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굽이쳐온 호주제 폐지 운동, 드디어 바다를 만나다
2005/2005년 04월 :
2005/04/01 00:00
여성운동에서 호주제 폐지만큼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진 이슈도 드물 것이다. 지난 3월 2일 국회 에서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개정안이 통과된 순간으로부터 장장 50년이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호주제는 일제 통치의 잔재임에도 해방 이후 신민법 제정 과정에서조차 이를 바꾸지 못한 탓에 오늘날까지 여성 차별이란 불명예스런 상징이 되어 왔다.
호주제 폐지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1950년대 초 신민법 제정 당시의 논란과 맞닥뜨리게 된다. 1953년 여성계 대표들은 법전편찬위원회에 남녀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정신에 맞게 민법을 제정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1957년에는 국회 공청회에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청원서와 호소문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1958년 2월 공포된 신민법은 호주제를 비롯한 남녀 성차별적 조항에 대한 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 뒤 1979년, 1989년 두 차례 가족법이 개정되어 호주의 권리와 의무 조항이 대폭 삭제되고, 친족 범위가 부모 양계 각 8촌까지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핵심적 성차별 조항인 호주제는 최근까지도 그 존폐 논란이 계속되어왔다.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으로 이혼하는 여성의 재산분할청구나 시집간 딸에 대한 상속권 인정 등 경제적 성차별이 어느 정도 해소됐고 호주의 실질적 권한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호주제의 핵심인 남성우선적 호주승계순위나 자녀의 부가(父家) 입적 및 아내의 부가(夫家) 입적 조항, 부성(父姓)강제조항은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 문화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즉, 호주제는 국민 각자가 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원의 지위를 정함에 있어 국가가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남성에게 우선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헌법이 정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이라는 기본 가치를 부정해온 것이다.
호주제 폐지의 불씨 살려낸 부모성 함께 쓰기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이유명호, 오한숙희…….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 네 글자 이름들이 1997년 처음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과 함께 발표됐다.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연합에서 매년 여는 한국여성대회에서 저명인사 170명이 자기 이름에 부모의 성을 함께 쓰겠다고 밝힌 것이다.
부모가 변씨와 소씨면 자식은 ‘변소‘씨가 되는 것이냐, 그렇다면 ‘강간’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자식 세대로 내려가면서 성이 4자, 8자로 계속 늘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 등 오해를 넘어 악의가 다분한 비방이 게시판을 뒤덮었다. 이러한 오해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어디까지나 뿌리깊은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시작된 ‘문화운동’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이구경숙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성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엄마 성을 따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그토록 친밀하면서도 아버지의 성만 따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이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른 상상을 해보도록 자극하는 문화운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수 십 년에 걸친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에 이어,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에 다시 불을 당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호주제는 여성을 넘어선 가족의 문제
1999년 4월, 여성연합을 비롯한 4개 단체는 호주제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를 계기로 인터넷과 PC통신은 물론이고 언론매체에서 찬반토론이 또 다시 거세게 벌어졌다. 처음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통해 꾸준히 지지세력을 늘려온 데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리적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호주제 폐지론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여성연합은 이를 기회로 99년 하반기에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50여 개 회원 단체들과 함께 호주제로 인한 피해 사례를 전화로 접수했다.
다양한 사연들이 전국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가 남편이 자동적으로 호주가 된다는 설명을 듣고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않겠노라 다짐했다는 신혼주부의 불평은 애교스러운 것이었다. 오빠와 이혼한 올케가 재혼을 앞두고 있는데, 아이 성을 새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호주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 빈 관을 놓고 장례를 치르며 한참을 울었다는 기막힌 사연도 있었다.
2000년 여성연합은 호주제 폐지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사이버 호주제 폐지운동, 국정감사 모니터링 등의 활동을 벌였다. 호주제가 여성 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성평등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시켰다.
개별 여성단체들도 단체 특성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여성연합의 경우 매년 전국적으로 문화캠페인을 열고 언론과 저명인사들의 입을 통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사이버상의 지지여론 확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보수적인 국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대선, 총선과 같은 큰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각 당에서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포함해 모든 당의 대선 후보들이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지난 2월 3일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호주제 위헌소송 또한 호주제 폐지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전략의 하나였다. 이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위헌소송 제기 자체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였고, 5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이 결정이 국회에서의 민법 통과를 가속화시켰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주체인 평등한 공동체로의 전환
호주제가 폐지되면 엄마 성을 따를 수도 있고, 호주 밑에 종속된 호적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가 호주가 되는 개인별 호적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지금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호주를 없앤다는 것은 공동체의 중심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였던 중심을 여러 개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나의 중심에 종속된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속에서 공동체는 평등해지고 민주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진정한 공동체적 가치이다.
