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참여연대 10주년 '희망과 비전을 찾아서1] 초기 문패 논란을 통해서 본 참여연대 '출생의 비밀'
2004/2004년 05월 :
2004/05/01 00:00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 스스로가 가끔 대단히 필요하면서도 또 불필요한 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참여연대의 문패를 둘러싼 고집스런 논쟁도 그러한 예가 될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참여연대의 초기명칭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 싶다. 당시 기자들을 많이도 ‘헷갈리게’ 했던 명칭이었다. 참여연대의 활동이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 신문에서 정확하게 참여연대 이름 전체를 정확하게 쓴 경우는 아마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상근간사들도 전체이름을 잘못 쓰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초창기에 참여연대가 만들어진 후 무엇을 가지고 활동할 것인가 보다도 명칭을 가지고 더 치열하게 논쟁했던 기억이 난다. 늘상 그렇듯이 합의가 쉽게 모아지지 않고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는 토론의 경우, 체력 쎈 사람이 이기거나, 모두를 아우르는 ‘타협적인’ 명칭이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참여연대 명칭을 정하는 과정은 후자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래서 탄생한 제목이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총 16자).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못해도 시민단체 치고는 대단히 긴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헷갈리는 명칭은 참여연대가 출범하던 10년 전의 시대적 상황을 고민하던 산물이었다. 참여연대 출범 당시에는 두 가지 ‘시대적인’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군부정권이 퇴진하면서 합법적 공간 혹은 제도적 공간이 확장되었는데, 민주진영이 이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오랜동안 화염병 든 거리의 투쟁에 익숙해진 상태로 지내다가, ‘화염병 들지 않아도 되는 공간’ 즉 민주주의적 공간이 확장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민주진영이 실천영역으로 적극적인 확장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둘째는-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민중운동이나 반독재민주화운동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민운동이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적 공간을 ‘독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공간을 새로운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해왔던 민중운동진영은 그냥 냉소적인 비판이나 이념적 비판을 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운동적 상황 속에서, 진보적 지향을 갖는 민중운동이나 반독재민주화운동진영은 ‘주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감시’운동의 필요성
그래서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부응하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참여연대 초기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운동으로서의 ‘권력감시운동’의 필요성에 다다르게 되었다. 87년 이전의 운동이 권력을 ‘타도’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확장된 민주주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권력의 부패성과 반민주성을 개혁하기 위한 일상적인 ‘감시’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민중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민중적 시민운동’이자 ‘시민적 민중운동’으로서의 권력감시운동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창립선언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참여연대창립선언문
“80년대까지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은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길거리 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참 된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와 정치무대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국 민의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문자 그대로 국민이 나 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주인이 머슴처 럼 취급받고 국민의 공복에 불과한 사람들이 주인 위에 군림하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만연해 왔습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이러한 본말전도적 현상을 스스로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민 스스로의 참여와 감시가 필요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를 함으로써 나라의 주인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명실상부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국가권력이 발동되는 과정을 엄정히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처럼 분명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무언가 새로운 운동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실천의 ‘성격’과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또다른 쟁점이었다. 여기에 당시에는 두 가지 논의가 있었다. 첫째는 ‘인권’운동의 ‘확장’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실천을 규정하려는 사고가 있었다. 일종의 ‘대중적.시민적 인권운동’을 구상했던 것이다. 특별히 인권변호사, 인권운동가들, 비판적 법학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다. 둘째는 비판적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적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였다. 박원순 변호사, 서준식 선생, 조용환 변호사, 안경환 교수, 한인섭 교수, 차병직 변호사 등이 첫 번째 사고를 가지고 참여했다. 김중배 선생, 김동춘 교수, 김대환 교수, 유팔무 교수 등을 포함한 학자들이 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물론 이런 흐름에 있었다.
참여연대의 문패를 둘러싼 고집스런 논쟁?
