공정하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시시비비를 떠나서 사회적 다원성과 기회의 균등을 의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역사와 사회에 무관심해 보이던 이들의 머리 속에 오히려 ‘정의감’과 ‘사려깊은 개방성’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뒤부터는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역사적 사건들에 무표정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걱정하지는 않는다. 노파심이 사라지자 그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스포츠 상업주의에 말려들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수만 명씩 모여서 ‘전체주의적’ 응원을 벌이던 그 광장에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모습이 별로 모순적이지 않았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모이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휴대폰으로 가수 보아의 뮤직 비디오를 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밤새워 포르노사이트를 뒤지는 데 용이한 초고속통신망과 인터넷을 통해 사회정의의 메시지도 같이 흐른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나는 우리 세대들이 사회정의만을 추구하였다면, 새로운 세대들은 그에 덧붙여 공정성과 다원성을 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버릇없어져 가는 이 젊은애들’이야말로 우리에 비해 한 차원 높아진 신세대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미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언론조차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세대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또다시 겨울이 오더라도 새로운 세대들은 이를 능히 헤쳐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세대들이 맞는 봄은 지난봄과 같지 않다. 한층 자란 줄기를 타고 더 높은 곳에서 싹이 트고 색이 깊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조급하게 수학문제를 풀다가 산수에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수학문제처럼 우리사회의 문제풀이에도 정답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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