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바꾸기] '복지=사회주의' 오해하는 시대 끝나려나
2004/2004년 05월 :
2004/05/01 00:00
17대 국회 사회복지정책전망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니계수’ 등 그동안 발표된 각종 사회지표는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또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 등 인구구조에 있어 심각한 변화를 맞고 있고, 일을 하지만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working poor)도 계속 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절박한 상황이다. 이에 총선 과정에서 17대 국회가 이런 사회적 변화에 걸맞는 정책적 대안을 적절히 내놓았는지, 또 절박한 복지에 대한 요구를 국회가 어떻게 수용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17대 총선 각 당의 공약평가
안타깝게도 이번 총선 각 당이 제시한 사회복지분야 공약들은 치열한 문제의식과 원인 분석 없이 기존의 정책을 재탕하거나, 그럴듯한 내용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우선 사회복지예산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과 우선 순위, 재원 조달방식에 대한 공약들을 살펴 보면, 전반적으로 치밀한 고민 없이 임시방편으로 이뤄져,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모든 정당이 사회복지 예산의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예산규모 자체가 현실성이 없거나 정밀한 검토 없이 제시되었다.
빈곤문제에 대해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확대와 급여수준의 인상, 부분급여, 소득공제, 자활사업의 활성화 등 기존 제도의 내실화에 대해 모든 정당이 동의하고 있다. 17대 국회에 대해 기대를 거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과정을 볼 때, 공적부조와 관련한 공약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또한 빈곤문제에 대한 대책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국한되어 있고, 빈곤의 원인과 관련해 사전적 예방보다는 빈곤한 계층에 대한 사후대책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민연금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개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4개 원내정당들이 공통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를 지지하고, 사각지대 해소에 대해서 분명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보험료와 급여 조정을 통한 재정 안정화 대책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회피하였는데, 이는 책임있는 정당의 자세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각 정당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기초연금제의 도입이었다.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제의 도입에 찬성하였으며, 새천년민주당은 소극적 동의, 열린우리당은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기초연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보험료와 조세의 병행을, 민주노동당은 전액 조세로 충당하는 무기여 방식을 제시하였다.
건강보험에 대한 각 정당의 공약을 살펴보면,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기존에 제시되었던 정책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진부함이 있다. 공공의료 확충의 적극성에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반면, 민간의료보험과 의료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의 경우 모두 반대하고 있다.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전제조건과 신중함을 강조하며 소극적 반대입장을, 한나라당은 보충적 민간보험 도입과 제한적인 의료시장 개방에 찬성하고 있으며, 자유민주연합은 모두 찬성하고 있다.
이번 17대 총선 사회복지분야의 공약은 전반적으로 부실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비전, 방향성, 그리고 그에 따른 체계적인 정책대안이 결여되어 있다. 예산에 대한 고려 없이 각 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노인정책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요 정당은 고령사회대책기본법은 기본이고, 부모 부양 회피시 부양 강제 조치, 효도법 제정, 복지관에서의 중식 무료 제공 등 실현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선심성 공약들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표를 의식한 공약은 뒤로 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17대 국회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밑바닥부터 다시 고민해야만 한다.
진보정당 등장과 사회정책의 변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인해 향후 사회정책 분야에 있어서의 긍정적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복지를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오해하는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하고, 진보적 사회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음을 방증하고 있다. 우선 각 당 공히 약속한 빈곤 문제 해결, 기초연금제 도입을 위한 논의와 조치들이 17대 국회 초반에 가시화되고 현실화되기를 기대할 수 있으며, 비정규노동자의 권리와 관련한 각종 법령의 제개정도 새로운 차원에서 촉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 분야에 있어서 관건은 여전히 각종 제도에 수반되는 예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가 될 것이며,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은 이에 대한 합리적 해결방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한편으로 각 정당과 17대 국회는 고령화 사회라는 위기의 실체를 보다 분명히 파악하고 대처해야만 한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각 당의 인식수준과 준비 정도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기초연금의 도입문제를 비롯하여 노인요양보장시스템과 출산율 저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사회의 악화된 소득분배구조의 개혁,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 또한 분출하는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의 정비는 우리 사회의 발전 경로와 구성원의 삶의 질을 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17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국회의 행보를 주시하는 감시의 눈초리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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