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은 파리를 뒤흔든 68혁명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68혁명뿐만 아니라 당시 겨울의 파리를 뒤흔든 가장 특별했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랑글루아 사태’라 불리는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1968년 2월 9일, 당시 드골정부의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책임자였던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하기로 결정한데서 촉발된 이 사태는 고다르, 트뤼포를 위시한 누벨바그 영화감독들과 랑글루아를 추종하던 영화인들이 해임을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며 카메라를 던지고 거리로 나서며 거대한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에 빌려준 영화 프린트들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프랑스 정부를 협박했고, 찰리 채플린, 구로사와 아키라, 잉마르 베리만, 니콜라스 레이,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프리츠 랑, 알프레드 히치콕 등의 저명한 감독들이 랑글루아의 복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내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그 해 파리의 겨울을 뜨겁게 달군 ‘랑글루아 사태’는 이로 인해 프랑스 영화의 역사에서 초미의 스캔들이 되었다. 드골 정부는 결국 대중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같은 해 4월, 앙리 랑글루아는 다시 복직했지만, 영화 논쟁에서 촉발된 ‘랑글루아 사태’는 정치적 비화로 확장되어 같은 해 5월에 꽃핀 68혁명의 점화선이 되었다.

당시 드골정부의 관료들이 시네마네크 프랑세즈의 관장이었던 랑글루아를 해임한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시네마테크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부 관료들은 랑글루아가 돈을 개인적인 용도(접대비)로 남용했으며 매년 한 번씩 개최해야 하는 시네마테크 운영 회의를 제대로 소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수익성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시네마테크에 대한 정부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당시 거리에 나선 시위자들은 장사꾼처럼 영화박물관의 수익성을 논하는 것에 “루브르 박물관이 수익성 있느냐”며 따져 물었고 “원자폭탄이 또한 수익성이 있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표면적으로 랑글루아의 운영상의 무능(?)이 문제가 됐지만 사실 당시 관료들이 랑글루아를 해임하려 했던 것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와 배경이 숨어있다. 1948년에 설립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원래 정부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철저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영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랑글루아는 개인의 콜렉션에 근거해 50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처음 시네마테크를 개관했고 1963년에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 덕분에 보다 큰 규모의 극장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지원은 그 만큼의 대가가 따랐던 것이다. 재정적인 지원은 관료들의 구구절절한 간섭을 불러왔고, 드골정권은 랑글루아의 자유를 통제하며 예술을 권력의 통제아래 두려했다.

경제적 위세와 제도적 권력을 근거로 빈곤하고 동질적이며 획일화된 모델을 강요하는 이런 시도는 최근의 한국 상황을 보면 그다지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닌 듯싶다. 올해 초 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논란은 ‘랑글루아 사태’와 같은 문제가 현재 우리에게도 진행 중인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2004년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부천시장이 부천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조직위원장이 되면서 김홍준 집행위원장을 해임한 사건이나 그동안 첫 회부터 광주국제영화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임재철 프로그래머가 아무런 사전 통고도 없이 부당하게 해임된 사태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영화제의 직접적인 실무자들은 “시가 지원을 하더라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영화제의 재정과 권력을 쥔 자들은 영화제를 관료체제 안에 묶어두려 획일성을 강요하며 실무자들의 예외적인 노력을 인정치 않고 있다. 때문에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와 광주국제영화제가 과연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가에 우려가 팽배한 상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런 사태가 한국영화가 내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영화의 산업적, 문화적 영향력이 점점 커가고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우연처럼 발생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나라당의 모 의원은 한편의 영화가 1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상황에서 영화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통감하며 “만약 다음 대선 직전에 엄청난 대중 동원력을 가졌으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대작 영화가 개봉된다면 야당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한나라당이 젊은 세대를 인터넷으로 잡겠다지만, 연극·영화·무용 등 문화예술계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문화의 흐름을 친여·진보 일방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발언은 비판조차 쑥스러울 만큼 그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인데,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발상이 예외로서의 영화를 자꾸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상상을 억압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향유층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류영화의 규칙을 거스르는 판타지 영화에 경배를 표한 부천국제영화제나 ‘시네필의 부활’을 꿈꾼 광주국제영화제가 지금 곤경에 처한 것은 그래서 현재 영화가 처한 중대한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른바 상상력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68혁명 당시 대중들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외쳤다. 이는 더 많은 권력을 상상력에 부여하려 했던 시도였다. 베르톨루치는 <몽상가들>을 만들면서 “68년의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검열하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모두 다 그 시대의 꿈이자 희망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부천국제영화제와 광주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문제는 인사문제를 둘러싼 잡음으로 치부되기보다는 오욕으로 점철된 영화의 나쁜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영화 애호가들의 환대를 받았던 두 국제영화제가 파행으로 치닫는 모습은 우리가 ‘현실’이라 불렀던 것들이 사실 ‘상상’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영화제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모두 몽상가들이었음을 일깨운다. 때문에 만약 현실이 우리의 상상을 결국 허용치 않는다면, 68년 랑글루아의 해직에 반대했던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했던 식으로 우리는 “이제 그 영화제에는 가지 맙시다. 그것이 상상의 영화제가 되도록 놔둡시다”라고 외치며 위기에 빠진 상상력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05/04/01 00:00 2005/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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