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신임 사무총장
2005/2005년 04월 :
2005/04/01 00:00
입 열 개에서 귀 열 개로

“시민운동의 허장성세를 초래했던 성과주의와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는 역할을 분명히 하고, 풀뿌리 회원단체라는 정체성에 맞게 회원과 함께 호흡하는” 사무총장이 되겠다는 다짐이 특히 그랬다. 그가 도전하는 “생명력이 녹아있는 따뜻한 운동”, “모성이 담긴 조직운영”이란 목표를 좀 더 꼼꼼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인간 김혜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누하동 환경연합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진기자와 함께 간다는 이유로 차를 가지고 갔는데 기분이 찜찜했다. 환경연합 간사들이 참여연대 사무실을 오고 갈 때 대부분 걸어서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게 꼭 환경적인 것은 아니”라는 그의 지적처럼 머리로만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는 귀차니스트인 나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환경연합 사무실은 참여연대와 천양지차다. 아직 초록 기운을 내뿜지는 못하지만 편안하게 자리잡은 잔디 마당과 하늘이 보이는 천정까지 뻗어있는 대나무에서부터 이름 모를 야생초로 가득 찬 실내정원. 지붕에는 풍력발전기까지 설치되어 있단다. 사람을 온화하게 만드는 나무 계단을 올라 봄 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사무총장실로 들어서자 주눅은 시샘으로 변한다.
반핵 운동으로 시작된 환경운동가의 길
2000년 총선연대 공동 사무처장으로 활동할 때부터 그를 보아 왔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게 변변찮다. 대뜸 환경운동에 어떻게 첫 발을 담그게 되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그는 울진하고도 죽변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한 울진반핵운동청년협의회 활동부터 공해추방운동연합(이하 공추련) 활동가를 거쳐 환경연합 사무총장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을 펼쳐 보였다.
“제가 학교를 좀 늦게 갔는데 열심히 공부할 만한 가치도 못 찾겠고, 데모하는 아이들 보고도 안 하는 아이들보단 기특해 보였지만 온전하게 나를 던져 하기에는 삶의 고민이 많았어요.”
뒤늦게 선택한 학업조차 그만두게 한 그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 끝에 아버지 병 수발을 핑계로 내려간 고향, 울진에서 마침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가동됐다. 우리 지역의 핵문제를 우리가 바로 보자는 생각으로 울진 핵발전소반대운동에 힘을 보태게 된 어느 날, 그는 마을 전체를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며 “내가 진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구나!”라는 각성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운동의 맨 앞에 섰다가도 눈앞의 이익에 180도 바뀌는 주민들, 싸움이 필요할 때는 급하게 찾다가도 승리의 잔치가 벌어질 때는 맨 마지막에 챙기는 주민들”과 부대끼면서 교정의 구호 속에 들어있는 죽은 민중 대신 펄펄 뛰는 살아있는 민중을 얻은 것이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아는 작은 동네에서 병 수발하러 내려왔다는 딸이 매일 시위 나가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꼴을 계속 보이다가는 집이 풍비박산할 듯싶어 다시 서울로 올라온 그의 첫 활동터전은 공추련. 당시 공추련의 주력사업은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펼쳐지는 지역의 피해 주민들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황무지이기 때문에 기꺼이 이 길을 간다는 마음으로 굴업도, 안면도 등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보니 그는 어느 틈에 아무도 못 말리는 반핵운동가가 되어버렸다. “자연의 가치, 말 못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운동의 근거로 삼게 된 것을 감사해” 마지않는 환경운동가가 되어 버렸다.
핵폐기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공론화 의제
“최근 부안항쟁이라고 불릴 만한 큰 반핵운동이 있었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반핵운동을 지역주민의 이해가 걸린 님비현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아요.”