이러한 두 가지 사고경향은 참여연대의 초기명칭을 정할 때, 팽팽한 긴장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권그룹은 ‘인권’이라는 말을 단체의 이름에 꼭 넣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당시 아직도 인권이라는 말이 고문이나 의문사 문제 등 독재정권에 의해 침탈되고 있었던 시민적.정치권 권리 보호와 연관시켜 생각하던 사람들은 굳이 인권이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너무 협소해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로 비판적 학자 그룹은 진보적 시민운동의 상징적 개념으로 대안적 사회를 시사하는 ‘참여민주사회’와 ‘시민’이라는 말을 꼭 단체명에 넣어야 한다고 또한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참여민주사회라는 말은 그래도 논란이 적었는데, 시민이라는 말을 넣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무척이나 많이 논란이 되었다. 그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시민운동에 의해 시민이라는 말이 많이 오염되어 ‘반(反)민중운동’이라는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애정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이라는 말을 넣으면 이미 민중운동과 차별화를 시키는 것이자 민중운동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시민이라는 말을 ‘죽어도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그러한 생각은 공감하나 ‘진보적’ 입장에서 시민운동영역으로 진입해 들어가서 시민운동의 일부로 ‘위장취업’해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쓰자는 입장이 비판적 사회과학자 그룹에서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당시로서는 모두가 참여연대 출범이 결렬될 지도 모르는 첨예한 쟁점이었으나, 서로 양보하여 시민이라는 말도 들어가게 되었고 또한 인권이라는 말도 들어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문패 다는 문제에 너무 집착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명칭이 하도 길어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초기부터 약칭(참여연대)를 즐겨쓰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긴긴 제목은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가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로 바뀌는 과정에 흥미로운 변화도 있었다. 그것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넣는 것을 반대하던 일부 학자들이 참여연대 활동 속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인권이라는 말을 제목에서 빼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초기 활동과정에서 권력감시를 주된 영역으로 하는 ‘진보적 시민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고 또한 긴 명칭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는 현실론에 밀려 16자의 긴 명칭은 그래도 10자로 축소되게 된다. 그후 참여연대라는 약칭으로 불리다가 참여연대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굳이 제목에서 참여연대가 하는 일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면서, 약칭을 그냥 고유명사로서 사용하자는 데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참여연대로 단체명이 바뀌어지게 된다. 단체명을 둘러싼 고집스런 논란은 참여연대가 누구나 기억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자리잡아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무수한 헌신들로 만들어진 ‘기적’
10년이 된 지금 참여연대는 매 시기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책으로 묶어서 내고 있다. 그러나 출범 이후 한동안 참여연대의 활동들이 신문에 1단이나 2단 기사로 나왔을 때 서로 전화를 걸고, 상근간사들이 신문기사를 펴놓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신문보도에 난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법감시, 의정감시 등의 권력감시였다. 참여연대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큰 보도기사가 난 것은 동아일보 사회면이었다. 의정감시, 사법감시센터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민운동의 영역이 개척된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 기사 중에 과거 민중운동을 비판하면서 이제 그것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는 식의 기사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둘러싸고 초기에는 험악한 논쟁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민중운동을 계승하고 확장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일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누가 이런 식으로 반(反)민중운동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식의 이미지를 주었느냐는 식의 논란이었다. 이는 당시 참여연대 내에 비록 방법론적으로는 민중운동과는 다른 제도 내적인 시민운동적 실천을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민중운동적 정신을 견지한다고 하는 합의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한편 생각하면 이러한 초기의 진보적 정신과 긴장이 과연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10주년을 돌아보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 바로 창립 초기의 풋풋한 정신과 긴장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10년이 된 참여연대가 과연 ‘진보적’인가하는 성찰적 물음도 해보곤 한다.
