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에 첫 발을 들여놓던 날, 신선하게 다가오는 풍경이 하나 있었다. 간사들의 자유롭고 편한 옷차림이 그것이다. 시민운동의 무대는 사무실 책상위에서부터 집회 장소의 아스팔트 바닥에 이르기까지 실내외를 넘나들기 때문에 활동적인 복장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정장차림을 하지 않는 것은 자원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신입간사 시절 선배 간사와 자원활동가를 혼동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강이현 자원활동가였다. 그의 차분한 언행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간사들과 완전히 동화되어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짜고짜 예전에 속았다는 말부터 건네면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담담하게 응해주었다.

강이현 자원활동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자원활동가이다. 그는 2003년도에 휴학을 하고 대학교 인턴쉽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었지만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결과였다고 말하는 솔직함을 보여주었다. 꿩대신 닭으로 선택한 참여연대 였지만 인턴쉽 기간이 종료된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자원활동 시스템은 일반 자원활동과 인턴쉽 자원활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자는 학생과 시민, 회원들이 의무적인 기간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 특정한 기간을 정해서 자원활동가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는 차이점이 있다. 인턴쉽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활동을 지속하는 자원활동가의 존재는 참여연대에 대한 평가인 셈이다.

참여연대는 한국전쟁 종전 5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03년도에 평화군축센터를 설립하였는데 그는 원년 자원활동가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0주 간의 인턴쉽 활동 기간 동안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과 관련한 언론보도 검색과 집회준비 및 서명운동을 진행했던 당시의 감회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손발이 열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뛰어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이 간사가 아니냐는 말씀을 종종 하시더군요. 공간사님만 속은게 아니에요.(웃음)”

그해 말에 일반 자원활동가로 변신(?)한 그는 참여연대에 뭔가 더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고생끝에 낙이라고 했지만 파병반대 운동의 결과는 참여정부와 16대 국회의 파병결정에 의해서 쓰디쓴 열매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됐죠. 작은 힘이지만 참여연대의 반전평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비를 내는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거죠.”

장래 국제기구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으나 시민운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묻어 나오는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질문이 있었다. “간사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솔직하고 직선적인 일전의 대답을 떠올리며 던진 질문에 그는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자원활동을 하면서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간사를 사회의 직업군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어요, 마음은 열어두겠지만 성급한 약속은 하지 않을래요.”

얄밉게도 말잘하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필자만의 마음일까?

강이현 평화군축센터 자원활동가
2005/03/01 00:00 2005/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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