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시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2005/2005년 04월 :
2005/04/01 00:00
무한경쟁과 속도전을 거부하고는 살아내기 힘든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나 부족한 대로 느긋하게, 사람 냄새 피우고 맡으며 한 번 살아보자고 결행한 시골생활이 어느덧 5년 째. 처음 몇 년은 보는 것마다 감탄스러웠고, 하는 일마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그렇듯, 열광의 시기도 지나 들떠있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간사한 사람의 눈에는 슬슬 단점이 띄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처럼 일터를 여전히 도시에 두고 출퇴근해야 하는 경우 통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통비 또한 만만치 않게 든다는 점이 그 첫째다. 남편이 여주의 집에서 서울의 직장까지 가는 데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차로 읍내까지 나가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차례로 갈아타야 한다. 초인적인 통근거리 때문에 매일 퇴근은 엄두도 못 내고 일주일에 서너 번, 아이들 잠든 뒤 집에 돌아온다. 아이들은 아빠를 주말에나 볼 수 있으니 ‘아빠 기갈’이 심하다.
이사 직전 직장을 그만두고 열한 살, 여섯 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시골에 와서 오히려 자동차와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운전을 배운 것도 시골 와서다. 대개의 시골이 대중교통의 미비로 자기 차 없이는 아이들 통학조차 시키기 힘든 실정이다. 초등학교 정도는 한 동네에 있어 걸어서 오가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더 안 걷는 것 같다. 화창한 날이면 아이 손잡고 학교까지 걸어보기도 했지만 인도가 따로 없는 국도는 걷는 낭만을 운운하기에 너무 살벌하다.
휴대전화 발신자표시서비스도 안 받고 문자 메시지도 보낼 줄 몰라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종종 오해받는 나지만 컴퓨터만큼은 많이 이용하게 된다. 그 대단하단 ‘싸이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시나브로 길어진다. 우선 뉴스를 보려면 컴퓨터를 켜야 한다. 이곳은 조간신문이 오후에 우편으로 배달된다. 집배원이 신문 한 부 때문에 날마다 발걸음을 해야 하니 미안해서도 끊었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곳도 사이버 공간이다. 상가는 멀고, 물건 구색도 시원찮고, 비싸기까지 하니 인터넷 쇼핑의 진가는 시골에서 더 빛을 발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동안 ‘최신유행 ***스탈’, ‘최저가 도전’, ‘초특가’ 등 요란한 선전문구를 앞세운 인터넷 쇼핑에 현혹돼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차량이 집에 들락거리는 바람에 이웃의 호기심을 사기도 했다. 이밖에도 인터넷 뱅킹, 정보 검색 등 컴퓨터 앞으로 달려갈 일은 많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고, 차는 수리 맡긴 어느 날인가 고립감과 함께 생활도, 사람마저도 고장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 적이 있다. 한적한 시골까지 내려와 살면서 편리함과 속도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는 제 모습을 돌아보는 맛이 시금씁쓸했다. 독도 적당히 쓰면 약이 된다는 경구를 위안 삼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면 너무 안이한 타협이 될까?
그렇지만, 시골에서의 생활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비교를 허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여전히 매력적이다. 어디라고 완벽하기만 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랴. 도시에 사는 대로, 시골에 사는 대로 자기의 유토피아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터.
우리 가족처럼 일터를 여전히 도시에 두고 출퇴근해야 하는 경우 통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통비 또한 만만치 않게 든다는 점이 그 첫째다. 남편이 여주의 집에서 서울의 직장까지 가는 데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차로 읍내까지 나가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차례로 갈아타야 한다. 초인적인 통근거리 때문에 매일 퇴근은 엄두도 못 내고 일주일에 서너 번, 아이들 잠든 뒤 집에 돌아온다. 아이들은 아빠를 주말에나 볼 수 있으니 ‘아빠 기갈’이 심하다.
이사 직전 직장을 그만두고 열한 살, 여섯 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시골에 와서 오히려 자동차와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운전을 배운 것도 시골 와서다. 대개의 시골이 대중교통의 미비로 자기 차 없이는 아이들 통학조차 시키기 힘든 실정이다. 초등학교 정도는 한 동네에 있어 걸어서 오가는 도시 아이들에 비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더 안 걷는 것 같다. 화창한 날이면 아이 손잡고 학교까지 걸어보기도 했지만 인도가 따로 없는 국도는 걷는 낭만을 운운하기에 너무 살벌하다.
휴대전화 발신자표시서비스도 안 받고 문자 메시지도 보낼 줄 몰라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종종 오해받는 나지만 컴퓨터만큼은 많이 이용하게 된다. 그 대단하단 ‘싸이질’을 하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시나브로 길어진다. 우선 뉴스를 보려면 컴퓨터를 켜야 한다. 이곳은 조간신문이 오후에 우편으로 배달된다. 집배원이 신문 한 부 때문에 날마다 발걸음을 해야 하니 미안해서도 끊었다.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곳도 사이버 공간이다. 상가는 멀고, 물건 구색도 시원찮고, 비싸기까지 하니 인터넷 쇼핑의 진가는 시골에서 더 빛을 발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동안 ‘최신유행 ***스탈’, ‘최저가 도전’, ‘초특가’ 등 요란한 선전문구를 앞세운 인터넷 쇼핑에 현혹돼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차량이 집에 들락거리는 바람에 이웃의 호기심을 사기도 했다. 이밖에도 인터넷 뱅킹, 정보 검색 등 컴퓨터 앞으로 달려갈 일은 많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고, 차는 수리 맡긴 어느 날인가 고립감과 함께 생활도, 사람마저도 고장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 적이 있다. 한적한 시골까지 내려와 살면서 편리함과 속도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는 제 모습을 돌아보는 맛이 시금씁쓸했다. 독도 적당히 쓰면 약이 된다는 경구를 위안 삼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면 너무 안이한 타협이 될까?
그렇지만, 시골에서의 생활은 도시에서의 그것과 비교를 허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여전히 매력적이다. 어디라고 완벽하기만 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랴. 도시에 사는 대로, 시골에 사는 대로 자기의 유토피아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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