돌이켜 보면 참여연대가 10년만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운동단체로 성장한 것은 대견스럽다. 사실 이런 변화발전을 당시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돈 벌 수 있는 변호사직을 내던지고 ‘상근’ 사무처장으로 헌신한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하여, 탁월한 전문성과 헌신성으로 참여연대의 선도성을 만들어낸 많은 임원들, 젊음을 던져서 헌신하는 상근간사들, 묶묶히 성원하면서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시는 회원들의 ‘오케스트라’가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된다. 어느 단체이든지, 공명심만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필요없는 분란도 있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도 큰 갈등 없이 지내온 것은, 상대적으로 공명심 없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참 많은 분들의 헌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봉급이라고 하기에는 활동비에 준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참여연대에 상근자로 자신의 젊음을 던진 많은 간사들, 손수 연장을 들고 목수 일을 마다 하지 않으신 분,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참여연대에 회비를 꼬박꼬박 내고 또 기부금도 쾌척하시는 분, 자신의 책 출판 기념회를 참여연대에서 하고 그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시는 분, 회원 수련회에 가서 간사들 마저 밤새 술먹고 잠든 사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일이 청소를 하시던 분, 용산 사창가 골목의 후미진 사무실을 못내 안스럽게 여겨 거액을 쾌척해 사무실을 옮기시게 한 분, 참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의 헌신들이 오늘의 참여연대를 있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아름다운 헌신들이 많이 모인 단체일수록 더욱 발전한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철칙임을 참여연대의 10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참여연대를 기대하며…
참여연대의 출범으로 경실련이 건강해졌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조직도 경쟁자가 없을 때 나태해지기 쉽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참여연대가 약간은 틀에박힌(routine) 관성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참여연대가 나와서, 우리가 건강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참여연대가 경쟁의 효과로 건강성과 조직적 긴장을 갖게 되기보다는, 내부의 도덕적 규율과 헌신, 거시적인 사회적 통찰력에 의해서 긴장과 자기쇄신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요즘 한국사회운동의 ‘탈(脫)종속화와 주체적 세계화'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10년 동안 몸담아 온 권력감시운동으로서의 진보적 시민운동은 한국사회를 뛰어넘어 많은 아시아 후발 민주화국가에서 보편적인 운동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여연대의 활동을 보다 보편화시키는 각도에서 본다면, 참여연대는 ‘권위주의적 권력을 민주주의적 권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압력운동’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이행 국가들에서 참여연대적인 운동전형이 필요하고 보편적인 운동모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참여연대와 조직적 관계를 갖지 않더라도 참여연대의 아시아적 변형들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럴 때 서울에 있는 ‘PSPD 코리아’ 처럼 ‘PSPD 인디아’도 생기고 ‘PSPD 타이완’도 생길 것이라는 흐뭇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10년이 지난 지금 참여연대의 초기명칭을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 싶다. 당시 기자들을 많이도 ‘헷갈리게’ 했던 명칭이었다. 참여연대의 활동이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 신문에서 정확하게 참여연대 이름 전체를 정확하게 쓴 경우는 아마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상근간사들도 전체이름을 잘못 쓰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초창기에 참여연대가 만들어진 후 무엇을 가지고 활동할 것인가 보다도 명칭을 가지고 더 치열하게 논쟁했던 기억이 난다. 늘상 그렇듯이 합의가 쉽게 모아지지 않고 팽팽하게 의견이 맞서는 토론의 경우, 체력 쎈 사람이 이기거나, 모두를 아우르는 ‘타협적인’ 명칭이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참여연대 명칭을 정하는 과정은 후자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래서 탄생한 제목이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총 16자).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못해도 시민단체 치고는 대단히 긴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헷갈리는 명칭은 참여연대가 출범하던 10년 전의 시대적 상황을 고민하던 산물이었다. 참여연대 출범 당시에는 두 가지 ‘시대적인’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군부정권이 퇴진하면서 합법적 공간 혹은 제도적 공간이 확장되었는데, 민주진영이 이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오랜동안 화염병 든 거리의 투쟁에 익숙해진 상태로 지내다가, ‘화염병 들지 않아도 되는 공간’ 즉 민주주의적 공간이 확장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민주진영이 실천영역으로 적극적인 확장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둘째는-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민중운동이나 반독재민주화운동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민운동이 이러한 새로운 민주주의적 공간을 ‘독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공간을 새로운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주도적으로 해왔던 민중운동진영은 그냥 냉소적인 비판이나 이념적 비판을 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운동적 상황 속에서, 진보적 지향을 갖는 민중운동이나 반독재민주화운동진영은 ‘주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감시’운동의 필요성
