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한자투성이의 어려운 문화재 용어를 중학생 수준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참 반갑다. 구족반(狗足盤)은 개다리소반으로, 매병(梅甁)은 술병으로 바뀐다. 아직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몇 가지를 빼고는 거의가 쉬운 우리말 표기를 함께 하거나 아예 우리말로 바뀐다고 한다. 그 중 압권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산수화인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제목을 ‘꿈속에 거닌 복사꽃 마을’로 바꿨다는 거다. 평생 한 번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말 대신 꿈속에 내가 거닐었을 법한 복사꽃 마을이라니……. 그림은 변한 것이 없건만, 내 감동은 진정 내 것이 될 터이다. 예술은 수용자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매하기만 한 미술이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온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한 이 건물은 주두 밑에 헛첨차를 두고 주두와 소로는 굽받침이 있으며 첨차 끝에는 쇠서형으로 아름답게 곡선을 두어 장식적으로 표현하고 특히 측면에서 보아 도리와 도리 사이에는 우미량을 연결하여 아름다운 가구를 선보이고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위의 안내문을 예를 들며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있는 안내문들이 당최 누구 보라고 쓴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전문가들도 골치 아파할 전문용어투성이로 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진짜 전문가라면 어려운 말을 쉽게 풀어 쓰는 사람이라는 일침을 잊지 않았다. 이런 안내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솔직히 몇이나 되냐는 소리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람객은 학생들이거늘. 진짜 ‘고수’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쓴다. 번역도 정말 잘 하는 사람은 그 책의 원본이 외국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독자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맛깔스러운 우리말로 돌려놓는다. 말의 알맹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듣기 어려운 말만 늘어놓는 법이다.

문화 쪽만 그럴까? 은행이나 법률사무소 같은 곳은 한 술 더 뜬다. 신혼 초에 부부 둘 다 벌이가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 평소엔 올라갈 일 없는 은행 2층에서 난해한 서류들을 받아든 채 쩔쩔 맸다. 은행과 관공서는 모든 국민들이 이용하게 돼 있다. 한글만 깨치면 투표를 할 수 있듯이 초등학교만 나오면 각종 서식을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종대왕이 힘써 만들어 주신 우리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한자로 써야만 뜻이 통하는 것들이 있다면 조사라도 한글로 써야 한다. 공문서와 법원서류, 문화재 설명문 따위를 해독하기 어려운 한자투성이로 만든 것은 어쩌면 그걸 풀이해 주는 걸로 먹고 사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일상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제품 설명서는 어려운 한자말을 문법에도 안 맞게 늘어놓아이해하려면 한참이 걸린다. 건물 안내문이나 교통 표지판도 마찬가지다. ‘어렵게’가 아니라 ‘웃기게’ 조합돼 있는 글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쉽고, 바르게!’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명심할 일이다.

오지혜 영화배우
2005/04/01 00:00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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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보세요, 좋은 아주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