반핵운동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가 한마디 거들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가 반핵운동했다고 떳떳이 말을 못해요. 시민들은 핵폐기장 문제를 주민과 정부와의 갈등으로만 생각해요. 주민들이 현금보상을 받나, 안 받나,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나, 없었나, 그리고 민주적 의사수렴을 거쳤나, 안 거쳤나 딱 이 지점에서 끝나고 말더라고요. 우리가 독일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외국의 모델이 소개될 기회도 없었고, 그렇게 갈 수 있는 기회가 국민들 사이에서 토론될 수 있는 장도 마련되지 못했잖아요. 한마디로 핵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될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어요. 핵문제는 우리 사회의 철학, 가치와 관련된 문제예요. 핵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어요. 핵에너지에 의존한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못합니다. 우리 한 세대가 전기를 쓰자고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후대에게 남기는 것은 세대간의 형평성이나 도덕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요. 핵발전소는 아무리 안전하게 기능하더라도 방사능을 유출시키고 핵쓰레기를 남기고 열폐수를 남겨 인근 생태계를 파괴하거든요. 기본적으로 반생명적인 시설이지요.”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는 나의 간단한 질문에 장황스러울 정도로 길게 대답을 하곤 했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특히 핵문제에 관해서는 녹취록을 풀어 보니 A4용지 한 장을 훌쩍 넘기는 대답이 많았다.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것일 게다. 그는 “해가 제대로 나지 않는 베를린에도 도처에 태양광 전지판이 깔려있는데 일사량 많은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는지, 삼면이 바다이고 바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풍력에너지를 왜 사용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면서 얼마 전 방문했던 독일 얘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은 신축되는 건물은 15%를 무조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라는 법을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어요. 연방의회, 정부청사, 역사, 대통령궁, 수상청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이 깔려 있어요. 지붕에 올라가 봤는데 내려오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독일이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화석연료는 고갈되어가고 원자력은 사양산업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또 풍력은 소규모 지역 단위의 발전방식이란 측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열쇠가 되지요.”
그의 설명은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시민들에게 이상만 보여줄 뿐,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확신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가 거듭 강조한 “우리도 정책의지가 있으면 됩니다”는 말을 미국 다음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를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공급위주의 발전방식만 고집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귀 기울여 들었으면…….
부드럽고 따뜻한 여성의 힘으로 생활 속 환경운동을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외형을 중시하고 물량적인……. 그래서 내실을 기하고 원래 환경단체들이 가지는 소박함, 생명력이 녹아있는 그런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회원들이나 시민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유연하지 못한 측면도 극복하고.”
그는 “환경운동이 시민들의 바람을 가지고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감동을 주고 신뢰받을 수 있는 활동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래서 앞으로 환경연합은 “단발성 사업보다는 우리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책 전망과 중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포크레인부터 환경호르몬까지 막아내는 일상생활 속의 환경운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연초 시민운동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사건으로 시민들에게 기억된 에코생협 문제를 의식한 듯 “투명한 안살림과 시민재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겠다” 고 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같은 시민운동가 입장에서 경청해야 할 얘기들을 그가 잘 짚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울림이 큰 대목은 “지난 시간 입이 열 개인 사람으로 살았다면 앞으로는 귀가 열 개인 활동가로 일하겠다”는 것. 나는 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 이번 경선에서 “회원들과 환경운동과 환경연합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열정과 헌신을 나누기로 약속”했던 과정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빈 말로 들리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이 모두 잘 아는 사람들이라 내 얘기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요. 하지만, 회원을 만날수록 너무 힘이 나는 거예요. 환경 운동하는 사람에게 일반 시민들이 바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절감해서 가능하면 그 세례를 많은 활동가, 시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
그가 희열에 차서 전국 곳곳의 회원, 자원봉사자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본 한 후배는 그에게 이번 선거기간에 앞으로 10년 운동할 에너지를 얻었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환경연합 사무총장 자리를 ‘영광스러운 짐’으로 기꺼이 받아들인 그 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돈으로 사는 대신 몸으로 실천하는 ‘웰빙’
아직 질문지의 반도 못 넘겼지만 이미 약속 시간을 넘겼다. 그는 넉넉한 얼굴로 비어있는 찻잔에 계속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지만 53개 지역조직, 8만 회원을 이끄는 사무총장의 시간을 더 빼앗을 순 없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자 그는 애정고백부터 한다. “참여연대 좋아요. 식구 같아요. 한가지 부탁할 것은 돈으로 사는 ‘웰빙’에 무임승차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환경을 위해선 아무리 작은 실천이라도 소중하답니다.”
다시 차를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보여준 독일의 풍력발전소밭의 잔상이 계속 맴돈다. 우리 동네에도 작은 풍력발전소들이 들어서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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