이를 위해 민주적 수평적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대안적 가족문화를 만드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호주제 폐지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1950년대 초 신민법 제정 당시의 논란과 맞닥뜨리게 된다. 1953년 여성계 대표들은 법전편찬위원회에 남녀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정신에 맞게 민법을 제정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1957년에는 국회 공청회에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청원서와 호소문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1958년 2월 공포된 신민법은 호주제를 비롯한 남녀 성차별적 조항에 대한 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 뒤 1979년, 1989년 두 차례 가족법이 개정되어 호주의 권리와 의무 조항이 대폭 삭제되고, 친족 범위가 부모 양계 각 8촌까지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핵심적 성차별 조항인 호주제는 최근까지도 그 존폐 논란이 계속되어왔다.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으로 이혼하는 여성의 재산분할청구나 시집간 딸에 대한 상속권 인정 등 경제적 성차별이 어느 정도 해소됐고 호주의 실질적 권한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하지만 호주제의 핵심인 남성우선적 호주승계순위나 자녀의 부가(父家) 입적 및 아내의 부가(夫家) 입적 조항, 부성(父姓)강제조항은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 문화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즉, 호주제는 국민 각자가 가족을 구성하고 가족원의 지위를 정함에 있어 국가가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남성에게 우선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헌법이 정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이라는 기본 가치를 부정해온 것이다.
호주제 폐지의 불씨 살려낸 부모성 함께 쓰기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이유명호, 오한숙희…….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 네 글자 이름들이 1997년 처음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과 함께 발표됐다.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연합에서 매년 여는 한국여성대회에서 저명인사 170명이 자기 이름에 부모의 성을 함께 쓰겠다고 밝힌 것이다.
부모가 변씨와 소씨면 자식은 ‘변소‘씨가 되는 것이냐, 그렇다면 ‘강간’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자식 세대로 내려가면서 성이 4자, 8자로 계속 늘어나는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 등 오해를 넘어 악의가 다분한 비방이 게시판을 뒤덮었다. 이러한 오해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어디까지나 뿌리깊은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시작된 ‘문화운동’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이구경숙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성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엄마 성을 따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그토록 친밀하면서도 아버지의 성만 따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이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른 상상을 해보도록 자극하는 문화운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수 십 년에 걸친 두 차례의 가족법 개정에 이어, 본격적으로 호주제 폐지운동에 다시 불을 당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호주제는 여성을 넘어선 가족의 문제
1999년 4월, 여성연합을 비롯한 4개 단체는 호주제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를 계기로 인터넷과 PC통신은 물론이고 언론매체에서 찬반토론이 또 다시 거세게 벌어졌다. 처음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통해 꾸준히 지지세력을 늘려온 데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리적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호주제 폐지론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여성연합은 이를 기회로 99년 하반기에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50여 개 회원 단체들과 함께 호주제로 인한 피해 사례를 전화로 접수했다.
다양한 사연들이 전국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혼인신고를 하러 갔다가 남편이 자동적으로 호주가 된다는 설명을 듣고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않겠노라 다짐했다는 신혼주부의 불평은 애교스러운 것이었다. 오빠와 이혼한 올케가 재혼을 앞두고 있는데, 아이 성을 새 아버지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호주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 빈 관을 놓고 장례를 치르며 한참을 울었다는 기막힌 사연도 있었다.
2000년 여성연합은 호주제 폐지운동을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사이버 호주제 폐지운동, 국정감사 모니터링 등의 활동을 벌였다. 호주제가 여성 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성평등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다른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시켰다.
개별 여성단체들도 단체 특성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여성연합의 경우 매년 전국적으로 문화캠페인을 열고 언론과 저명인사들의 입을 통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사이버상의 지지여론 확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보수적인 국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대선, 총선과 같은 큰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각 당에서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포함해 모든 당의 대선 후보들이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지난 2월 3일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호주제 위헌소송 또한 호주제 폐지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전략의 하나였다. 이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위헌소송 제기 자체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였고, 5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이 결정이 국회에서의 민법 통과를 가속화시켰음을 말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주체인 평등한 공동체로의 전환
호주제가 폐지되면 엄마 성을 따를 수도 있고, 호주 밑에 종속된 호적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가 호주가 되는 개인별 호적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지금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호주를 없앤다는 것은 공동체의 중심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였던 중심을 여러 개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하나의 중심에 종속된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속에서 공동체는 평등해지고 민주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진정한 공동체적 가치이다.
이를 위해 민주적 수평적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대안적 가족문화를 만드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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