그래서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부응하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참여연대 초기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었다. 여기서 새로운 운동으로서의 ‘권력감시운동’의 필요성에 다다르게 되었다. 87년 이전의 운동이 권력을 ‘타도’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확장된 민주주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권력의 부패성과 반민주성을 개혁하기 위한 일상적인 ‘감시’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민중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민중적 시민운동’이자 ‘시민적 민중운동’으로서의 권력감시운동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창립선언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참여연대창립선언문
“80년대까지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은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길거리 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참 된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와 정치무대의 한복판에서, 그리고 국 민의 일상생활의 과정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문자 그대로 국민이 나 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주인이 머슴처 럼 취급받고 국민의 공복에 불과한 사람들이 주인 위에 군림하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만연해 왔습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이러한 본말전도적 현상을 스스로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민 스스로의 참여와 감시가 필요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투표를 함으로써 나라의 주인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 니다. 명실상부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국가권력이 발동되는 과정을 엄정히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처럼 분명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무언가 새로운 운동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실천의 ‘성격’과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또다른 쟁점이었다. 여기에 당시에는 두 가지 논의가 있었다. 첫째는 ‘인권’운동의 ‘확장’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실천을 규정하려는 사고가 있었다. 일종의 ‘대중적.시민적 인권운동’을 구상했던 것이다. 특별히 인권변호사, 인권운동가들, 비판적 법학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다. 둘째는 비판적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적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였다. 박원순 변호사, 서준식 선생, 조용환 변호사, 안경환 교수, 한인섭 교수, 차병직 변호사 등이 첫 번째 사고를 가지고 참여했다. 김중배 선생, 김동춘 교수, 김대환 교수, 유팔무 교수 등을 포함한 학자들이 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물론 이런 흐름에 있었다.
참여연대의 문패를 둘러싼 고집스런 논쟁?
이러한 두 가지 사고경향은 참여연대의 초기명칭을 정할 때, 팽팽한 긴장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권그룹은 ‘인권’이라는 말을 단체의 이름에 꼭 넣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당시 아직도 인권이라는 말이 고문이나 의문사 문제 등 독재정권에 의해 침탈되고 있었던 시민적.정치권 권리 보호와 연관시켜 생각하던 사람들은 굳이 인권이라는 말을 넣을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너무 협소해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로 비판적 학자 그룹은 진보적 시민운동의 상징적 개념으로 대안적 사회를 시사하는 ‘참여민주사회’와 ‘시민’이라는 말을 꼭 단체명에 넣어야 한다고 또한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참여민주사회라는 말은 그래도 논란이 적었는데, 시민이라는 말을 넣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무척이나 많이 논란이 되었다. 그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의 시민운동에 의해 시민이라는 말이 많이 오염되어 ‘반(反)민중운동’이라는 느낌을 많이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반독재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애정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이라는 말을 넣으면 이미 민중운동과 차별화를 시키는 것이자 민중운동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 시민이라는 말을 ‘죽어도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그러한 생각은 공감하나 ‘진보적’ 입장에서 시민운동영역으로 진입해 들어가서 시민운동의 일부로 ‘위장취업’해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쓰자는 입장이 비판적 사회과학자 그룹에서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당시로서는 모두가 참여연대 출범이 결렬될 지도 모르는 첨예한 쟁점이었으나, 서로 양보하여 시민이라는 말도 들어가게 되었고 또한 인권이라는 말도 들어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문패 다는 문제에 너무 집착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명칭이 하도 길어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초기부터 약칭(참여연대)를 즐겨쓰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긴긴 제목은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가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로 바뀌는 과정에 흥미로운 변화도 있었다. 그것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넣는 것을 반대하던 일부 학자들이 참여연대 활동 속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인권이라는 말을 제목에서 빼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초기 활동과정에서 권력감시를 주된 영역으로 하는 ‘진보적 시민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고 또한 긴 명칭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는 현실론에 밀려 16자의 긴 명칭은 그래도 10자로 축소되게 된다. 그후 참여연대라는 약칭으로 불리다가 참여연대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굳이 제목에서 참여연대가 하는 일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면서, 약칭을 그냥 고유명사로서 사용하자는 데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참여연대로 단체명이 바뀌어지게 된다. 단체명을 둘러싼 고집스런 논란은 참여연대가 누구나 기억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자리잡아 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무수한 헌신들로 만들어진 ‘기적’
