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오후 2시로 예정되었던 국회의 2월 임시회 마지막 본회의는 행정도시특별법 처리에 대한 각 당의 긴급 의원총회로 지연되면서 오후 4시 21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그러나 회의 시작 후 불과 6시간 50분만에 110건의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해 본회의 역사상 ‘일일 최다 법안 처리 기록’을 세웠다.

최악의 부실 졸속 의안 처리

본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사회를 맡은 김덕규 부의장은 안건 별 찬반토론시간을 5분 안으로 제한하고, “안건처리를 위해 가급적 토론을 생략해달라”며 대놓고 부실·졸속심사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 날 본회의는 상정된 안건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 정회 없이 진행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의원들의 이석률이 높아져 65번째 상정된 입양촉진 및 절차특례법 개정안을 투표할 때는 법안처리 정족수를 채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던 김근태 장관이 모자란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국회의원석으로 이동했다 돌아오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결국 이 날 본회의는 법안 한 개를 평균 4분만에 처리하여 상정된 110건의 안건을 모두 표결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법사위 점거’가 의사진행방해 핵심수단으로 등장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 저지를 위해 무려 2주일이나 국회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하고 회의 진행을 방해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번엔 행정도시특별법 처리를 막겠다며 법사위 회의실 문에 못질을 하고 점거농성을 벌였다. 김문수·이재오·박계동·배일도 의원의 이번 법사위 못질 시위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국회의 정당한 의사진행까지 방해한 대표적인 반민주·반의회적 행태로 두고두고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

국회개혁, 의원윤리 강화는 여전히 뒷전

지난 12월 정기국회에서 벌어진 정쟁과 파행에 대한 반성으로 국회개혁에 앞장서겠다던 각 당의 새해 다짐에도 불구하고 2월 임시회 한달 동안 국회개혁에 대해서는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 1월 6일 국회 윤리위원회는 전체회의를 통해 2월 국회 전후로 제도개선안과 의원 자정활동 강화를 위한 ‘2005 윤리선언’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공방만 벌이다 결국 불발되었고, 2월 임시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의원 징계안은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개혁법안 표류 중 호주제 폐지 성과

국회는 지난 연말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미뤄둔 각종 개혁법안들에 대해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못했다. 통합도산법을 새롭게 제정한 것말고는 공직자윤리법, 정치관계법, 기초생활보장법 등 처리가 시급한 개혁법안에 대해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은 2월 임시회에서 논의 안건으로 선정되지도 않았다. 특히 법 시행 이전의 분식행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2년 간 제외하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은 기업 투명성 제고라는 입법취지를 무시하고 오로지 기업의 편의만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재석의원 235명 중 찬성 161명, 반대 58명, 기권 16명으로 민법개정안이 가결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호주제가 완전히 폐지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평등의 새로운 가치에 등돌린 채 성차별을 유지, 강화시켜온 호주제 폐지는 이번 임시국회가 낳은 가장 큰 성과이자 역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정상적인 국회운영 방안부터 만들어야

2월 임시국회를 지켜보면서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국회운영 방안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회기 내에 상정된 법안을 모두 처리한다는 목표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의안의 심의를 부실하게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법안 하나 하나가 국민생활과 나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번과 같은 본회의 의사진행 방식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당론과 배치되거나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임위원회 회의장이나 의장석을 점거하는 행위는 어떠한 지지도 얻을 수 없고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의사일정을 방해하는 행위는 국회 내에서도 강력하게 제재하고 엄벌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종합적인 국회개혁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 할 수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유권자가 기억해야 할 의원은 누구?

○ 정형근 의원, 고문 의혹 불거져

2월 15일 서경원 심진구 양홍관 씨 등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온 이들이 국회에서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고문 수사관 10여 명의 실명, 수사기록과 함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몽타주를 공개했다. 심진구 씨는 이 자리에서 "37일간 불법 감금된 상태에서 맞아가며 조서를 쓰고 있을 때 파이프 담배를 빨며 들어오던 정형근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양홍관 씨는 안기부가 작성한 '사법경찰피의자심문조서'를 들고 나와 "만일 정형근이 고문하지 않았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내 목숨을 걸겠다"고 반박했다.

고문 폭로 기자회견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인 2월 17일 정 의원은 이와는 상관 없는 '호텔방 소동'으로 또 한번 언론과 네티즌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 김용갑 의원, "호주제 폐지에 끌려 다니는 못난 남자들이여, 불편한 것 떼어버려라"

3월 2일 본회의장.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 반대 토론에 나서 "속으로는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면서 표를 의식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는 못난 남성 의원들은 부끄럽지 않느냐"며 "그럴 바에는 불편한 것 달지 말고 떼어 버려라"고 힐난했다. 김 의원의 발언으로 본회의장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다고 하지만 과연 이러한 발언을 국회의원이 본회의에서 할 수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
2005/04/01 00:00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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