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김동춘 교수를 만나고


“안식년을 맞아 한국 사회를 떠나본다는 핑계로 미국에서 1년 2개월 동안 쓰기보다는 읽고, 읽기보다는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우리나라가 닮아가는 미국사회에서 우리의 미래를 목도하고 체득하는 시간을 갖고 얼마 전 돌아온 그가 풀어놓는 2004년 미국과 한국이야기를 들어보는 회원특강이 4월 9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있었다. 함께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전쟁의 실상에 대한 망각을 부추키는 정치

‘전쟁이 일어난 사회가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부시가 이라크를 폭격할 때의 미국은 가히 충격적이다. 선전포고를 한 국가 대 국가의 전면전이었음에도 차분한 미국사회를 보면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때에도 이렇게 평온했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미국의 역사가 보여준 계속된 전쟁의 이면에는 본토에서 전쟁을 경험하지도, 피를 흘려보지 않은 채 생긴 전쟁의 실상에 대한 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3만7000여 명, 베트남전쟁에서 5만8000여 명이 그리고 이라크전쟁에서는 600여 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해당국가의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자 수가 한반도 300만여 명, 베트남 300만여 명, 이라크에서는 미국의 경제제재 기간에 50만∼100만여 명 그리고 이번 침략전쟁으로 1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사회가 아시아, 남미에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되풀이한 전쟁을 사회 이슈로 의제화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참전 군인들을 중심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에서 소외 받는 하층민 출신이고 넓은 영토의 모래알처럼 흩어지면서 목소리를 공명하지 못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 군산복합체를 대변하는 정치와 거대 독점 자본에 잠식된 미디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 전쟁 지지율이 80%(현재는 37%정도)까지 치솟았던 이유도, 베트남 전쟁에서 반전운동이 한창일 때도 60%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도, 한국 전쟁 그 자체를 모르는 이유도 진실을 오도하는 그릇된 ‘정치가’와 ‘미디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진보정당이 없는 나라

미국은 1.2차 대전, 한국전쟁과 닉슨 시대를 거치면서 급진적.진보적 좌파세력을 제거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개편되면서 정치가 기업의 로비와 정치자금의 틀 안에 갇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빨갱이 사상으로 몰리게 되는 레이건 시대를 지나면서 결국 4400만 명이 공적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을 개혁하려는 시도조차 우익세력에게 밀리는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1996년 정부의 탈규제로 대기업 자본이 인수 합병한 미디어가 미국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올곧게 전달하는 역할을 외면하면서 이제 미국은 자본 독재의 암흑 천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파블로프의 연산작용 마냥 ‘후세인=테러’라는 등식을 주입하는 주류매체를 견제할 대항언론매체가 있긴 하지만 인터넷 망, 저조한 신문 구독률 등의 제약적인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여론 형성에 어려움이 큰 것이 현실이다.

독점 자본에 잠식된 미디어에 언로 막혀

결국 미국은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대기업 상업주의가 큰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되었다. 대중들의 의사표현과 참여는 막히고 막강한 부르주아 세력이 반대세력을 포섭하고 매수하는 노하우를 축적하는 사회이다.

경제 규모의 차이, 오랜 독재 정권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갈망, 탄핵과 같은 미숙함 등을 볼 때 차라리 한국이 더 희망적이다. 17대 총선과 탄핵정국은 상당부분 미국화 되어버린 한국사회가 도덕적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한편으로 탄핵을 가결함으로 보수세력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17대 총선은 2개의 전선이 형성되었다.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과 ‘대안 세력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중 부패정치 및 수구세력의 청산이 좀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수구세력에 의해 수신료 분리징수 법안 등 언론관계법이 개악되어 국영방송이 미국과 같이 자본에 의해 종속되는 상업방송이 될 경우 이로 인한 폐혜가 가히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저항에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미국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는 이라크의 저항에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점과 ‘진보세력 없이는 처참하게 미국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사회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의 열기도 강의만큼이나 뜨거웠다. 미국 민주주의가 비판적인 이유에 대해서 김교수는 “삼권분리, 연방제, 소환제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조차도 자본에 의해 무력화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시각의 차이에 의해서 하나의 사건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기술하는, 냉철하게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미국이 북한을 핵 문제로 공격할 위험성에 대한 질문에는 “북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남북 화해를 모색하고 군비를 축소하는 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하였다. 또 미국이 남한에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미국이 막을 수 있는 전쟁을 막지 않고 냉전 교착화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삼은 점을 지적하고 만약 미국의 비밀문서가 공개된다면 한국전쟁은 아마 다시 쓰여져야 할지 모른다는 점과 남북문제가 남북한 당사자의 문제로 전화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새벽이 다 되도록 포장마차에서 미처 못다한 말씀을 쏟아내는 김교수와 그에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토론하는 회원들에게서 희망이 느껴진다. 한국의 희망은 사회를 감시하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규현
2004/05/01 00:00 200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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