10년이 된 지금 참여연대는 매 시기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책으로 묶어서 내고 있다. 그러나 출범 이후 한동안 참여연대의 활동들이 신문에 1단이나 2단 기사로 나왔을 때 서로 전화를 걸고, 상근간사들이 신문기사를 펴놓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신문보도에 난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법감시, 의정감시 등의 권력감시였다. 참여연대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큰 보도기사가 난 것은 동아일보 사회면이었다. 의정감시, 사법감시센터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민운동의 영역이 개척된다는 기사였다. 그런데 이 기사 중에 과거 민중운동을 비판하면서 이제 그것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는 식의 기사내용이 있었다. 이것을 둘러싸고 초기에는 험악한 논쟁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민중운동을 계승하고 확장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일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누가 이런 식으로 반(反)민중운동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식의 이미지를 주었느냐는 식의 논란이었다. 이는 당시 참여연대 내에 비록 방법론적으로는 민중운동과는 다른 제도 내적인 시민운동적 실천을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민중운동적 정신을 견지한다고 하는 합의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한편 생각하면 이러한 초기의 진보적 정신과 긴장이 과연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10주년을 돌아보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 바로 창립 초기의 풋풋한 정신과 긴장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10년이 된 참여연대가 과연 ‘진보적’인가하는 성찰적 물음도 해보곤 한다.
돌이켜 보면 참여연대가 10년만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운동단체로 성장한 것은 대견스럽다. 사실 이런 변화발전을 당시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돈 벌 수 있는 변호사직을 내던지고 ‘상근’ 사무처장으로 헌신한 박원순 변호사를 비롯하여, 탁월한 전문성과 헌신성으로 참여연대의 선도성을 만들어낸 많은 임원들, 젊음을 던져서 헌신하는 상근간사들, 묶묶히 성원하면서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시는 회원들의 ‘오케스트라’가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된다. 어느 단체이든지, 공명심만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필요없는 분란도 있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도 큰 갈등 없이 지내온 것은, 상대적으로 공명심 없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참 많은 분들의 헌신들이 있었던 것 같다. 봉급이라고 하기에는 활동비에 준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참여연대에 상근자로 자신의 젊음을 던진 많은 간사들, 손수 연장을 들고 목수 일을 마다 하지 않으신 분,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참여연대에 회비를 꼬박꼬박 내고 또 기부금도 쾌척하시는 분, 자신의 책 출판 기념회를 참여연대에서 하고 그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시는 분, 회원 수련회에 가서 간사들 마저 밤새 술먹고 잠든 사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일이 청소를 하시던 분, 용산 사창가 골목의 후미진 사무실을 못내 안스럽게 여겨 거액을 쾌척해 사무실을 옮기시게 한 분, 참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의 헌신들이 오늘의 참여연대를 있게 하였다고 생각된다. 아름다운 헌신들이 많이 모인 단체일수록 더욱 발전한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철칙임을 참여연대의 10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참여연대를 기대하며…
참여연대의 출범으로 경실련이 건강해졌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조직도 경쟁자가 없을 때 나태해지기 쉽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참여연대가 약간은 틀에박힌(routine) 관성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참여연대가 나와서, 우리가 건강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참여연대가 경쟁의 효과로 건강성과 조직적 긴장을 갖게 되기보다는, 내부의 도덕적 규율과 헌신, 거시적인 사회적 통찰력에 의해서 긴장과 자기쇄신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요즘 한국사회운동의 ‘탈(脫)종속화와 주체적 세계화'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10년 동안 몸담아 온 권력감시운동으로서의 진보적 시민운동은 한국사회를 뛰어넘어 많은 아시아 후발 민주화국가에서 보편적인 운동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여연대의 활동을 보다 보편화시키는 각도에서 본다면, 참여연대는 ‘권위주의적 권력을 민주주의적 권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압력운동’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이행 국가들에서 참여연대적인 운동전형이 필요하고 보편적인 운동모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참여연대와 조직적 관계를 갖지 않더라도 참여연대의 아시아적 변형들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럴 때 서울에 있는 ‘PSPD 코리아’ 처럼 ‘PSPD 인디아’도 생기고 ‘PSPD 타이완’도 생길 것이라는 흐뭇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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